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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3393명이 걸은 40만㎞, 소년의 다리가 되다

부산갈매기88 2012. 11. 27. 08:26

[스마트폰 앱 통해 100m에 1원… 김도영군에 의족 선물]
왼쪽 종아리 아래 없이 태어나 성장기에 매년 바꿔야하는 의족, 빠듯한 살림에 엄두 못 내…
1만3393명이 215일 만에 400만원 모아 새 의족 전달

서울 강동구 고덕동 강덕초등학교 3학년 김도영군은 수학시험은 늘 만점이다. 벌써 중학교 1학년 일차방정식을 공부하고 있다.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이다. 서울문화재단에서 후원하는 '꿈나무키움' 프로젝트에도 선발돼, 주 1회 세한대학교 엄향자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도영이는 커서 수학 선생님이 될지 피아니스트가 될지 고민이다. 이런 도영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운동회다. 의족 때문이다.

생후 15개월이던 2004년 5월, 도영이는 의족을 단 채 첫걸음마를 했다. 선천성 발달장애로 왼쪽 종아리 아래가 없기 때문이다. 10세 된 도영이에겐 10개의 의족이 있다. 뼈가 다 자란 성인은 의족을 몇 년씩 착용할 수 있지만, 도영이처럼 성장기 아이들은 해마다 바꿔야 한다.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의 의족 업체에서 김도영(오른쪽)군이 어머니(사진 오른쪽에서 둘째)와 빅워크 관계자들에게 둘러싸여 새 의족을 착용해보고 있다. 도영이가 “엄마, 이게 런던올림픽 출전 선수가 찬 그 의족이야?”라고 묻자, 엄마 정선희씨가 “도영아, 이건 1만3000여명이 215일 동안 만들어준 의족이란다”고 답했다. /이태경 기자
도영이는 걸음마 전부터 의족을 달고 연습을 시작했다. 회사원 아버지 월급으로, 전세 7000만원짜리 46.28m²(14평) 아파트에 사는 도영이 가족에겐 의족 비용이 버겁다. 그래서 해마다 제일 싼 150만원짜리 나무 의족을 도영이에게 끼워줬다. 이 의족을 하고 2시간만 걸어도 발목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살이 까진다.

하지만 이제 도영이에게 달리기를 해도 아프지 않은 '멋진 의족'이 생겼다. 2012년 런던올림픽 400m 달리기에 출전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장애인 스프린터 스토리우스가 했던 의족과 비슷한 400만원짜리다. 이 의족은 한 번 맞추면 2년까지도 사용 가능하다.

이 의족을 선물해준 사람은 1만3393명이다. 215일간 정성을 모았다. 방식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App·앱) '빅워크'다. 디자이너 출신 한완희(30)씨와 사회적 기업가 방혜인(22)씨 등이 만든 앱이다. 앱을 켜놓고 운동하면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를 통해 걸을 때마다 위치가 측정된다. 이를 통해 100m를 걸을 때마다 1원으로 표시된다.

이렇게 모은 돈이 400만원이 되면 미리 정해진 수혜자에게 그 금액이 기부된다. 도영이는 발달장애협회의 추천으로 첫 번째 수혜자로 선정됐다.

걷기만 해도 기부가 되는 건 앱 화면에 뜨는 '기업 광고' 때문이다. 앱 화면엔 '200m 근처 무슨 가게가 있다'는 기업 광고가 뜨는데, 빅워크는 이 화면 광고를 이용해 수익을 얻는다.

빅워크를 통해 스마트폰 이용자는 걷는 것만으로 기부를 할 수 있고, 기업은 효율적으로 광고할 수 있으며, 도영이는 새 의족을 선물 받게 됐다. 지난 4월 17일 처음 출시된 이 앱은 현재 2만3000명 이상이 다운 받았다.

빅워크 팀은 40만㎞를 걷는 데 1년 이상을 예상했다. 다운은 하더라도 막상 이용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GPS를 이용하면 스마트폰 배터리가 빨리 닳는 불편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15일 만에 전국 각지에서 1만3393명이 40만㎞를 걸은 것이다. 40만㎞는 지구 10바퀴를 도는 거리에 해당한다.

빅워크는 300㎞ 이상 걸은 이용자들에게 감사의 선물로 머그컵을 보내주는데, 이용자들 중엔 "이 머그컵 주는 돈도 도영이 돕는 데 써달라"는 사람이 많았다.

서울시 영등포구에 사는 한 이용자는 빅워크에 이메일을 보내 "저는 평소 기부나 자선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작은 노력으로 조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마음 사라지지 않도록 기억하며 살아야겠습니다"고 적었다.

현재 스마트폰 앱 중엔 '빅워크'처럼 쉽게 기부할 수 있는 앱이 많다. '기부톡'이란 앱은 이 앱을 통해 전화를 걸게 되면, 통화 시간에 비례해 기부금을 적립해 자신이 원하는 단체에 줄 수 있다. '트리 플래닛'이란 앱은 앱상에서 나무를 키우면, 그 나무가 실제 사막 등에 기부된다.

지난 20일은 도영이가 새로 맞춘 의족을 처음 착용해 보는 날이었다. 도영이와 어머니 정선희(42)씨, 빅워크 관계자가 의족을 맞춘 서울 용산구의 의족 업체를 찾았다. 새로운 의족을 착용한 도영이가 몇 번 걸음을 떼더니, 웃으며 말했다.

"우와, 이제 운동회 때 달리기 꼴찌 안 해도 되겠어요."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