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부산갈매기의 대관령 선자령(1,157M) 산행기

부산갈매기88 2013. 1. 29. 16:56

*일시: 2013. 1. 26(토). 맑음

*함께 한 분: 백산 산악회원 43명

*산행코스: 대관령 휴게소-새봉-선자령(1,157m) 원점회귀

*산행시간: 후미조 기준 3시간 40분(점심 20분, 기타 휴식 20분)

 

*산행 tip: 선자령 코스는 올해 남덕유산의 1차 산행에 이어지는 눈 산행이기에 백산님들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대와 소망을 완전히 채워준 산행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산에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눈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고, 눈꽃이나 상고대 같은 것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 산행에는 그 눈꽃이나 상고대는 보지 못했지만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에 파묻혀 보기도 하고, 그 하얀 눈에 대비되어 파아랗게 시리도록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며 설경에 동화되어 말을 할 수조차도 없었습니다. 유격대처럼 눈만 빠꼼히 내놓고 칭칭 동여맸건만 선자령의 칼바람은 볼을 여지없이 파고들어 따끔따끔, 얼얼하게 만들었습니다. 일행들은 눈가루를 옆사람에게 날려보기도 하고, 또 눈 속에 밀어 넣어 보기도 하는 개구쟁이 산행을 했기에 그 추억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관령까지의 머나먼 길이라 출발시간을 40분 정도 앞당겼는데, 서면에서 거북이님이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13분을 운해대장님 속을 시커멓게 만들었습니다. 세연정, 만덕, 덕천동을 돌고 돌아 43명의 님들이 짧게는 1주일, 길게는 3주일 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반가운지 얘기꽃을 피우며 대관령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북쪽으로 갈수록 높은 산의 머리는 허옇게 덧칠해져 있었습니다. 대관령에 다와 가는데, 스키장으로 향하는 행렬과 우리처럼 눈 산행을 하고자 하는 차량 행렬로 차가 밀려 30여 분을 지정거렸습니다.

 

드디어 낮 12시 반을 조금 넘겨 대관령 휴게소에 발을 내렸습니다. 허허벌판의 대로변에 우리를 내려놓았는데,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볼때기를 내리치는 탓에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일행들은 산행을 위해 아이젠과 스패츠를 채우느라 웅크리고 앉아서 분주합니다. 무엇보다 민생고(?) 해결이 과제였기에 일행들은 휴게소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봅니다. 운해님의 선두조는 이미 산행을 한다고 올라가버렸습니다. 이제 붉은 노을님을 비롯한 후미조는 들머리 표지석 앞에서 인증 샷을 남겼습니다. 들머리는 아주 좁은 눈속의 오솔길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경사는 완만하여 몸을 풀기에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그 좁다란 길을 내려오는 다른 산행팀과 마주치게 되었을 때 누군가가 멈춰서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었습니다. 욕심을 내어서 진행을 하게 되어 부딪히게 되면 누군가가 한 다리를 눈 속에 파묻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게 됩니다. 그 눈길에서 인생의 한 페이지를 생각나게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되 내가 먼저 할 수 있더라도 남을 위해 때로는 배려해 주어야 시간을 아끼고 마음을 비우는 산행을 해야 한다고.

 

열 대여섯 명이 일렬로 늘어서서 오르는 모습도 장관입니다. 아직 능선 아래이기에 대체로 포근했습니다. 15분여를 올라가니 임도가 나타났기에 마음 맞는 사람끼리 함께 걸을 수 있고 좀더 여유 있게 주위 경관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부산근교에서 보는 눈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표면에 물기가 얼어붙은 것이 반사되어 유난히 새하얗게 반사되어 눈이 시러웠습니다. 무선표지소 갈림길에서 앞서간 일행 중 뒤쳐진 일행과 조우를 해서 단체 사진을 한 장 남겼습니다. 야트막한 능선을 조금 올라 눈이 조금 치워진 넓은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붉은노을님이 아무래도 여기서 점심을 먹어야 하겠다고 몇 미터 앞서간 일행을 불러 세웠습니다. 우리 백산 일행들 정말 후미대장의 말이라면 꺼뻑 넘어갑니다. 전진하라고 하면 전진을 하고, 물러서라고 하면 과감히 물러섭니다. 정말 한 마디의 군소리 없이 일사분란하게 누군가 식탁보를 깔고, 배낭을 내려놓습니다. 들머리에서 출발을 하여 1시간 채 못 걸렸습니다.

