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부산갈매기의 설악산(오색-대청봉-희운각-공룡능선-비선대) 산행기

부산갈매기88 2013. 10. 18. 17:18

 

♣산행지: 설악산 대청봉, 공룡능선, 마등령, 비선대

♧산행일시: 2013. 10. 11~12(무박 2일)

☞산행 참석자: 부산백산 산악회원 및 게스트 포함 44명(운해, 와니, 금호지 부부, 청림, 솔뿌리, 김지영, 블루, 붉은노을, 가시버시 부부, 햇살, 산하, 태영, 은수, 슬로우, 흔적, 효리, 해월정, 갈바람, 와석, 시골사람, 해곤, 장종인, 성규, 종현, 햇띵구, 기몽, 안대영, 한영석, 백산남친, 바람숙, 민첩거북이, 백합, 부산갈매기 외)

 

♤산행코스: 오색(03:41)-설악폭포-대청봉(06:45)-중청 대피소(07:10)-소청-희운각 대피소(08:35/ 아침식사 25분)-무너미고개-1,184봉(09:35)-1,275봉-큰새봉-나한봉-마등령(1,320m)(13:52)-비선대(16:38)-신흥사(17:33)

▶산행시간: 14시간

 

◆산행 tip: 고교생들은 3년 공부한 것을 대학수능 시험으로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우리 산꾼들의 일년 동안 산행평가는 설악산과 같은 악산에서 자신에 대한 시험을 치른다.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체력을 검증하는 셈이다. 누구나 대학을 가고 싶어 하지만 다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설악산에 다 가고 싶다고 해서 전부 다 산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자격요건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 첫째가 체력이다. 10시간 넘게 다리품을 팔아야 하기에.

 

그런데 이번 설악산 산행은 운해대장님이 출제한 네 문제 중에서 자신의 역량에 맞춰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모두 기출문제로 누구나 풀고 싶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도전도 해보고 싶다. 그러나 섣불리 덤벼들 수 없는 게 설악산이다.

 

코스는 오색에서 대청봉을 넘어서 무너미고개에서 공룡능선을 타느냐, 아님 천불동 계곡으로 빠지느냐. 그리고 설악동에서 공룡능선을 타고 무너미고개를 지나 천불동 계곡으로 도느냐 하는 것은 옵션이다. 이것도 저것도 맘에 들지 않으면 자율적으로 코스를 정해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산행을 하는 것이다.

 

‘설악산!’ 하면 가슴이 떨리어 온다. 누구나 수학여행을 갔든 산행을 했든 한 번쯤은 가본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청봉과 공룡능선을 넘어갈 때 이 험난한 코스를 왜 택했을까 생각을 한다. 그러다 공룡능선의 기암괴석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 ‘그래 잘 왔네!’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정말 그 힘든 코스에 ‘악!!!“ 소리를 속으로 얼마나 부르짖었던가 말이다. 산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취해버린 하루. 앞서 가는 산꾼의 엉덩이만 쳐다보고 대쳥봉까지 오른 후에 중청, 소청, 희운각 대피소까지는 앞서 가는 이의 머리 뒤꼭지만 쳐다보며 발걸음을 떼야 하는 인산인해다. 길도 온통 돌 계단이고 바위 투성이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설악산의 암릉과 단풍, 역시 가슴 뭉클하게 보고 온 것이다. 그 감동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올빼미 작전

부산에서 9시에 출발한 버스는 서면, 동래, 덕천동을 돌아서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 2시 35분경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을 한다. 여자 회원들은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진 밥과 국을 일회용 접시에 담는다고 손길이 분주하다. 휴게소 옆 탁자에 걸터앉아 국에 밥을 말아서 얼른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몸이 조금 따뜻해온다.

 

30여 분을 더 달려서 오색에 도착한다. 입구는 타지에서 온 관광차로 붐비기 시작한다. 오색 매표소 앞에서 산행할 채비를 갖추느라고 헤드 랜턴에 눈이 부시다. 사방은 암흑천지이건만 등로는 올빼미 불들이 여기저기 번쩍거린다. 웬 줄이 이렇게 길단 말인가? 떡국 가래처럼 길다랗게 이어진 산꾼들이 자신의 발 앞에 비춰진 빛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등로는 돌을 박아 놓아서 그런지 무릎에 조금씩 충격을 준다. 이어서 두 사람이 지나가기 힘든 나무계단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가파른 산길이 계속된다.

