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워터게이트 특종 두 기자, 다른 길을 걷다

부산갈매기88 2018. 9. 7. 06:49

우드워드, 발로 뛰며 현장 취재… 정치관련 책 단독으로 17권 출간
번스타인, 취재보다는 논평만… 후배들 "우드워드가 승리자"

지난해 4월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단 만찬에 특별 손님으로 참석한 워터게이트 보도의 두 주역 밥 우드워드(왼쪽)와 칼 번스타인이 웃고 있다.
지난해 4월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단 만찬에 특별 손님으로 참석한 워터게이트 보도의 두 주역 밥 우드워드(왼쪽)와 칼 번스타인이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책 내용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든 사태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책임지고 사퇴하고, 의회 청문회에 서야 한다."

밥 우드워드(75)의 신간 '공포:백악관의 트럼프'에 담겨 있는 트럼프 행정부 내 혼란상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근거 없는 소설"이라며 비난하자 칼 번스타인(74)이 4일(현지 시각) CNN에 출연해 한 논평이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20대였던 1972년 워싱턴포스트에서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를 함께했던 언론 사상 가장 유명한 기자 듀오다.


'공포'의 출간을 계기로 이 '우드스타인(Woodstein·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의 합성어)'의 반세기에 걸친 우정과 경쟁 관계도 회자되고 있다. BBC·CBS 등 영미 언론들에 따르면 70대가 된 두 사람은 권력의 치부를 파헤쳐야 한다는 지향과 열정은 똑같지만 그 스타일은 여전히 판이하다. '우드워드가 밖에 나가 취재를 해오면 번스타인은 논평을 한다'는 것이다. 누구의 영향력이 더 큰가. 후배 기자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우드워드의 승(勝)'이다.

후배 여기자가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해 쓴 책 '워터게이트가 드리운 그림자 속의 삶'에 따르면 번스타인은 유대인이자 공산당원인 부모 밑에서 자라 반항적 기질이 강했고, 우드워드는 중서부의 공화당 지지자 집안 출신으로 점잖은 성격이었다. 워터게이트 취재 시작 당시 번스타인은 입사 18개월, 우드워드는 8개월 된 신입이었다. 민주당사 중앙위원회 침입·도청 사건에서 '배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있을 수 있다'는 냄새를 처음 맡은 건 번스타인이었다. 정부 내 핵심 취재원 딥스로트(deep throat)와 끈질기게 접선해 권력 핵심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퍼즐 조각들을 모아온 것은 우드워드였다. 번스타인은 시야가 넓고 문체가 유려해 주로 기사 집필을 맡았다. 우드워드는 팩트 전달에 신중하고 다소 소심했으며, 글이 무미건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취재력은 탁월했다.

워터게이트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고 취재기가 영화화되는 등 스타덤에 오른 두 사람은 1976년 갈등 끝에 한때 절교하다시피 했다. 번스타인은 유명세를 활용해 프리랜서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1977년 퇴사했다. 그는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한 방송계에 뛰어들어 ABC·CBS·CNN에서 중동 특파원이나 정치 평론 등을 해나갔다. 번스타인은 뉴욕 사교계의 명사였고 할리우드의 배우·모델과 염문을 뿌렸다. 1990년대 한국 대우차의 광고 모델로도 나섰다.

우드워드는 고집스럽게 신문 기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워싱턴포스트에 남아 권력 핵심에 대한 밀착 취재로 자신의 아성을 강고하게 쌓아갔다.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등 대통령의 임기 첫해가 지나자마자 정권의 성격과 핵심 정책을 파헤치는 탐사 보도형 책을 출간하는 '전통'을 수립, 매번 정계를 강타했다. 9·11 테러 이후엔 후배들과 함께 미국 사회의 변화를 짚는 시리즈 기사를 써 생애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을 거쳐 부편집인이 됐다.

두 사람은 생산량에서 엄청난 격차가 났다. 우드워드가 워터게이트 취재기 이후 단독으로 낸 정치 관련 책은 17권이다. 번스타인은 가끔 잡지·신문에 권력 관련 기사를 썼지만 큰 작품으론 이어지지 않았다. 그가 우드워드와 공저 외에 혼자 쓴 책은 2007년 힐러리 클린턴 전기 한 권뿐이었다.

가디언에 따르면 우드워드는 지난 8월 8일 번스타인에게 연락해 "닉슨이 사임한 지 벌써 44년이나 됐어!"라며 함께 나라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새 책 '공포'의 헌사에 번스타인의 이름을 올렸다는 것을 알렸다.

 



출처 : 조선일보/2018/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