 

식탁보가 크지 않아서 서너 개를 깔았습니다. 바람이 조금 세차게 붑니다. 식탁보가 겹치다 보니 중간에 누군가 앉아서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그것을 눌러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중간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모두 빙 둘러 원형으로 앉았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추워서 맨손으로 젓가락질을 하기가 만만찮습니다. 손가락이 점점 감각을 잃어 갑니다. 햇띵구님이 라면을 끓인다고 버너에 불을 지펴봅니다. 그러나 바람이 조금 세차게 부니 옆에 있던 현진님과 서희님이 그 버너의 불길에 조금 겁을 먹어 움칫거립니다. 버너의 불길이 바람에 나부끼다가 조금 끓은 오뎅 국물이 넘쳐서 끄지고 맙니다. 대파를 넣은 오뎅이 반쯤 끓다 마는데, 너무나 추운 나머지 더 이상 끓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일행이 밥을 먹다 말기에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대충 끓다가 만 오뎅국을 건더기만 건져 먹어 봅니다. 체감온도가 영하 28도라고 하니, 실감이 납니다. 밥을 반쯤 먹고 있는데, 밥이 얼어붙어 먹을 수가 없습니다. 서희님이 가지고 복분자 한 병, 태영님이 가지고 온 생탁 1병과 매실수 1병이 자리에 앉자마자 바닥이 나고, 현진님이 가지고 온 닭튀김은 몇 점만 먹고 일행들이 도저히 추워서 먹을 수가 없고 얼어붙었기에 그만 포기했습니다. 일행들은 밥을 떠는 둥 마는 둥 그냥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합니다. 서희님이 밥을 떠다 말고 일행이 급하게 일어서니까 그냥 챙깁니다.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텐트와 비닐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웃음소리가 들렸는데, 어찌 그리 부러운지요. 1.4후퇴 때의 상황도 아니면서 전쟁 때의 상황보다도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낸 듯 합니다. 차가운 밥을 먹어서 그런지 몸이 많이 떨립니다.

 

점심을 먹고 조금 오르니 이제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가 보입니다. 일행들은 하늘을 향해 스틱을 높이 들어 환호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새파란 하늘 저멀리 동해바다가 나즈막하게 보입니다. 햇띵구님과 종현님이 그 장면을 놓치지 않습니다. 두 팔을 벌립니다. 동해의 기상이 그의 팔에 안깁니다. 살아 있음에 쉼 호흡을 해 봅니다. 행복한 순간입니다. 서로를 위해서 차가운 바람을 쏘이며 사진을 찍어 줍니다. 볼때기는 선자령의 칼바람에 더욱 따끔따끔 얼얼합니다. 그 차가운 바람에 머리도 아파옵니다. 같이 올라가던 여자 회원님들은 얼른 풍력발전기 쪽으로 올라가버립니다. 햇띵구님, 종현님과 나 셋이서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몸부림칩니다.

 

