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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결단: 수에즈 운하

부산갈매기88 2009. 2. 17. 10:23

<위대한 결단: 수에즈 운하>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3천년 전부터 있었다. 기원전 7세기 이집트인들은 운하를 건설하다 중단했다. 제사장이 ‘야만족의 침입을 돕는 길을 뚫어주는 짓’ 이라는 신의 계시를 전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이집트를 정복한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도 운하 건설에 나섰다. 그러나 홍해가 육지보다 높아 운하를 파면 이집트가 물에 잠길 것이라는 말을 듣고 중단해야 했다. 1798년, 이집트를 점령한 나폴레옹도 운하를 건설하고자 했으나 홍해와 지중해의 수위차가 10m나 된다고 측량기사가 잘못 보고하는 바람에 운하를 건설하려던 나폴레옹의 꿈도 날아가 버렸다.

 

1832년, 페르디낭 드 레셉스(Ferdinand-Marie de Lesseps 1805∼1894)는 프랑스영사로 알렉산드리아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대한 책을 읽다가 운하를 뚫으려던 계획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홍해와 지중해의 연결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연결이자, 유럽으로 가는 길목을 트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맞다, 이곳에 운하를 뚫게 되면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까지 1만 6천㎞를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아, 이것이 나의 일이구나!’

 

이렇게 생각한 레셉스는 세밀한 조사에 들어갔고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이집트 왕 사이드 파샤를 찾아가서 건의했다. 1854년 레셉스는 파샤로부터 건설허가서를 받았으나, 영국이 자국의 권리와 이익이 위협받는 것을 염려하여 강력한 반대운동을 펼쳤다. 당시 이집트의 왕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이집트는 오스만제국(터키)의 지배하에 있었고, 영국은 해군을 주둔시키며 상업적으로 이집트를 지배하고 있었다.

 

레셉스는 결정권을 쥐고 있는 영국으로 달려갔다. 그는 국회의원, 각료, 언론인들과 접촉하며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으나 모두들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낙망한 레셉스는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운하건설이 단순히 상업적으로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서도 유익한 것이란 점을 상인, 무역상, 일반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해 나갔다. 그는 운하가 동서양을 하나로 연결해 주고 장벽을 허물게 될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도 영국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레셉스는 거기서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렸다.

 

‘좋다, 그렇다면 나만의 힘으로 운하를 팔 것이다.’

 

레셉스는 다시 이집트 왕을 찾아가서 설득했다. 1854년 11월 30일 사이드 파샤는 레셉스에게 수에즈 지협을 뚫을 권한과 99년간 운영하는 권리증서에 서명했다. 레셉스는 그때부터 공사비에 필요한 2억 프랑의 자본을 모으기 위해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 각국을 돌면서 운하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자금을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프랑스 국민들은 가장 프랑스적인 사업이라는 자긍심으로 뭉쳐서 주식을 매입했다. 그는 자금이 조성되자 유럽 최고의 기술자들을 불러 들였다.

 

1859년 4월 5일, 수에즈 운하를 착공하는 첫 삽을 떴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869년 8월 15일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가 완공됐다. 실로 레셉스의 평생을 바친 대역사의 완성이자 동서양을 있는 가교의 완성이었다. 수에즈 운하가 완성되자 그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가 됐다.

오늘날도 수에즈운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무역로를 지배하는 위치를 점하면서 세계 경제의 동향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고, 국제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뉴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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