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엄마의 품속을 거닐은 무등산(1,187m) 산행

부산갈매기88 2013. 2. 5. 16:20

*산행일시: 2013. 2. 2(토), 갬.

*동행한 사람: 부산 백산산악회원 38명(백산남친, 바람숙, 운해, 붉은노을, 형재, 부용, 피네, 갈바람, 서희, 성산, 방랑자, 휘운, 혜영, 흔적, 태영, 앞마당과 짝지, 키종, 성기태, 보라매와 짝지, 수희, 은수, 조성길, 김상규, 와석, 해월정, 해곤, 시골사람, 한사랑, 물새와 짝지, 부산갈매기 외)

 

*산행코스: 주차장(11:03)-운소봉(430m)-선두암-세인봉-서인봉(13:02)-중머리재(13:38)-장불재(14:16)-입석대(1,017m)(14:30)-서석대(1,100m)(15:03)-중봉(915m)(15:37)-바람재 이정표(16:16)-동화사터(16:25)-토끼봉(460m)(16:48)-증심교(17:17)-주차장(17:43)

*산행거리 및 시간: 13.5km/ 6시간 40분(점심 25분, 기타 휴식 35분)

 

*산행 tip:

눈 산행은 아니라도 엄마의 품속마냥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의 산행. 봄이 오는 길목의 느슨한 산행이었다. 1주일 전만 하더라도 눈꽃 산행을 기대하며 꿈에 부풀어 올랐는데, 산행 전날 얄궃은 비로 말미암아 그 꿈과 기대는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따듯한 날씨였기에 운소봉-선두암-새인봉-중머리재-장불재-입석대-서석대-토끼봉 코스의 산행은 선두암에서 기암괴석의 형상에 잠시 발을 멈추게 했다. 이어 새인봉에서의 깍아지른 절벽은 일행의 얼이 빠지게 했다. 그리고 입석대와 서석대의 자연경관은 과히 하나님이 창조한 명품임을 인증할만한 것이었기에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하게 되었음을 확인했다. 어찌 오밀조밀하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돌기둥을 쌓듯이 얹어 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서석대의 주상절리들을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무엇보다 따뜻한 날씨로 인해 함께 동행한 일행들이 얼굴을 마주보며 환한 미소와 함께 우정을 다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산행이었다.

 

부산 덕천동에서 광주 무등산 주차장까지는 3시간 채 소요되지 않았다. 출발은 순조로웠지만, 두 사람이 예약 펑크를 냈고 게다가 눈꽃 산행을 기대하지 못한데다 1주일 만에 정기 산행을 출발해서 그런지 38명이 함께 했다. 고속도로변은 어제 내린 비로 날씨도 좋고 미풍에 나뭇가지들은 하늘거렸다. 어느덧 봄의 여신이 손짓을 하고 있는 듯 했다.

 

10시 55분에 증심사 주차장에 도착한 일행들은 먼저 산행할 채비를 갖추고, 화장실에 갈 사람은 다녀온다고 분주했다.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는 플랭카드가 공원 입구에 걸려 있고, 여기저기 화려한 등산복 가게와 음식점, 게다가 유명 외국 브랜드의 커피점까지 입점하고 있어서 대략적인 시대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산행의 들머리는 오른쪽 개울을 건너 나무 계단을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진창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제 내린 비와 한결 풀린 날씨 탓에 산길은 질퍽거렸다. 40여 명이나 되는 팀원들이 한 줄로 서서 오르는 모습 또한 장관이었다. 10여 분을 가니 조그마한 개울이 나왔는데 그 개울을 따라 약간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첫 번째 능선이 나타났다. 20분도 걷지 않았는데, 몸이 조금 달아올랐는지 능선에서 일행들은 옷매무새를 고쳐 본다. 또 사진도 한 컷을 하며 숨고르기를 해 본다.  

