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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는 또 하나의 자본이다

부산갈매기88 2009. 4. 27. 09:04

사회학자인 로버트 퍼트넘 박사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미국의 성인들이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의 변화양상을 추적해 <혼자 볼링하기: 미국의 사회적 자본 쇠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70년대 미국인의 3분의 2가 일정 단체에 정기적으로 참여했으나 1990년대에는 그 비율이 3분의 1로 뚝 떨어졌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사회적 관계가 감소하면서 사회적 자본도 지난 20여 년 동안 함께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인간관계는 또 다른 형태의 자본이다. 이를 제임스 콜만은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칭했다. 이 사회 자본은 당장 환급되지는 앉지만 차츰 축척되는 자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늘 명함을 주고받는다. 이는 그로 인해 사회적 관계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우리는 특정관계를 특별히 사회적 자본이라고 명명하지는 않지만, 그것도 하나의 자본임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관계가 축소된다는 것은 사회자본이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건강한 관계 확충을 통한 사회자본의 축적은 어느 사회에서나 절실하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나라든, 사회자본이 늘어나야 부강해지는 법이다. 그리고 여기서 사회 지능이 필요해진다. 보다 충실한 자본을 축척하고 갈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덜 치르려면 쓸데없이 적을 만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슈바이처 박사는 유년시절 하나의 사건 때문에 특별한 삶을 살게 되었다. 14세 때 동네 아이를 쓰러뜨린 후 마구 때린 일이 있는데, 그때 슈바이처에게 맞던 아이가 이렇게 울부짖었다.

 

“내가 만약 너처럼 매일 잘 먹을 수 있었다면, 이렇게 얻어맞지 않았을 거야.”

 

이 한마디에 어린 슈바이처의 뇌리에 어떤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자신보다 약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깊이 각인했고, 24년 후 모든 것을 버리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어린 나에에 관계에 대한 성찰이 깊었던 것이다.

 

이런 표현이 있다.

“당신이 미소 지으면 온 세상이 당신을 따라 미소 짓고, 당신이 울상을 지으면 온 세상이 당신을 따라 울게 된다. 세상은 당신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티베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을 향해서 미소 지으면, 반은 당신 얼굴로, 나머지 반은 타인의 얼굴로 간다.”

 

1920년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찰스 홀턴은 ‘거울자아’의 개념을 제시했다. 생우 14개월이 되면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기를 의식한다. 그전까지는 자신과 타자에 대한 구별 의식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즉 이처럼 사람이 ‘거울’을 통해서 ‘나’를 의식하듯, 사회 안에서 나를 의식하려면 반드시 상대방이라는 거울이 필요하다.

 

정진홍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