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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리더는 왜 부도덕해지는가

부산갈매기88 2012. 11. 21. 10:32

美 전·현직 스타 군인들의 추락… 커리어 頂點서 왜 그런 짓 했나
영향력 커지면서 지나친 자신감, 현실감 잃고 더 큰 자극을 원해
'나만은 괜찮을 것'이라 오판… 성공 법칙 속 실패 가능성 잠복

강인선 국제부장

"믿을 수가 없다. 그들은 정말 탁월하고 완전무결한 사람들이다. 군의 존경과 신뢰를 한몸에 받으며 살아왔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지난주 미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던 전·현직 스타 군인들이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자 한 미국 외교관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의 전기를 쓴 작가와의 불륜으로 물러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CIA 국장, 여성 자원봉사자와 부적절한 이메일 교환 때문에 조사를 받고 있는 존 앨런 아프가니스탄 사령관 얘기다. 스캔들 그 자체야 놀랄 일이 아니지만 세계 최대 정보기관의 수장(首長)과 전쟁 중인 미군 사령관이 관련됐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공식적으론 이들의 불륜 또는 부적절한 처신이 미국 안보에 영향을 끼쳤는지 여부가 관심사였다. 하지만 사석에선 "그 잘난 사람들이, 그것도 가장 잘나갈 때 어쩌면 그렇게 멍청한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더 자주 화제에 올랐다.

프랑스에선 대통령이 동거를 하고 혼외(婚外) 자식을 둬도 어디까지나 사생활일 뿐 공직 수행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유럽과 달리 미국에선 공직자들에게 사생활 면에서도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한다. 이런 사회적 압력 때문인지 사고 치고 공직을 접은 사례가 수두룩하다. 행복한 결혼의 화신(化身) 같았던 존 에드워즈 상원 의원은 외도로 아이까지 두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추락했다. 마크 샌포드 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지사는 불륜의 애인과 잠적했다가 정계에서 사라졌다. 모두 한때 대통령감으로 주목받던 정치인들이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휘한 경험에 프린스턴대 박사인 퍼트레이어스 전 CIA 국장 역시 장래 미국을 이끌어갈 지도자감이라고들 했다.

그들은 평생 많은 것을 희생하며 한 점 흠결 없는 커리어를 추구해왔다. 그런 그들이 거의 정점(頂點)에 도달했을 때 왜 갑자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한 것일까. 약 20년 전 경영학과 교수 딘 러드윅과 클린턴 롱거네커가 쓴 논문 '밧세바 신드롬'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 국민에게 사랑받던 유능하고 현명한 다윗왕이 유부녀인 밧세바에 빠져 계속 잘못된 결정을 내리며 파멸해가는 과정이 모든 것을 다 이룬 현대의 성공한 지도자들이 저지르는 도덕적 실패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밧세바 신드롬'에 따르면 최고 엘리트들은 성공했기 때문에 오히려 부도덕한 일에 빠지기 쉬운 상황에 처한다. 남자든 여자든 조직의 사다리를 타고 정점에 올라간 리더들은 더 큰 영향력과 자원·인력·정보를 주무르면서 자신이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 성공한 리더는 정서적 측면도 달라져서 과거 수준의 자극과 성취로는 만족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출세한 사람들은 현실감을 잃기 쉽다. 조직 최고의 자리에 있다 보면 고립되어 일상과의 접점이 줄어든다. 가족이나 친구와 보낼 시간도 별로 없고 문제가 생겨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개인적인 삶의 균형도 깨진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만은 괜찮을 것'이라는 오만 속에서 오판(誤判)에 오판을 거듭하면서 추락하게 된다고 한다.

퍼트레이어스는 CIA 국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리비아 미 영사관 테러 관련 청문회에서 증언해야 했다. 그가 의회에 가던 날 그를 아꼈던 의원들은 그가 더 이상 공개적으로 모욕당하지 않도록 의회 지하 통로를 몰래 이용하도록 배려했다. 그 긴 통로를 지나는 동안 퍼트레이어스는 자신의 성공 속에 숨어 있던 몰락의 씨앗을 제 손으로 싹 틔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는 예외적인 성공 신화를 써왔지만 성공의 법칙 속에 숨은 실패의 가능성은 못 읽었던 것이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