 

 

이 한 밤중에 수천 명의 산꾼들이 싸늘한 바람을 헤치고 꼭두새벽에 뭔 일로 달려가고 있단 말인가? 그것도 앞 사람의 엉덩이만 쳐다보고만. 이 상태로 가다가는 먼동이 트기 전에 대청봉에 오르지 못할 것 같다. 실타래 같이 이어진 줄을 헤치고 나가기도 예사롭지가 않다. 오색의 들머리에서 40여 분을 가다가 일행이 잠깐 쉬었다 가자고 한다. 오랜 시간을 걸어 왔는데, 등로 옆으로 마땅히 쉴 공간이 제대로 없다. 칠흑같은 어둠이라 옆으로 눈 돌릴 틈이 없다. 뒤에서는 자꾸만 밀고 올라오기에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생각해 보니, 이 상태로 가게 된다면 공릉능선 쪽으로 갈 수 가 없을 것 같다. 대청봉에 오르기도 전에 사람에 치여서 기진맥진할 것 같다. 그래서 옆에 있는 종인님과 백합님에게 의사타진을 해 본다. 공룡능선을 탈 것인지를. 두 사람 역시 설악산에 온 것은 공룡능선을 타기 위해서라고 각오를 말한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대청봉, 공룡능선, 마등령, 비선대 방향으로 돌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 다른 산꾼을 치고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임을 직감한다. 그래서 내가 앞쪽에서 리더를 하기로 했다. 등산로를 따라 가다가 조금만 빈틈이 있거나 여유 공간이 있으면 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물론 체력적인 문제도 따라 주어야 이 짓거리를 할 수 있다. 내가 앞장 서서 틈 사이를 헤집고 가기를 대청봉 아래의 중턱까지 2시간여 계속되었다. 뒤에서 백합님과 종인님은 정말 잘 따라와 준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다. 다만 나무계단을 오를 때는 틈이 없기에 남들처럼 꼼지락거리며 올라가는 수밖에는. 그렇게 해서 추월해낸 것이 족히 300~400명은 되지 싶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대청봉 아래 300여 미터를 남겨두고 구름 위로 붉게 노을이 일어날 때면 우리의 마음은 달구어지고 있다. 아침 노을. 그 신선하고 붉은 노을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서서히 태양빛이 산 위를 밝히고 태양은 젊은 청년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장관의 연출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늘 보던 태양인데 높은 산에서 보는 붉은 일출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그토록 밤을 밝히며 달려온 것은 저 일출의 장관을 보기 위해서였던가. 늘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잊고 살았던 저 태양이 아니던가. 늘 함께 하기에 고마운 줄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 온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늘 곁에 있으면 아쉽고 고마움을 모르듯이.

 

대청봉에 오르니 앞에 온 100여 명의 사람들이 정상석을 차지하려고 자갈치 시장의 난장판을 하고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몸을 가누기조차 힘이 든다. 가벼운 옷차림을 했는데, 시베리아 찬바람이 거세게 불어대니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포기해야 하겠다. 인증샷 한 판 찍으려면 10분 이상은 족히 떨면서 대기해야 할 상황이다. 용케 백합님은 북새통의 다른 산행팀을 헤집고 두 정상석 앞에 앉아본다. 대청봉 정상석 앞에 쪼그리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다른 산꾼들의 매몰찬 소리도 들려온다. 길 떠나면 고생이라. 추억 사진 한 장 남기려다 지독한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중청으로 내려간다.

 

▣발은 계단을, 눈은 저 멀리 암릉의 절경을

대청에서 중청까지는 불과 15분여 거리로 바로 발 아래다. 그러나 인파로 인해서 나아가는 내가 마음먹은 대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람이 불고 쌀쌀하니까 산꾼들은 우르르 달려 중청으로 내려간다. 이미 중청 대피소는 초만원이다. 화장실 가는 것도 대기줄이 길어서 포기해야 한다. 중청에서 태영님, 종인님, 해곤님, 백합님을 만나서 사진 한 컷을 한다. 이런 기회가 이번 산행을 통해서 많지 않음을 후에야 알게 된다.

 

이제 소청까지는 산허리를 돌아서 내려가다가 계단을 따라가야 한다. 멀리 보이는 왼편으로 용아장성 능선이 보이고, 정면으로 멀리 공룡능선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희운각 대피소가 있는 신선대 능선에 눈길이 자주 간다. 희운각까지는 눈은 발 아래에 두지만, 힐끔힐끔 능선들을 조망하며 내려가는데 앞선 사람의 뒤꼭지만 바라보며 산길을 따라 내려간다. 경사가 심해짐에 따라 무릎보호대도 할겸 해서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중간쯤에서 백합님, 종인님, 시골사람님과 함께 간식을 꺼내서 먹는다. 새벽에 시락국을 한 그릇 뚝딱해서 그런지 배는 그렇게 많이 고프지는 않지만,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기로 한다.

