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식히기

[세상을 바꾼 물건] 볼펜, 신문기자 형과 화학자 동생의 합작품이었대요

부산갈매기88 2020. 10. 5. 08:05

<세상을 바꾼 물건>코너는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날 수 있어 익숙한 물건들에서부터 우주와 심해의 신비를 파헤치는 장치와 설비까지 세상을 바꾼 발명품들이 탄생하게 된 이야기를 다루게 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했어요. 99%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1%의 반짝이는 영감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겠죠?

 

비로 형제가 발명한 볼펜 광고예요

볼펜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각종 내용을 기록해야 할 때 쓰는 물건이죠. 볼펜을 많이 쓰는 직업인들은 잉크 소모량이 많아서 책상 한편에 볼펜 심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갈아끼우곤 해요. 이처럼 심만 갈아끼우면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글을 쓸 수 있는 편리한 도구인 볼펜은 언제 어떻게 발명되었을까요?

 

볼펜 발명 이전에 고대·중세 유럽에서 주로 쓰던 필기도구는 깃펜이었습니다. 거위나 꿩 등 깃대 속이 텅 비어 있는 새의 깃털을 이용해 펜으로 사용했던 것이죠. 하지만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금속으로 된 펜촉을 이용해 잉크를 찍어 쓰는 딥펜이나 펜대에 잉크를 채워서 쓰는 만년필이 대량 양산됐어요.

 

만년필은 편리했지만 나무나 가죽 등 표면이 거친 재질에는 잘 써지지 않고 종이가 자주 찢기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던 영국의 가죽 가공업자 존 라우드는 1888년 강철로 만든 구슬을 강철 소켓으로 감싸는 방식의 새로운 펜을 개발했습니다. 볼펜의 시초라고도 볼 수 있는 이 펜의 개발로 인해 거친 표면 위에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이 펜은 글씨를 쓸 때 잉크가 새는 현상도 있었고, 글씨를 쓰기에는 다소 사용감이 거친 면이 있어 상용화되지 못했어요.

 

이후 편리한 볼펜 개발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제대로 된 펜의 개발은 의외로 어려웠어요. 볼이 너무 뻑뻑하면 글이 잘 써지지 않았고, 볼이 너무 느슨하면 잉크가 새는 문제가 발생했죠. 또 잉크 역시 너무 묽거나 걸쭉하면 잉크가 새거나 아예 나오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유대계 헝가리인인 라슬로 비로, 죄르지 비로 형제였답니다. 신문기자이면서 발명가였던 형 라슬로는 잉크가 안에서 굳지 않으면서도 볼에 적당히 묻어 나오는 ‘볼 베어링 시스템’을 개발했어요. 화학자인 동생 죄르지는 너무 쉽게 새지도 않고 너무 뻑뻑해서 막히지도 않는 적당한 점성을 지니는 잉크를 개발했죠.

 

두 형제는 이렇게 개발한 볼펜을 1931년 박람회에 출품했고, 이어 1938년 영국에 특허를 출원하였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반유대주의가 전 유럽으로 확산되자 아르헨티나로 이주했지요. 이후 1943년 아르헨티나에 새로운 볼펜 특허를 출원하였어요. 형제가 발명한 볼펜을 바탕으로 1950년 영국의 플래티그넘사에서 흔히 ‘똑딱이’라고 불리는 클릭형 볼펜을 개발했습니다. 이 볼펜은 뚜껑을 닫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지요.

 

우리나라에는 1960년대부터 볼펜이 대중화되기 시작했어요. 1963년 광신화학에서 검은색과 흰색으로 디자인된 ‘모나미 153’ 볼펜을 출시했죠. 이 볼펜은 단순한 사용감과 저렴한 가격 덕분에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요. 어찌나 모나미 볼펜이 잘 팔렸는지 광신화학은 1974년 회사 이름마저 모나미로 바꾸었어요. 지난 40년 동안 30억 자루가 넘는 볼펜이 팔렸다고 하니 모나미 볼펜의 인기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시절 학생들에게는 모나미 153이 아주 친숙한 물건인데요. 한창 경제개발이 진행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학교에서 자원을 아끼라며 쓰고 남은 모나미 볼펜의 펜대에 몽당연필을 끼워 쓰도록 가르쳤기 때문이죠.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조선일보 2020/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