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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일자리 하나라도 더 늘리려 뜁니다"

부산갈매기88 2012. 11. 22. 07:03

노숙자 자활 돕는 '야베스공동체' 운영… 원용철 목사 형제
1998년 대전역서 노숙 체험 이들의 상처·절망 느끼게 돼
처음 1년만 버티자… 14년째 "그들이 첫 월급 타 사준 양말에 우리 형제 부둥켜안고 울었죠"

지난 14일 오전 대전시 동구 삼성동 '야베스공동체' 작업장. 직원 8명이 70평 작업장에서 숯을 자르고 화분에 숯과 장식품을 붙이며 분재화분을 만드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제주도에서 20여년 배를 타다 10년 전 일자리를 잃고 아내와 사별한 뒤 자녀에게 짐이 되기 싫어 집을 나왔다는 전모(62)씨는 "오갈 데 없어 벧엘의집 신세를 지다 일자리를 얻어 9평 원룸을 얻었다"며 "다 원용철 목사님과 벧엘의집 식구들 덕"이라 했다. 얘기를 듣던 원용철(48) 목사와 원용호(43) 야베스공동체 대표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야베스공동체는 사회복지법인 '벧엘의집'이 노숙인 자활을 돕기 위해 2006년 만든 사회적 기업이다. 벧엘의집은 1999년부터 대전역 일대 노숙자에게 잠자리와 식사 제공, 무료 진료를 펼쳐왔다.

벧엘의집을 이끄는 원용철 목사와 원용호 야베스공동체 대표는 대전 노숙자들 사이에서 '빅 브라더'로 통한다. 충남 당진이 고향인 원 목사는 1998년 11월 말 '노숙자를 위해 할 일이 많은 것 같다'는 선배 목사의 권유로 대전에 왔다. 그해 겨울 한 달간 대전역에서 목사 신분을 감춘 채 노숙하며 노숙자들 속사정을 들었다. "그때 버림받고 낙오한 이들의 상처와 절망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됐죠."

야베스공동체의 원용호(왼쪽)대표와 형 원용철(가운데)목사가 14일 대전 동구 삼성동 숯분재화분 공장에서 노숙자 출신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이후 노숙자들에게 자신이 목사임을 알린 그는 대전역 측에 "노숙자들이 대합실에 들어가지 않도록 할 테니 밤에 역광장에 천막을 쳐 추위를 피하게 해달라"고 간곡히 청했다. 이후 1999년 1월부터 5개월간 대전역광장 한쪽 귀퉁이에 밤이면 비닐로 둘러친 천막 2동이 생겼다. 원 목사는 매일 밤 10시 노숙자들에게 컵라면을 나눠줬다. 처음엔 거부감을 보이던 노숙자들도 환자가 생기면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주고 가족처럼 돌보는 원 목사에게 '왕초'라는 불명을 붙여줬다.

원 목사는 그해 9월 주변 도움을 얻어 대전역 인근 삼성동에 40평 월세방을 얻어 노숙자 30여명과 생활하는 '벧엘의집'을 열었다. 현재는 동구 정동 5층 건물을 월 380만원에 임대해 쓰고 있다. 1층은 쪽방상담소, 2층은 무료 진료를 하는 희망진료소, 3층부터 5층까지 방 10여개는 노숙인 거처로 쓴다. 운영비는 정부 보조금과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후원금이 절반 이상이다. 원 목사 자신은 22년 전 산 코트를 수선해 입고, 6년 된 구두를 신을 만큼 검소하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노숙자 자립을 위해선 안정적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회사원이던 동생 용호씨와 함께 만든 게 야베스공동체였다. 동생은 20대 초반에 급성간염이 간경화로 악화돼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기적같이 회생해 형과 함께 봉사하고 있다.

노숙인 11명이 화분 만들기부터 시작한 야베스공동체는 이후 숯분재 사업부, 원예 사업부, 세탁 사업부를 만들어 일자리를 늘렸다. 형제는 "노숙자들이 첫 월급을 타 짬뽕 한 그릇과 양말 한 켤레를 선물했을 때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며 "노숙자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늘리는 게 목표"라 했다.

원 목사는 "벧엘의집을 열 때 1년만 버티자고 다짐했는데 14년을 맞았다"며 "한 사람이 걷는 열 걸음보다 열명이 함께 걷는 한 걸음의 소중함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