 

이제 약간 높은 듯이 보이는 운소봉(430m)의 계단을 오른다. 이곳의 나무계단은 조금 특이했다. 계단 발판을 짚으로 짠 덕석을 깔아 놓아 다소 환경친화적이었다. 대부분의 산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자동차 타이어의 자투리를 손가락 굵기로 잘라서 발판을 만드는데 비해 여기는 자연친화적인 배려를 했다는 점에 광주광역시의 공무원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우리 일행들도 그 점에 있어서 모두 공감을 하는 것 같다.

 

운소봉을 넘어가니 경사진 암능길이 나타났는데, 울통불통하면서 다소 경사가 많이 져 있었다. 후미에서 그 암능길을 막 올라서서 내려서려는데 “어~! 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은수님의 발이 바위에서 미끄러져 바로 앞의 운해님 옆으로 넘어졌다. 질퍽한 길을 오를 때 묻은 발밑의 물기로 바위 위에서 미끄러진 것이다. 운해대장님이 왼쪽 볼의 상처를 살펴보고 또 옆의 일행들도 걱정이 되어서 빙 둘러선다. 은수님은 휴지로 문질러 보는데, 여자의 본능으로 아픈 느낌보다는 창피한 느낌이 앞서는 것 같았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 대여섯 명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 앞서 내려 간 일행들이 근심이 되어서 올려다본다. 얼굴의 상처에 조그마한 돌이 박힌 것을 털어내니 상처에서 피가 조금 나온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볼 주위만 약간 상처를 입고, 큰 상처가 나지 않았으니 불행중의 다행이었다. 더 큰 상처나 다리에 골절이라도 입었더라면 누군가 부축을 해야 하고 되돌아가야 하는데, 이 정도에서 그치게 되니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그 틈바구니의 시간을 이용하여 다른 일행들은 선두암 옆에 서서 사진도 포즈를 취하며 파안대소 해본다. 거기서 10분 정도 가니 새인봉이었는데 여기저기 기암괴석의 절벽과 신선 놀이터 같은 곳이 나타났다. 절벽 아래를 쳐다보니 아찔하건만 절벽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모습에 일행은 정신이 반쯤 나갔다. 그 장면과 시간을 담으려고 일행들은 분주했다. 눈길이 가는 곳에 일행들의 시간이 멈추고 있었다. 한사랑님은 예전에 이곳에 왔는지 이 부근이 장불재 가기 전까지 가장 볼거리라고 귀띔을 했다. 바위 절벽 위에 오랜 세월 버티고 있는 소나무에게서 인생의 사는 지혜를 배운다. 그 소나무도 그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왔음을. 우리도 어디에서든 그 환경과 여건에 살아남지 못한다면 말라죽어가야 할 인생임을 말이다.

 

거기서 일행들은 정신없이 사진 찍는다고 여념이 없는데, 간신히 수습을 끝낸 은수님이 서희님과 함께 나무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보니 안도감이 들었다. 볼은 많이 얼얼하고 아프겠지만, 그래도 여자의 본능으로 미소를 띠우며 밝은 모습을 하고 오는 것을 보니 대견스러웠다. 이제 15분여를 가니 새인봉 삼거리의 이정표가 나타났다. 선두조들은 이미 서인봉을 향해 올라가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휘운님이 앞서가고 있었는데, 작년 여름만 하더라도 따님과 같이 오더니 백산 분위기에 젖어들었는지 요즘은 곧잘 혼자서 잘 나온다. 대학생인 따님은 알바에 인생 개척 준비에 바쁘단다.

 

