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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7,200km

부산갈매기88 2009. 2. 18. 10:24

[역사를 바꾼 건축] 만리장성 7,200km

 

1969년 어느 날 영국 소년 윌리엄 린드세이(11)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마치 누군가가 땅바닥에 그린 것 같은 오렌지색 띠가 보였다. 잠시 후에 그 가늘고 긴 띠가 ‘만리장성’(The Great Wall of China)이라는 설명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우주선이 보내온 지구표면 사진 속에 나타난 만리장성의 모습이었다.

 

호기심이 많았던 린드세이는 즉시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만리장성의 위치를 찾았다. “음, 이거란 말이지….” 만리장성을 처음 본 그날 린드세이는 자신이 갈 길을 결정했다. “언젠가는 저 놀라운 고대 성벽을 두 발로 밟아 보고야 말겠어!”라고 결심했던 그는 대학에서 지리학과 지질학을 전공하여 1987년에 드디어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었다. 그것도 제 발로 그저 밟아보는 정도가 아니라 만리장성 2470㎞를 걸으며 그 실체를 속속들이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그와 같은 도전을 시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린드세이는 자신의 만리장성 답사기 ‘혼자서 만리장성을 거닐다’라는 책에서 “그때의 체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고백했다. 800일 이상을 만리장성에서 보낸 그는 ‘만리장성 국제우호협회’를 창설한 데 이어 보존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만리장성(이하 장성)은 보하이만(渤海灣)의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시작하여 중국 대륙 북쪽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봉우리를 따라 실크로드의 동쪽 끝 타클라마칸 사막에 위치한 자위관까지 이른다. 총 길이는 6700㎞로 알려져 있으나 2001년에 500㎞가 추가로 발견되어 7200㎞라고 고쳐 부르기도 한다. 만리장성은 인공위성에서 보면 하나의 선으로 나타난다.

 

장성의 장관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은 베이징 북쪽 80㎞에 거리에 있는 바다링(八達嶺)이다. 책이나 그림엽서에서 흔히 보는 사진은 대부분 이 바다링 일대에서 찍은 것이다. 바다링에는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어 해발 853m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장성이 가진 멋과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힘이 들더라도 린드세이처럼 두 다리로 걷는 것이 좋다.

 

장성은 두 개의 벽으로 구성된다. 그 사이로 말 두 필이 동시에 달릴 수 있는 이동통로가 나 있다. 남벽보다 높은 북벽은 여장(女牆: 낮은 담)으로 꾸몄고 그 속에 총안(銃眼)까지 두어 북방으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한 군사시설물임을 일깨워준다. 거기에 서면 모래바람이 이는 몽골고원이 다가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120m 간격마다 돈대(敦臺: 높게 축조한 포대)를 세웠다. 보통 2층 구조로 된 돈대는 위층을 적의 동향을 살피는 데 사용했고 아래층은 병사들이 먹을 식량과 말에게 먹일 사료, 장비와 화약 등을 보관하는 창고 겸 병사의 숙소로 썼다. 또 적의 침입과 전쟁 상황을 알릴 수 있도록 봉화대도 설치했다. 봉화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꽃으로 군사 정보를 알리는 통신방법이다. 불을 피울 때에는 가축의 배설물을 태웠다. 사람의 출입이 많은 곳에는 ‘관(關)’을 두어, 출입하는 자의 신분과 휴대품을 철저히 확인했다. 그 중 제일 동쪽에 있는 산하이관은 조선 사신이 제일 많이 사용했던 곳이다.

 

이제 만리장성은 더 이상 군사시설이 아니다. 매년 1000만 명이 찾는 중국 제일의 관광자원이다. 중국인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만리장성 기념비’가 서 있는 해발 888m까지 오른다. 글씨는 마오쩌둥의 것이라 특이한데, 이 기념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다. 만리장성 기념비를 굳이 해발 888m에 세운 것은 돈을 번다는 뜻을 가진 ‘발(發)’자와 숫자 ‘8’의 발음이 같아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숫자 8이 들어가는 전화번호나 차량번호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인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