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근무 태만으로 잘리고 싶어요"/ "네 돈이면 이렇게 쓰겠냐?"

부산갈매기88 2019. 12. 19. 07:11

빚까지 내며 펑펑 퍼주는데 못 챙겨 먹는 사람이 바보
공짜에 중독되면 권리로 생각… 자기 돈이면 이렇게 쓰겠는가

김영진 경제부장
김영진 경제부장

"열심히 알바 하던 청년이 어느 날부터 빈둥거려 이상하다 싶어 물어봤지요. 주뼛거리던 청년이 털어놨습니다. 실업급여 받으려면 스스로 그만두면 안 되니, 근무 태만으로 잘리려고 그런 거라고. 친구들도 그렇게 해서 실업급여 받다가 다시 알바 하고 있다고…."

편의점주 사연을 듣던 지인들은 모두 혀를 찼다. 일 안 하고 매달 100만원 안팎 실업급여를 타내기 위해 멀쩡한 청년들이 다니던 일터에서 쫓겨날 궁리를 한다는 게 기가 막혔다. 실업의 고통을 덜고 재취업할 동안 생활 자금에 보태라고 나라에서 주는 실업급여가 공돈 취급당하는 것이다. 실제 3년 동안 3번 이상 실업급여를 반복적으로 타 간 사람이 올 들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3만2000여 명이던 것이 올해엔 상반기에만 1만8000명을 넘어, 연말이면 작년 수준을 훌쩍 넘길 것 같다.

나라가 곳간을 열고 돈을 펑펑 써대니 못 챙겨 먹는 사람이 바보인 세상이 되고 있다. 너도나도 손을 벌리는 바람에 국가 비상금인 예비비까지 끌어다 쓰고 있다. 영세 업체 근로자 월급을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은 올해 신청자가 예상보다 86만명이나 늘어나 985억원의 예비비가 긴급 투입됐다. 공짜로 준다니, 눈속임해서 나랏돈을 타내는 경우도 늘고 있다. 생계급여나 고용장려금 같은 정부 보조금을 부정하게 받다가 걸린 건수가 올 7월까지 12만건이 넘었다. 작년 연간 적발 건수의 3배에 육박한다. 지방자치단체도 중앙정부에 질세라 경쟁적으로 현금을 퍼주고 있다. 정부가 65세 이상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기초연금이 있는데도 지자체마다 각종 노인수당을 주고, 비슷한 이름의 청년 근로자 현금 지원 사업도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발에 치일 정도로 주인 없는 돈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현금 복지에 혈안이 되어 나라 곳간을 허물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정부의 나랏돈 푸는 속도는 가히 기록적이다. 해마다 경제성장의 2배 넘는 속도로 지출을 키우는데, 외환 위기나 카드 사태, 세계 금융 위기 같은 국가 비상사태 때 말고는 볼 수 없었던 일이다. 내년엔 사상 최대의 나랏빚까지 내겠다고 한다. 위기 때 최후 보루로 남겨둬야 할 재정을 갉아먹으면서 현금을 뿌리겠다는 것이다.

눈먼 돈이 세상천지에 깔리자 백성들은 공짜에 길들여지고 이제 나라 곳간까지 넘보게 됐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있다. 공짜는 부작용이 언제 나타나느냐가 문제일 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돼 있다는 뜻이다. 공짜는 하나를 주면 둘을 달라고 하고, 둘을 주면 셋·넷을 달라고 하는 속성이 있다. 일 안 해도 돈이 나오니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짜는 일할 의욕을 꺾고 공돈 타낼 궁리만 하게 만든다. 공짜에 중독되면 마치 권리인 것처럼 요구하게 되고,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 문 정부도 해마다 현금 살포를 늘리고 있지만, 저소득층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서 가장 많은 복지 혜택을 받는 월소득 100만원 이하 가구의 92%는 내년 살림살이가 나빠지거나 그대로일 것이라고 비관했다.

문 대통령은 돈 잘 벌던 변호사 시절에 생활비만 집에 주고 나머지는 본인이 후원하는 곳에 건넸다고 한다. 미담이다. 하지만 누굴 돕자고 빚까지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빚도 내가 갚아야 할 돈이기 때문이다. 지금 문 정부는 빚까지 내가며 자선사업 하듯 나랏돈을 풀고 한다. 정주영 회장이 회삿돈 관리 잘 하라며 직원들에게 했다는 따끔한 한마디를 들려주고 싶다. "네 돈이면 이렇게 쓰겠냐?"



출처 : 조선일보/2019/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