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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질>

부산갈매기88 2010. 7. 5. 08:19

 

 

아무리 봐도 요즘 세상에는 신경질이 많은 것 같다. 원래 우리 고유의 말은 ‘짜증’이 아닌가 한다. 신경질은 짜증보다 더 타인에게 자극을 주는 보다 독한 표현 같다. 우리네 인심이 그만큼 각박해지고 난폭해진 것이다. 한국인들은 원래 난폭했는가?

 

 

신경질이란 무엇인가?

그 어원은 아마도 서양의학의 ‘신경’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신경기간은 뇌와 척추라는 중추신경계와 몸 전체의 감각과 운동을 관할하는 말초신경기관으로 나눠진다. 그러나 보통 신경이란 주로 뇌기능을 말한다.

 

 

뇌는 인간 정신의 센터이기도 하다. 뇌가 기능을 잘 못하면 감각과 운동뿐 아니라 정신기능, 즉 판단, 기억, 기능의 수행, 감정통제 등이 잘못된다. 발길질, 주먹질이 난폭한 행동인 것처럼 신경질은 뇌의 난폭성을 말하는 것 같다. 뇌의 난폭성은 마음의 난폭성이고, 이는 실제 행동에서 분노표현, 욕설, 폭행 등 공격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 뇌에는 공격에 대한 장치가 있다. 이것은 인간도 동물로서 내외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투쟁을 해야 할 경우에 대비해서 진화된 기능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능은 본능의 하나로서 모든 동물에 다 있는 기능이다. 따라서 동물에 불쾌한 강점을 건드리면 반사적으로 공격적 행동이 나온다. 단지 인간에게는 지혜와 상상력, 그리고 사회성이 있어 공격성이 ‘인간적’으로 변형되어 나타날 뿐이다.

 

 

분노, 미움, 질투 등은 말 속의 가시로, 교묘하게 진심이나 농담처럼 위장되어 허를 찌르기로, 신경질을 유발시킬 정도의 폭력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차마 폭력을 행사할 수 없어 말로 행동으로 신경질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워낙 난폭한 사람을 만나면 신경질을 넘어 주먹질, 발길질을 당할 수 있다.

 

 

화가 나면 너그러이 참던지 아니면 점잖게 논쟁을 벌이던지, 정말 화가 나면 주먹질, 발길을 한 터인데 한국 사람들은 신경질부터 먼저 낸다. 정신과 의사의 진찰실에서도 갖고들, 특히 청소년 자녀들의 신경질 때문에 고통 받는 어머니들이 많음을 본다. 어떤 부부는 의사 앞에서 서로 신경질을 부리면서 싸운다.

 

 

TV 드라마에서도 신경질 부리는 장면이 많다. “왜 신경질이야!”라는 대사가 자주 들린다. 가족, 친척, 친구들, 직장 동료들 사이에 화려하게 전개되는 불꽃 튀기는 신경질적인 대사에 한국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며 몰두한다. 어떤 평론가가 신문에 쓴 글을 보니, 얼마 전 김태용의 ‘가족의 탄생’이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어느 캐나다 관객이 감독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왜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화가 나 있나?” 영화내내 각기 다른 사람들에 의해 “내 나한테 왜 그래?"라는 대사가 계속 반복되어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글쓴이는 한국인들은 분명 문명세계의 평균(그것이 어느 정도이건)보다 분노해 있고, 이를 당연히 여기며 분노를 먹고 산다고 했다. 그리고 이 평론가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나오는 영화가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 나라에서는 결코 섞일 수 없는 강한 분노와 증오가 코미디나 로맨스 같은 장르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지어 신문에 보면 흔히 점잖은 분들이 무슨 말을 듣고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기사가 눈에 뜨인다. 눈을 좀 돌리면 길거리에서도 신경질 부리는 장면을 많이 본다. 실례를 범해 놓고는 모른 척 지나가버리는 사람에 대해서 신경질이 막 나지만 정작 뭐라고 할 틈조차 없다. 정말 신경질날 일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관의 신경질은 얼마나 신경질 나는 일인가. 결국 그 신경질을 받은 사람은 퇴근길에 딴 사람에게 신경질을 내든지 집에 와서 부인이나 어린 자녀들에게 신경질을 부릴 것이다.

 

 

좁은 땅에 인구는 많으니 부딪칠 일도 많고, 신경질 날 일도 많을 것이라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이런 신경질에 무덤덤해지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 작가들은 더욱 더 날카롭고 폐부를 찌르는 신경질적인 대사를 고안하느라 온 재능을 다 짜낸다. 보통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신경질적인 말을 교묘하게 톡 쏘며 표현하는데 도가 텄다. ‘됐어!’가 그 대표적이다.

 

 

 

<연세대 정신과 만성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