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수호자들] [3] 가짜 뉴스 판치는 인도네시아… 팩트체크 앞장 선 언론·시민단체
전국 4만여개 언론 매체 난립… 사실 추구보다 클릭 수 경쟁 몰두
모바일 메신저가 언론사 기사 순위 매겨 제공, 저질경쟁 기름 부어
언론·시민단체 손잡고 대선후보자 토론 실시간 팩트체크해 호평
지난달 17일 자카르타 푸삿의 인도네시아 정보통신부 건물 3층 회의실. 직원 이바나 마이다씨의 스마트폰에 메신저 알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전날 자카르타에 시간당 5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우기(11~4월)에 흔히 있는 일이지만, 저녁부터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침수 피해 현장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이 돌았다. '스나얀 지역 겔로라 붕 카르노 경기장 근처의 한 편의점'이라는 구체적인 설명까지 붙었다. 이바나씨는 "와츠앱(모바일 메신저) 단체 채팅방 30여개 중 10개 이상에서 이런 내용의 사진이 뿌려졌다"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논란이 계속되자 정보통신부가 자체 팩트체크를 통해 '사실무근'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바나씨는 "늘 있는 일이다. 지난달엔 수퍼마켓에서 플라스틱 쌀을 판매한다는 헛소문이 돌아 주부들이 공포에 떨었다"고 했다. 한 해 전엔 '시중에서 판매되는 소금에 유리 성분이 함유됐다'는 내용을 담은 영상이 유튜브에 퍼져 식약청이 유통 중인 소금 상품을 전수 조사했다.
인도네시아 국민은 어떻게 정부나 언론보다 작자 미상의 가짜 뉴스를 신뢰하게 됐을까. 1998년 모하마드 수하르토 전 대통령 퇴임 후 언론은 자유로워졌다. 후임 하비비 대통령은 신문과 잡지의 출판 허가·취소에 관한 법령을 폐지했고, 언론 평의회를 세워 언론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그 결과 언론사 숫자가 폭증했다. AJI에 따르면 오늘날 인도네시아 전역에 4만여 매체가 있고, 기자 숫자는 10만명이 넘는다. 숫자가 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언론은 저널리즘의 기본인 진실과 사실 추구보다 클릭과 트래픽을 늘리기 위한 경쟁에 몰두했다. 틱톡과 라인 같은 모바일 메신저가 언론사 기사를 취합해 순위를 매겨 제공하는 것도 저질 경쟁에 기름을 부었다. 산티 인드라 아스투티 이슬람반둥대 교수는 "언론이 클릭과 트래픽에 영합하면서 저널리즘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크게 낮아졌다"며 "그것이 혼란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 틈을 권력이 파고들고 있었다. 정부는 2018년 사이버 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사이버암호청을 신설했다. 작년에는 정보통신부가 가짜 뉴스를 모니터링하는 부서를 만들었다. 이름이 '워룸(war room)'이다. 프리랜서 언론인 댄디 코스와라푸트라씨는 "이해관계가 있는 정부가 앞장서서 어느 정보가 가짜인지 또는 진짜인지를 판단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에 대항해 언론이 시민단체와 만든 팩트체크 연합체가 '쩩 팍타(CEK FAKTA)'다. 작년 대선 때 여섯 차례 후보자 토론 때는 후보자 한마디 한마디를 실시간으로 팩트체크해 사실 여부를 판단했다. 유권자
의 호평을 받았다. 올해 9월 지방선거에 대비해 '고잉 로컬(going local)'이란 슬로건을 세웠다. '지역으로 간다'는 뜻이다. 300여 지역구에서 지역 언론과 협업해 지역별 팩트체킹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리보 마핀도 대표는 "선거철이라 기자 인력과 자원이 부족하지만 역할 분담을 통해 각 언론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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