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방

지극한 정성이면 바꿀 수 있을까

부산갈매기88 2014. 8. 20. 07:55

'독도는 한국 영유권' 주장해 고초 겪어온 도이 日 前의원
식민지 조선인 차별 목격한 뒤 기독교 귀의해 양심·소신 지켜
많은 것 잃고도 '후회 없다'며 가시밭길 걷는 그에게 찡함이…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시인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시인
얼마 전 내가 대표로 있는 한 기관에서 일본의 도이 류이치 전 의원에게 세계성령봉사상을 시상했다. 이 상은 기독교에서 성령(聖靈) 사역의 일꾼으로 크게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예수원을 세운 대천덕 신부,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인 말리 홀트 등이 수상한 바 있다.

도이 선생은 원래 일본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7선 국회의원이었다. 그런데 2011년 92주년 삼일절에 독도의 한국 영유권 주장을 담은 한·일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사건 때문에 큰 고초를 겪었다. 도이 의원이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자 일본 우익 세력은 물론 신문과 방송사들이 마녀사냥식으로 취재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당시 간 나오토 민주당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도이 의원이 그렇게 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는 조선총독부 간부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 동대문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인 교사들과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말을 쓰는 학생을 구타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자신도 조선인 학생을 때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훗날 기독교에 귀의하여 기독교적 세계관과 양심을 소유하게 됐다. 그때부터 그는 지난날 일본이 한국에 가한 만행이 용납되지 않아 자책감이 들고 괴로웠다.

그런 그가 정치에 입문하면서 어떻게 하면 한국에 사죄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한국의 김영진 의원을 만나게 됐다. 김 의원은 아버지가 일본 노무자로 끌려가서 폐인(廢人)이 되어 돌아왔기에 일본에 대해 누구보다 증오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역사적이고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면서 한일기독의원연맹이 결성됐고, 매년 삼일절과 광복절이 되면 기념 예배를 드렸다. 그때마다 도이 의원은 몇 명의 일본 기독교 신자 의원들과 동행하여 지난날 일본의 만행과 과오를 고개 숙여 참회하였다. 그랬던 그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고 만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가슴이 얼마나 무너지고 흘러내렸는지 며칠 밤이나 잠을 뒤척였다. 얼마 뒤 김영진 전 의원과 함께 일본으로 가서 그를 눈물로 위로하고 기도해 주었다. 그러나 그분은 조금도 원망하는 마음이 없이 평온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내 양심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네요. 나라고 어찌 일본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폐쇄적 민족주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예수님도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였지만 인류의 화해를 위해서 고난을 선택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작게나마 실천했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이었다.

도이 선생은 국회 헌정회관에서 열린 이번 시상식에서도 이렇게 수상 소감을 밝혔다. "나는 독도 발언으로 모든 것을 잃은 정치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슴이 아프지만 결코 후회하진 않습니다. 부디 나의 아픔과 상처로 한·일 관계가 더 좋아지고 진정한 화해와 평화의 길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ESSAY] 지극한 정성이면 바꿀 수 있을까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도이 선생이 그렇게 했다고 해서 한·일 관계가 달라진 건 없다. 오히려 더 악화하고 있그분을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의 뒷모습에서 작은 예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본에 자주 가서 선교 활동을 하지만 내 마음 언저리에는 일본에 대한 저항감이나 반일(反日) 감정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어찌 저렇게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물론 우리는 당연히 민족을 사랑하고 애국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계속 국가와 국가가 충돌하고 갈등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서로 화해하고 공존하는 미래를 창출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 도이 선생도 거친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것이리라.

을 뿐이다. 그럴수록 나는 그에게 더 가슴이 저리고 심장의 통증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그 아픈 폐부는 일본을 향해 더 간절해지고, 그 간절함은 내 안에서 또 다른 정성으로 변모해가는 것이 조금씩 느껴진다. '역린(逆鱗)'이라는 영화의 맨 끝 대사가 떠오른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69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다녀왔다. 그런데도 왠지 쓸쓸한 가슴 저림은 가시지 않고 있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물론 지극한 정성을 다한다고 국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할까 하는 의심이 다가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지극한 정성을 다하면 세상도 변화하지 않을까 하고 염원했다. 그날따라 도이 선생의 아픔이 폐부 깊숙이 못처럼 박혔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소강석/새에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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