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비즈니스

한국서 100억 수출기업 키우고, 사랑 베푸는 ‘파키스탄 사장님’

부산갈매기88 2018. 11. 26. 09:15

이웃이 된 이주민]<1>2006년부터 국내 사업 알리 대표

 

《 2억5800만 명. 지난해 유엔이 추정한 전 세계 이주민 수다. 세계 인구(75억5026만 명)의 3.4%가량은 태어난 나라, 모국(母國)이 아닌 곳에 정착해 살고 있다. 국내에도 지난달 기준 237만 명의 이주민이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곱지 않다. ‘일자리를 빼앗는다’ ‘세금은 내지 않고 혜택만 누린다’는 등 이주민을 향한 ‘혐오 목소리’도 작지 않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정착해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이주민들도 있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 한국대표부와 함께 ‘이웃이 된 이주민’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한국산 중고 중장비를 수출하는 파키스탄 출신의 무다사르 알리 ACM 대표는 지난해 100억 원가량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14일 인천 연수구에 있는 그의 회사 사무실 책상에는 그동안 한국무역협회로부터 받은 ‘수출의탑’ 트로피가 3개나 놓여 있었다. 인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4일 인천 연수구에 있는 한국산 중고 중장비 수출업체 ACM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상 위에 놓인 어른 팔뚝만 한 트로피 세 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수한 수출 실적에 대한 표창으로 받은 것이다. 그리고 사무실 한쪽 벽엔 여러 단체로부터 받은 ‘감사장’이 걸려 있었다. 

이 업체 대표는 파키스탄 출신 무다사르 알리 씨(35). 2006년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이제는 가족들을 만나러 1년에 2, 3번 파키스탄에 가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을 정도”라고 말할 만큼 한국은 ‘제2의 고향’이 됐다.

파키스탄에서 대학을 졸업한 알리 씨는 영국으로 유학을 가 정보기술(IT) 관련 공부를 했다. 그는 전공을 살려 취업하려고 했다. 사업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랬던 그가 전공과도 거리가 먼 ‘중장비 수출업’에 발을 들이게 된 건 형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파키스탄에서 한국산 중장비 인기가 많았어요. 한국에서 중장비 수출업을 하던 형을 따라 사업에 뛰어들었죠.” 베트남에서 한국산 중고 중장비를 사들여 파키스탄으로 수출하던 그는 형이 한국에서 사업을 정리하고 파키스탄으로 돌아오자 형 대신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2006년 지금의 회사를 차렸다. 당시 5억 원을 투자해 기업투자(D8) 비자를 받았다. 

알리 씨가 한국에 왔을 때는 이미 중고 중장비 수출 분야에 파키스탄 사업가가 많았다. 후발 주자였던 그는 중간 이윤을 최소화하고 그 대신 판매량을 늘려 사업 규모를 키워 갔다. 주요 수출국은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였다. 수출량을 꾸준히 늘려 2014년부터 3년 연속으로 한국무역협회가 주는 300만 달러, 500만 달러, 1000만 달러 ‘수출의탑’ 트로피를 받았다. 사무실 책상 위에 있던 바로 그 트로피다. 한국인 직원 2명을 고용하고 있는 이 회사의 지난해 수출 규모는 약 100억 원이다.

이 같은 수출 실적을 인정받은 그는 지난해 11월 파키스탄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정부로부터 특별 귀화를 허가받았다. 특별 귀화는 정부가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외국인 우수 인재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허가한다. 그는 “처음에는 한국어, 한국 음식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한국에서 좋은 사람들만 만난 덕에 사업을 성공적으로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알리 씨는 현재 한국에 있는 파키스탄 사업가들의 모임인 파키스탄무역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타국살이를 하면서도 알리 씨는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챙겼다. 그는 인천 연수구 세화종합사회복지관에 8년째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이 복지관 최초이자 유일한 외국 출신 후원자다. 이 복지관을 돕게 된 것은 2011년 받은 한 통의 편지가 계기가 됐다. 그는 “사무실로 배달된 편지를 읽지 못해 한국인 직원에게 보여줬더니 노인들을 돕는 곳에서 후원을 요청하는 내용이라고 했다”며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후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8.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