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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결단: 위험한 장사가 많이 남는다?

부산갈매기88 2009. 3. 27. 07:32

 

위험한 장사가 많이 남는다. 그것을 모르는 사업가는 없다. 멀리 내다보는 장사가 많이 남는다. 그것을 모르는 사업가도 없다. 하지만 얼마나 큰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모험심이 있느냐, 얼마나 멀리 내다보는 혜안이 있느냐, 하는 것은 그것을 성사시키는 사람의 능력이자 그릇인 셈이다.

 

역사상 가장 배짱이 두둑하고 천리안을 가졌던 사업가는 여불위(呂不韋 : ?~BC 235)였을 것이다. 고대중국의 가장 혼란스런 시기였던 전국시대(戰國時代)말, 조(趙)나라에 태어난 그는 뛰어난 상인이었다.

 

그는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며 무역을 해서 수천금의 재산을 모았다. 워낙 많은 돈을 벌어들이자 그는 다른 생각을 했다.

 

‘가장 큰 돈을 벌어들이는 장사는 무엇일까?’

 

문득 여불위의 뇌리에는 기발한 영감이 번뜩였다. 때마침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와 있는 자초(子楚)가 생각난 것이었다. 자초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의 손자였다.

 

당시 진나라는 조나라를 자주 공격해 와서 자초는 홀대당하고 있었다. 자초는 오두막집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어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였다. 여불위는 ‘한 인물을 사서 한 나라를 얻는다.’는 구상을 하고 진나라의 정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소양왕은 연로해서 머지않아 자초의 아버지인 안국군(安國君) 왕위에 오르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안국군에게는 정빈(正嬪)인 화양부인(華陽夫人)에게 소생이 없고 20명의 서출(庶出)왕자가 있을 뿐이었다. 자초 또한 그 서출 왕자 중의 하나인 8번째 왕자였다. 그렇다면 안국군은 누구를 태자로 세울 것인가? 여불위는 자초야 말로 사서 둘만한 기화가거(奇貨可居:보기 드문 물건을 사 두었다가 때를 보아 큰 이익을 남기고 판다는 뜻)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초를 찾아가 인재를 모으고 앞날을 닦을 자금으로 황금 500근을 주었다. 그는 한편 황금 500근으로 진귀한 패물을 구입해서, 화양부인에게 접근했다.

 

그는 화양부인에게 엄청난 패물을 바치고 자초가 태자로 지명되도록 만들었다. 여불위의 권력을 향한 눈물겨운 역정은 끝이 없었다. 여불위는 자초가 원하자 가장 아끼는 절세미인이자 조희(趙姬)를 자초에게 시집보낸다. 그녀는 이미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지만, 그는 자초에게 이 사실을 속인다. 조희가 낳은 아이가 훗날 진시황(始皇帝)이 된 정(政)이다.

 

과연 대사업가 여불위의 투자는 적중했다. 우연히 찾아낸 진귀한 물건인 자초는 진나라의 태자가 되었다. 여불위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전천후 로비가 성공을 거둔 셈이다. 세월도 여불위의 편이었다. 왕위에 오른 효문왕((孝文王, 안국군)이 1년 만에 죽자 자초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가 바로 장양왕(莊襄王)이다. 장양왕은 “그대의 계략대로 내가 보위에 오르면 진나라를 그대와 함께 다스리도록 하겠소.”라고 약속한 대로, 여불위를 승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장양왕도 재위 3년 만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보위를 이은 것은 정이었다. 그가 바로 최초로 중국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이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진시황은 여불위를 상국으로 삼아 그를 중부(仲父·숙부)라 불렀고 진나라는 여불위의 손 안에서 움직였다. 한 사람을 얻어 한 나라를 얻은 대사업을 완수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은 비정한 것이다. 진시황은 녹록치 않은 인물이었고 성인이 되자 여불위의 전횡을 두고 보지 않았다. 여불위는 자신의 전성시대가 끝났음을 깨닫고 자식의 손에 죽임을 당하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선택했다.

 

<중소기업뉴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