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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결단: 로마의 길

부산갈매기88 2009. 2. 18. 09:36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0년 제국 로마를 상징하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하지만 이 길을 닦게 만든 사람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드물다.

 

기원전 312년, 최초로 로마의 간선도로인 ‘비아 아피아(Via Appia, 아피아 가도)’을 만든 사람은 집정관 아피우스 클라디우스 카우쿠스다. 고대국가에 있어서 도로를 닦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의 침략이 두려워서 많은 국가들은 성을 쌓는 일에 주력했지 길을 닦는 일은 소홀히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 로마정국을 주도했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다른 생각을 했다. 로마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글재주와 연설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그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귀족보다는 평민들의 편에 선 정책으로 명성을 얻고 정치적 입지를 키워나갔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손에 넣었던 로마를 더욱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도로를 닦아서 주변 국가들을 지배할 구상을 했다.

 

그것은 길을 지킬 자신이 있는 자만이 길을 건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로마의 길은 단순한 행정도로가 아니라, 정치와 군사력을 상징하는 로마적 의미를 가진 길이 됐다.

로마인들은 길을 닦으면서 길이 지나는 지역의 이민족들을 포용하고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따라서 로마의 길이 확장됨에 따라 로마의 세력권이 확장되었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의 이름을 딴 아피아 가도가 완성됐을 때에는 당시 선진 문화권이었던 그리스, 서아시아, 이집트 등 지중해 전역이 로마의 영역이 됐다.

 

이는 지중해를 ‘마레 노스트룸(우리들의 바다)’이라 부른 것으로도 증명된다. 아마 아피아 가도를 건설하지 못했다면 ‘팍스 로마노’(로마제국에 의한 평화체제)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피아 가도는 로마인들이 최고의 토목공학 기술로 만든 성과물이다. 노폭은 마차 두 대가 지날 정도(4m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동원된 공법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땅을 1~1.5m 깊이로 파고 그 바닥에 주먹만한 돌을 깐 다음 모래와 자갈, 잘게 부순 돌로 채웠다.

 

마지막으로 돌을 잘라서 서로 물리게 해 움직이지 않도록 박았는데 가운데를 볼록하게 했다. 길 양쪽으로 도랑을 내 물이 잘 빠지도록 한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오늘날의 ‘고속도로’를 건설한 것이다. 평상시에는 말과 마차들이 다니고 전시에는 기마군과 전차들이 질풍노도처럼 내달려서 적군을 막아냈다.

 

이탈리아 반도는 물론 로마제국이 차지한 광대한 영토에 로마제국 융성기인 기원 후 2세기에는 지중해를 감싸는 도로망이 완성돼 완주하는 데만 무려 13일이 걸렸다고 한다.

 

로마는 이렇게 잘 닦여진 도로망 덕에 1000년 동안 제국을 유지하면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다. 로마의 길은 2400년이나 되는 장구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도로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유럽 도로건설의 모델이 돼 줬다. ‘인프라의 아버지’라는 로마는 인프라 대신 ‘몰레스 네케사리에’란 말을 사용했다. 이 말은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대사업’이란 뜻이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아피아 가도를 건설했을 뿐 아니라 로마 최초의 상하수도 건설 책임자로도 이름을 남겼다. 그는 로마의 도로와 상하수도를 정비해,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수도 로마를 많은 사람이 쾌적하게 살 수 있는 도시로 바꾸게 한 선각자로 추앙 받았다.

 

<중소기업뉴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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