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식히기

'붉은 양귀비꽃'은 왜 1차대전 추모의 상징이 됐나

부산갈매기88 2018. 11. 12. 08:34

양귀비꽃

11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식에 참석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대통령 등 각국 정상의 가슴엔 '양귀비꽃〈사진〉' 조화(造花)가 달려 있었다. 1차 대전 희생자를 추모하는 상징물이 붉은 양귀비꽃이다.

양귀비꽃은 1차 대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남부 지역 들판에 흔하게 피어 있던 꽃이었다. 전투에서 전우를 잃은 군인들은 들판의 양귀비꽃을 꺾어 시신 위에 놓으며 넋을 기렸다고 한다.

양귀비꽃은 캐나다군 소속 참전 군의관 존 맥크래가 1915년 5월에 쓴 시 '플랑드르 들판에서(In Flanders Fields)'로 인해 공식적인 1차 대전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이 시는 맥크래가 전장에서 절친한 친구를 잃고 쓴 것으로, 1915년 말 영국 잡지 '펀치'에 실리며 널리 알려졌다. 플랑드르 들판은 벨기에 남부와 프랑스 북부 사이에 있다. 이 시는 '우리는 영영 잠들지 못하리/비록 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 자란다 하여도'라는 구절로 끝난다.

1918년 종전 후 '플랑드르 들판에서'는 영미권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된 참전 군인·유가족 자선 모금 캠페인의 상징물이 됐고, 시의 영향으로 1921년 무렵부터 영국 등에서 양귀비꽃이 1차 대전 상징이 됐다. 캐나다에서는 학교 수업시간에 이 시를 낭독하며 전쟁의 아픔과 국방의 중요성을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출처 : 조선일보 2018/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