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맛집

무미 무취의 살인독 '아비산'

부산갈매기88 2010. 7. 8. 08:40

‘어리석은 자의 독’ 아비산

 

청산과 독약의 쌍벽을 이루는 아비산은 비소 산화물 중 하나로 맛과 냄새가 없어 예로부터 암살이나 범죄에 자주 이용되던 독극물이다. 1998년 일본 와카야마에서 발생한 독 카레 사건에서도 바로 이 아비산이 사용되었다.

 

아비산을 대량 섭취하면 복통을 동반한 콜레라처럼 설사와 구토를 일으키며, 심한 경우에는 극심한 탈수 증상과 쇼크가 와 티아노제와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게 된다. 그러나 아비산을 조금씩 섭취하는 경우에는 증상의 발현 방식이 조금 다르게 나타나는데, 다발성 신경염과 말초신경 장애 등을 일으키다 서서히 몸이 쇠약해져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아비산은 냄새와 맛이 없기 때문에 음식물에 넣어도 상대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므로 예로부터 손쉽게 범죄에 이용되었다.

 

아비산을 먹었을 때 목숨을 잃게 되는 이유는 아비산이 사람의 몸속에 있는 다양한 효소들과 결합해 효소의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특히 치명적인 작용은 세포의 에너지 공급원인 생성을 방해하는 것이다. ATP는 영양분과 효소의 화학반응으로 만들어지는데, 그 반응을 촉진하는 것이 숙시닐(Succinyl) 효소라고 하는 효소다. 아비산은 이 효소가 가진 SH기와 결합함으로써 ATP의 에너지 생성을 방해한다. 따라서 세포에 에너지 공급이 끊겨 몸이 점점 쇠약해져 가는 것이다.

 

유럽에서 아비산이 빈번하게 사용된 시기는 17~18세기경이다. 당시에는 귀부인들을 대상으로 ‘토파나 수(Aqua Toffana)'라는 화장수가 판매되었는데, 그 성분 속에 아비산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비산에는 멜라닌 색소의 생성을 억제하고, 피부를 하얗게 만드는 작용이 있다. 그런데 당시 귀부인들은 토파나 수를 화장수보다는 독살용으로 더 많이 이용했다. 와인이나 차 속에 토파나 수를 몰래 몇 방울 떨어뜨려 자신에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남편을 독살했다.

 

당시 독살마로서 가장 악명을 떨친 이는 프랑스의 브랭빌리에 후작부인을 들 수 있다. 독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던 그녀는 친아버지와 형제들을 비롯해 자선병원의 환자들까지 100명 이상을 아비산으로 독살했다고 한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몸속에 있는 비소를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따라서 아비산을 이용해 독살한다 해도 금방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 후 이 독을 사람을 죽이는데 이용하는 자는 바보 같다는 의미에서 아비산을 ‘어리석은 자의 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비산은 쥐약이나 안료, 제초제로 사용하지만, 강한 독성 때문에 사용을 규제하는 나라들이 많다. 일본에서 발생한 유명한 비소 사건으로는 1955년 일어난 모리나가 분유 사건을 들 수 있다. 분유의 첨가물인 제2인산나트륨에 비소가 섞여 있었기 때문에 많은 유아들이 비소 중독에 걸려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아비산의 해독제로는 발(BAL)이 있다. 발은 제1차 세계대전 말기 미란성 독가스의 해독제로 만든 것으로 SH기를 갖고 있어 아비산이 효소의 SH기와 결합하기 전에 먼저 아비산과 결합함으로써 아비산이 독성을 나타내는 것을 억제한다. 또한 효소와 결합한 아비산에 붙어 효소와 아비산을 분리하는 역할도 한다.

 

 

다나카 마치 <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