 

고사목이 있는 하산길을 따라 희운각 다리를 지나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하니 여기도 사람들로 넘쳐난다. 어디에나 넘쳐나는 산꾼들로 아침밥을 먹을 자리를 찾아본다. 겨우 햇빛이 드는 낙엽이 깔린 공간을 차지한다. 햇살님, 산하님, 김지영님, 해곤님, 백합님, 종인님, 시골사람님과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면서 해곤님과 김지영님에게 공룡능선을 함께 가자고 권유를 해도 자신들은 천불동 계곡으로 가겠단다. 다행히 햇살님과 산하님은 공룡능선을 가기로 했다. 이미 태영님과 종현님은 공룡능선으로 갔는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중청에서 함께 내려왔는데 중간에서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것이다.

 

▣공룡능선에 공룡은 없더라도▣

희운각 대피소에서 공룡능선 방향으로 35분쯤 가니 1,184봉의 암봉에 다다른다. 그 1,184봉에 오르기 전에 두 번의 가파른 암벽을 만나서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 1,184봉에 오르니 정면에 범선의 돛대처럼 생긴 범봉이 보이고, 왼쪽으로 1,275봉의 위용이 드러난다. 가슴 벅찬 암봉들이 쭈삣쭈삣 하늘을 찔러대고 있다. 왜 그토록 많은 산꾼들이 ‘설악산, 설악산 공룡능선!’ 할까 하는 의문이 연줄 풀리듯이 풀리기 시작한다. 일행들은 한 컷을 한다고 분주하다.

 

이제 사람들은 듬성듬성 보인다. 그래서 산길을 걷는 것도 여유가 조금 생기게 된다. 1,275봉으로 오르기 위해서 봉우리를 돌아가는데 저 건너편에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저쪽에서 오는 사람이 40분을 기다려서 왔노라고 한다. 아뿔싸 뭔가 모르지만 심상찮다. 등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100여 명의 줄이 쭉 늘어서 있다. 암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교행을 할 수가 없다. 일방 통행줄이라 한 쪽이 가면 다른 쪽은 기다려줘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에서 20명 가량 올라가면 저쪽에서도 같은 숫자의 사람이 내려와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저쪽에서는 이쪽의 배가 넘는 숫자가 같은 일행이라는 이유로 함께 쭉 따라서 오다보니 여기저기 고함소리가 터져나오고, 그 틈바구니에 타지에서 온 아줌마 세 명이 염치불구하고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새치기를 해댄다. 그렇게 30여 분을 기다려 암봉을 넘어가니 운해님과 회장님 등의 일행의 얼굴이 보인다. 정말 반갑다. 그러나 길은 외길이라 뒷사람 때문에 얼굴만 보고 인사말만 한 채로 지나가야 한다.

 

앞을 올려다보니 가파른 절벽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다. 쳐다보니 숨이 탁 막혀온다. 1,184봉에서 바라보았을 때 1,275봉은 소뿔처럼 생긴 것이 오른쪽 봉우리가 더 크고 높았었는데, 설마 이곳을 올라갈 줄이야. 헐떡거리며 숨 가쁘게 올라간다. 올라가서 한 숨을 돌린다. 그때 헬기 한 대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조금 전 지나온 1,184봉 위에 떠 있다. 뭔가 사고가 생긴 모양이다. 몇 달 전 충북 영동산에 갔던 생각이 난다. 그때도 헬기가 떴는데 아줌마 한 사람이 절벽에 떨어져 후송을 한다고 주위가 요란스러웠었는데. 오늘도 시끄럽게 한 대가 싣고 가더니 또 한 대가 다시 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부탄가스가 폭발해서 두 사람이 다쳤다고 한다. 국립공원에 와서도 고기 굽어먹는다고 과대불판을 쓰다가 된통 걸린 것이다. 그 사람들 헬기 좀 타고 아마도 벌금을 헬기 수송비로 내 놓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백합님을 부르려 했으나 다른 인파가 있어 부르지를 못했다. 그래서 먼저 다음 산봉우리인 나한봉을 향해 내려가 버린다. 한참을 기다리니 시골사람님이 올라온다.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못 걷겠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청에서 내려올 때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음 산봉우리인 큰새봉에서 백합님과 기다리고 있는데, 시골사람님이 오지를 않아서 전화를 해 본다. 큰새봉 밑에서 올라오고 있단다. 큰새봉에서 내려다보니 50여 미터 아래에서 대기 순번을 기다리며 오르고 있다.

 

힘겹게 큰새봉에 오른 시골사람님. 1,275봉을 오르기 전 발이 돌 틈 사이에 끼어서 몸은 앞으로 나가고, 발은 돌 사이에 끼어서 ‘뚝!’ 소리가 난 후 아프기 시작했단다. 잠시 휴식을 취한다고 주저앉는다. 과일로 에너지 보충을 좀 하고, 내가 가지고 있던 무릎 보호대를 시골사람님의 무릎에 둘러본다. 아직 비선대까지는 6km 이상 남은 것 같은데. 눈앞이 캄캄해진다. 되돌아 갈 수도 없고 진행하기도 뭣하고 진퇴양난이다. 헬기를 부르기도 뭣하고.