선자령에 올라가서 앞서 올라간 선두조 몇 사람을 만났습니다. 선자령 정상석 앞에서 인증 샷을 남기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타지에서 온 팀이 30여 명이나 대기를 하고 있으니 취재(?)경쟁의 열기가 용광로 같습니다. 다른 산행팀을 물리치려면 그들을 위해 사진을 찍어주는 배려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네들이 빨리 자리를 떠야 우리 차례가 돌아오기 때문에. 이 세상에 공짜란 없습니다. 다른 일행 10여 명 중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나면 꼭 개인 사진을 한 사람씩 찍으려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한 장씩만 찍으려면 좋겠지만, 꼭 한 사람이 두 장 이상은 찍으려고 설쳐대니 우리 일행들도 선자령의 모진 칼바람 앞에 기다리는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이번 꼭 한 판만 찍고 물러나야 한다고 다짐을 하지만,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그들이 쉽게 자리를 빼주지 않습니다. “이번만 하고 방 빼주셔!”하고 옥신각신 실랑이를 합니다. 드디어 늦은 시각이다 보니 우리 백산 후미조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십여 명이 단체 인증샷 후에 한 사람씩 사진을 찍어봅니다. 모두 중공군이나 군밤장수처럼 칭칭 동여매고 얼굴만 내 놓고 있어서 누군지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진속의 본인만은 그걸 압니다. 그렇든 이렇든 그 한 장의 사진이 선자령의 칼바람을 맞으며 찍은 것임을 추억으로 남겼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조금 여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길을 안다는 것과 올라가면서 대부분을 보았기에 한결 여유가 넘칩니다. 그래서 이제 일행들은 눈가루를 옆 사람에게 뿌리기도 하고 슬쩍 눈 속으로 밀어넣어 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즐거운 한 때의 추억을 가슴에 새김니다. 우정이 깊어갑니다. 세상의 묵은 때를 그 눈밭에 문질러 봅니다. 저렇게 깨끗한 순백의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 범죄는 줄어들어 세상은 더욱 밝아질텐데. 아무도 밟아보지 않은 새하얀 미답의 세계에 티끌 하나마저 남겨놓기도 마음이 아련합니다. 차마 그 하얀 눈밭에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자령의 칼바람과 새하얀 눈, 그리고 새파랗다 못해 질리듯이 시린 하늘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우고 왔는지 참 궁금합니다. 우리가 가기 전 이틀 전에 노부부는 눈발 날리는 그곳에서 죽어갔을까? 그에 대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모르긴 해도 정말 그 아름답고 새하얀 눈밭에서 이 세상에서 보지 못한 하늘나라의 소리를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휘몰아치는 눈 속에서 이대로 눈감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 먼 길을 우리가 달려 갔을까? 가보지 않은 사람은 미쳤다고 소리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돈으로 다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 앞에 펼쳐지는 눈으로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때묻지 않은 고고하고 순결한 정신을 배우고 온 것입니다. 세상은 그처럼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 것을.

 

전체 산행시간은 후미조를 기준으로 해서 3시간 40분 정도 걸렸습니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와 그 들머리의 표지석에서 인증 샷을 찍으며 마무리를 했습니다. 늘 꼴찌인 내가 버스에 오르니 차는 출발을 했습니다. 뒤풀이는 기사님이 아시는 울진의 식당으로 딱 1시간 걸려 갔습니다. 먼저 400~500석의 거대한 식당의 규모에 압도되었습니다. 동태찌개도 얼큰하게 좋았지만, 그 식당에서 나오는 취나물은 압권이었습니다. 늘 그러하듯이 백산을 위하여 건배 제의가 있었고, 다들 우렁차게 ‘위하여!!!“를 외쳤습니다.

 

먼 길을 6시간 걸려 가고 또 왔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서 우리 백산의 우정이 더욱 쌓여가고 친밀해져 가리라고 봅니다. 왜 친밀해질 수밖에 없을까를 생각해보니, 같은 산을 향하여 오르는 목적과 목표가 일치하고 세상의 골칫거리는 막걸리잔에 씻어버리니 그런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얘기를 할수록 머리만 아픕니다. 뭐 자식 이바구, 남편 이바구, 또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하면 소금물 켜듯 갈증만 생기고 스트레스만 쌓이지만, 우리 백산님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남에게 배려하고 아껴주며 남을 위하는 마음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정기 산행이든 번개 산행이든 시간만 허락하면 달려갑니다. 남의 일이 자신의 일인 것처럼 여기면서. 항상 웃을 때 웃어주고, 울 때 울어주는 곳이 백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넉넉함을 선자령의 칼바람 산행 속에서 배워 온 것 같습니다.

 

함께 한 42명의 동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외쳐 봅니다. “산이 좋다! 사람이 좋다! 백산이 좋다!”

 

*산행지도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