새인봉 삼거리 이정표에서 서인봉으로 오르는 30여 분의 산길은 경사가 조금 심해서 입에서 단내가 났다. 갑자기 머리가 조금 띵 해져 왔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었기에 몸에서 뭔가 필요하다는 사인이었다. 휘운님과 함께 너른 서인봉에 오르니 우리 일행들이 봉우리 넓직한 장소 여기저기에 다섯 무더기로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후미대장인 붉은노을님이 우리 둘을 오라고 부른다. 자리를 비집고 앉아서 배낭을 풀어서 점심을 먹는다. 늦게 온 탓에 막걸리는 동이 나버려서 조금 아쉬웠다. 나중에 바람재 갈림길에서 처음 온 일행에게 생탁 한 잔을 얻어먹었긴 했다. 그런데 지난 선자령 산행에 너무 떨어서 감기가 걸린 탓에 보온밥통을 하나 장만했더니 조금 따뜻한 밥을 먹은 데다 날씨마저 미풍이 부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점심 식사 후 서인봉에서 바로 야트막한 길을 내려가니 공중화장실이 나오고, 그 옆의 중머리재 표지석을 배경으로 일행들이 인증 샷을 눌렀다. 거기서 장불재는 비스듬하게 오른쪽 계곡을 따라 올라갔는데, 대부분 밑바닥이 돌로 깔려져 있었으나 군데군데 진창길이었다. 그리고 너덜지대도 나오고 어디서 바람소리인가 했더니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개울은 응달이라 여기저기 잔설이 조금 남아 있었다. 오늘 눈 구경은 거기서 처음인 셈이다. 서서히 경사가 조금 심해지는가 싶더니 하늘이 보이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많이 서 있었는데, 장불재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다른 산행팀이 찍기를 기다리다 사진을 한 컷씩 한다고 표지석을 들락거렸다. 이제 올려다보니 오른쪽 비스듬한 곳에 입석대의 돌기둥이 아스라히 보였다.

 

 그런데 뻥 뚫려진 공간이다 보니 바람이 조금 세차게 불어왔다. 입석대로 가는 주목 군락지에서 배낭에서 윗옷을 하나 꺼내어 얼른 입었다. 장불재에서 입석대까지는 15분 정도 걸렸다. 거기에 가니 벌써 우리 일행들이 다른 산행팀들과 어우러져 사진을 찍는다고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 정말 포토 존은 시간과의 싸움이 치열했다. 한정된 시간과 공간, 한정된 자리에서 더 멋진 장면을 연출해 보려고 난리다. 인간의 발이 머무르는 곳은 어디서나 입에 단내가 나기 마련이다. 내가 그 자리를 잡으려면 다른 팀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든지 뭔가 시간의 서비스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게 삶이다. 이왕 해 줄 거라면 미소 지으며 화끈하게 해 주는 것이 시간 절약에 도움이 된다.

 

우리 일행들은 입석대의 돌기둥들이 만들어낸 조화로움과 규칙성, 배열에 입이 딱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억만년 전에 용암이 굳어져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리고 오랜 세월을 지나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하지만, 신의 힘이 아니라면 어찌 그렇게 멋지게 돌기둥 위에 돌기둥을 포개어 놓을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명작으로밖에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았다. 여기저기 더 나은 아름다움을 연출하려는 소리로 주위가 시끄럽지만 비경에 도취되어 나 혼자 있는 느낌이었다. 선두 일행들은 이미 승천암을 지나 서석대로 올라가 버리고, 늘 꼴찌로 가는 휘운님과 나,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온 앞마당님과 짝지만 남은 것 같다. 늦어지더라도 이 순간만을 놓치고 싶지가 않은지 세 사람들의 동작이 여전히 굼뜨다. 행복함이 얼굴에 묻어난다. 큰 나무가 없는 산등성이 여기저기에는 내 키 정도의 잡목들이 앙상한 가지를 웅크리고 있었다.

 

서석대(1,100m) 정상 부근의 너덜지대를 오르니 정상에서 일행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었고, 서석대 정상석에서 다른 산행팀의 사진 찍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지 이정표나 정상석 부근은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사람들은 추억을 만드는데 뭔가 증거가 있어야 하기에. 한 사람씩 인증 샷을 찍느라 시간이 꽤 걸린다. 태영님과 나는 좀더 나은 정상적 사진을 찍으려고 애를 썼지만 다른 산행팀에 밀려 아쉽게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바로 정상 아래를 돌아 내려오니 서석대의 주상절리군이 입이 다물어지지 않게 비스듬히 도열을 하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다고 해도 저렇게 규칙있게 배열할 수 있었을까? 포토 존 데크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더욱이 그 자리는 햇빛이 잘 들고 따뜻한 탓으로 많은 사람들이 경치를 조망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경치에 취해서 돌아보니 일행들은 벌써 하산을 하고 휘운님과 나만 덩그란히 남아 있었다. 휘운님이 아이젠을 하고 내려가라고 일행들에게 들었단다. 200여 미터의 구간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서 제법 미끄러웠다.