 

▣실수는 있어도 실패는 없다. 도전하는 자가 인생의 참맛을▣

그래도 여기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설악동 주차장까지는 아직 3시간이나 남았기에 희망을 가져본다. 그런데 나 혼자라도 시골사람님과 가야 할 상황인데 백합님도 함께 천천히 가겠단다. 쉬엄쉬엄 걸으며 동해바다가 보이는 능선에서 시골사람님과 우정의 사진 한 컷을 한다. 시골사람님을 쳐다보니 안쓰러워진다. 시골사람님은 올라가는 것은 그런대로 올라갈 수 있지만, 하산하는 것이 잘 안 된다. 그래서 하산할 때는 한쪽 발을 질질 끌어야 한다.

 

시골사람님이 빨리 가지 못하니 백합님과 나도 빨리 갈 수가 없어서 쉬엄쉬엄 경치 구경도 하고 암릉의 절경을 디카에 담아본다. 그러나 마음에 여유가 없다. 아픈 사람이 집안에 있으면 공기가 싸늘하듯이. 마등령 정상을 지나 하산길은 너무나 가파른 계단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바위가 경사져 있어서 정상인도 힘드는데 시골사람님은 더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한다. 비선대 1.8km 이정표가 보이는 지역부터 빨간 단풍이 져 가는 가을을 노래하고 있고,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랗다. 지나온 능선들이 쭉 한 눈에 들어온다. 고생은 발이 했지만, 가슴은 그 감동을 받아들이고 잠시 지나온 길을 회상한다.

 

시골사람님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혹시 비선대에 도착하자마자 교통수단이라도 이용할 수 있을까 싶어서 운해대장님에게 문자를 넣어둔다. 얼마 후 전화가 왔다. 비선대에 기다리고 있다고. 그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난다. 해줄 게 아무 것도 없다손 치더라도 시골사람님에게는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비선대 내려가기 전의 금강굴이 있는 계곡은 돌계단으로 되어 있는데다 가파른 탓에 무릎에 너무 큰 충격이 전해졌다. 하물며 시골사람님은 어떠하랴! 그 계곡을 내려오면서 쉬기를 십여 차례. 시골사람님은 나보다 먼저 가라고 하지만, 혼자서 내려오면 힘이 더 빠지기에 나도 천천히 앞서 내려온다. 그 계곡의 왼쪽 암벽에서 자일을 걸고 등반을 하는 산악인들의 고함소리가 계곡을 메우고 있다.

 

금강굴 가까이 왔지만 그 굴을 보고 갈 여유가 없다. 정말 천천히 쉬엄쉬엄 내려오는 시골님의 모습을 올려다본다. 아주 느린 달팽이 걸음으로 하산을 하고 있다. 앞산의 능선에 산 그림자가 지려고 어둠이 밀려온다. 이제 비선대까지는 400미터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지치고 힘든 여정 속에서의 400미터는 십리 길이나 되는 듯 느껴진다. 비선대 다리가 보인다. 비선대 계곡의 깨끗한 물과 경치에 모든 피로가 다 녹아내린다. 운해님의 얼굴을 보니 힘이 난다. 구세주를 만난 듯 하다. 백합님도 기다리고 있었다. 10여 분을 기다려서야 시골사람님이 비선대에 도착을 한다. 국립공원이라 이곳까지 교통수단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단다. 하는 수 없이 신흥사까지 2.5km를 걸어가야 한다. 그나마 평지라 시골님 걷기에 다소 나은 편이다.

 

네 사람이 얘기를 하면서 신흥사를 지나 도로변에서 택시를 타고 대형버스 주차장으로 온다. 늦게 온 우리들을 위해 원망도 하지 않고 박수를 쳐 준다. 시골님도 하산을 하면서 일행들에게 민폐를 끼칠까봐 많이 조바심을 내었다. 그리고 백합님도 하산 내내 지인인 은수님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백산에 두 번째 오는 사람이 이렇게 늦어져 은수님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면서. 버스 안에서도 1시간 이상을 기다렸을텐데 불평 한 마디 없이 인내심 있게 기다려 주는 마음씀씀이에 가족같은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백산에 한 번 발을 들여 놓으면 그냥 한 가족이 되어 다른 산악회를 접고 백산 한 곳에만 정을 붙이고 죽자사자 따라다니는 것이다. 백산의 정이 많은 골짜기에 빠지게 되면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백산! 그래서 다음 산행이 기대가 된다. 산은 그대의 육체를 단련시키지만, 백산은 그대의 마음에 여울이 지게 한다.

 

 

*산행지도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