 

돌계단을 구불구불 내려가니 임도가 나타나고 300여 미터 남쪽으로 중봉이 보였다. 중봉으로 가는 길에 오늘 백산에 처음 온 일행이 걸어가면서 얘기를 걸어오는데, 백산의 분위기가 아주 가족적이라 정감이 간다고 칭찬을 했다. 그래서 자주 오고 싶지만 올 상황이 못 되나 겨울철에는 업무상 조금 한가하기에 이렇게 왔노라고 했다. 중봉에 가니 앞서 간 태영님과 보라매님, 보경님, 여행님, 시골사람님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중봉 표지석에 기대에 뒤편의 서석대를 배경으로 인증 샷을 날린다. KBS송신소를 지나기까지 세찬 바람에 머리가 얼얼하여 얼른 배낭에서 빵모자를 꺼내 썼다. 오늘 처음 산행에 참가한 태영님의 친구인 여행님도 백산의 분위기가 좋아서 시간 나는 대로 자주 와야겠단다. 여행님은 서울에서 20여 년 생활을 하다가 직장 관계로 이번에 부산으로 왔는데, 2년여를 부산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해야 한단다.

 

KBS송신소에서 바람재 갈림길까지는 조금 가파른 하산길이었다. 그 갈림길에 가니 앞서 간 일행과 함께 붉은노을님이 부른다. 잠시 쉬었다 가잔다. 열대엿 명 정도의 인원이 쉬고 있었는데, 처음 온 일행이 막걸리가 있다고 한 병을 꺼내서 한 잔씩 돌린다. 게다가 감똘개도 나오고 어릴 적 시골에서 먹었던 쪄서 말린 고구마 빼때기도 누군가 주어서 먹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그 맛을 안다. 어릴 때 간식거리가 없을 때 몇 안 되는 간식거리가 아닌가 말이다. 그곳 갈림길 이정표에는 토끼등(봉)까지는 1KM 정도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조금 내려오니 동화사터의 샘이 나왔고, 거기서 조금 내려가니 급경사가 시작되었다.

 

이제 내 뒤에는 서희님과 서희님을 따라서 첫 산행을 한 성산님이 조심스럽게 돌길을 내려온다. 돌계단이라서 무릎에 많은 부담을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맨 후미에는 붉은노을님이 보조를 맞추며 내려 왔다. 누가 봐주지 않든 항상 그 자리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해 주는 한결같은 마음에 백산인들이 더 믿고 산행에 동참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늘 최선을 다해 주는 그 마음이 정말 이쁘다.

 

바람재 갈림길에서 30여 분을 내려오니 넓은 임도와 정자가 나타났는데, 그곳이 토끼봉(460m)이었다. 잠시 이정표에서 단체 사진을 한 컷 했다. 그때 누군가가 은수님과 앞마당님 짝지인 뒷마당(?)님이 풍기는 분위기와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보는 눈은 비슷했나 보다. 두 사람의 웃는 모습과 얼굴 생김새가 많이도 닮았다. 단지 키만 뒷마당(?)님이 조금 컷다. 그래서 두 사람은 생일이 누가 먼저인지 알아보려고 얘기를 하면서 즐겁게 하산을 했는데, 은수님이 한 살 위인 언니가 된단다. 증심교가 나타나기까지 조금 조급증을 내며 내려왔다. 뭔가 다 온 것 같은데 계속 내려가고 있으니 서희님과 성산님은 나에게 물어본다. 얼마 정도 가면 되느냐고.

 

 증심교 근처에 오니 맑은 개울물이 소리를 내며 흐른다. 누군가 개울에 들어가 등산화 흙을 씻고 있다. 그때 붉은노을님이 조금 내려가면 화장실 앞에 신발 세척장애 있다고 그냥 가자고 한다. 앞서 간 일행에게서 무전을 받았단다. 과연 3분여를 내려가니 화장실 앞에서 일행들이 등산화를 플라스틱 솔로 문지르고 있었다. 광주광역시 공무원은 뭔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주차장은 거기서도 10여 분을 더 내려와야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지라 버스에서 기다릴 앞서 간 일행을 생각하니 마음 또한 편치가 않다. 늘 꼴찌를 하니 말이다. 그래도 백산은 꼴찌에게 박수를 보내준다. 격려의 박수를.

 

저녁식사는 1시간쯤 가서 먹는단다. 이제 버스에 탄 우리 일행은 섬에 새우잡이로 팔려가는 기분으로 어둠 속을 달려간다. 초연기사 식당이라는 주차장에 버스가 멈췄다. 백산 전용 기사님이 추천하는 맛집이란다. 역시 전라도 음식은 반찬의 가짓수가 조금 많다. 시골맛이 조금 나면서 그런대로 밥맛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목을 축여주는 막걸리가 있다는 것이 좋다. 두어 잔 정도밖에 못 마시지만,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참 애절하게 녹여준다. 그리고 다른 사람 사이의 긴장감을 허물어뜨린다. 그리고 동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방안에 들어간 회장님 테이블에서 “위하여!”라는 소리가 들렸다. 홀에 앉은 우리도 힘껏 소리를 외쳤다. “위하여!!!”

 

맛있는 식사를 한 일행들은 버스에 올랐는데 예상에 없던 뒤풀이가 있었다. 피네님이 ‘갈대의 순정’이라는 술 한 병을 나 먹으라고 가져왔다. 또한 강정도 그 식당 할머니한테 얻었다고 가져 왔다. 늘 묵묵히 있는 듯 없는 듯 주위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그 마음씨에 많은 사람들이 정감을 보낸다. 먼저 버스 앞칸의 수희님과 혜영님을 비롯한 네 명에게 그 술의 맛배기를 보여주고 버스 뒤칸으로 가져갔는데, 금새 동이 나버렸다. 하는 수 없어 소주 두 병이 앞에서 배달되어 왔다. 와석님은 버스바닥에 주저앉아 자리를 잡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옆의 오늘 처음 온 물새(?)님 부부도 대화에 끼어들어 한 잔씩 받았다. 그리고 버스 맨 뒷좌석에 있던 부용님도 주류파인지 볼그스레한 얼굴로 즐겁게 분위기를 띄운다. 예정된 30분의 소란 시간이 지났기에 모두 자리로 돌아갔다.

 

 문제는 만덕에서 내린 와석님과 그 일행이 내렸는데, 내리면서 와석님이 자신의 배낭이라고 가져간 배낭이 정작 형제님 배낭(?)이라고 하여 긴급히 연락을 해서 부암동 출발지점에서 만나자고 했다. 오랜만에 백산에 배낭이 바뀌는 에피소드가 하나 생겼다. 그래도 함께 하며 웃으며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지친 영혼들이 엄마의 품속 같은 무등산 자락을 휘저으며 기개를 펼치고, 눈꽃 산행은 못했지만 함께 담소를 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보낼 수 있었음에 행복했다. 그리고 작은 불상사였지만 은수님의 상처가 경미해서 불행중 다행이었고, 함께 한 모든 사람이 행복해서 더 좋았다.

 

이 모든 과정은 백산의 운영진 여러분, 특히 운해대장님, 붉은 노을님, 그리고 음으로 양으로 회장님의 배려와 함께 한 모든 백산인의 협조와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생각해 본다. 다음 산행은 함양의 삼봉산인데, 벌써 기대가 된다.

 

  *산행지도: 방향은 반대임(국제신문 참조).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