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비즈니스

"세계 터치패드시장 석권, 우리가 해낸다" 제임스 정

부산갈매기88 2011. 1. 4. 08:50

희망을 노래하는 솔렌시스㈜ 사람들
제임스 정·우관제·스티브 한 등 '손잡고'… 실리콘밸리서 광주로
광(光)산업과 기초연구력 강한 매력도 배경… 광주시 적극 유치
작년말 광주첨단 공장 가동… 세계적 원천기술로 2013년 1조 기대

"고국에서 '사고' 한번 칩시다."

2009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의 한 카페. 세계 소프트웨어산업의 중심 연구단지 '실리콘밸리'가 멀지 않은 이 커피숍에서 한 중년 남성이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얼핏 기대감이 피어 올랐다. 잠시 후 수염이 덥수룩한 또다른 중년 남성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정(51).

광주의‘새 희망’을 쏘아올린 솔렌시스㈜ 주역들. 왼쪽부터 제임스 정 부사장, 우관제 대표이사, 이용규 홍보이사. 뒤로는 이 회사의 창설 멤버들이다. 광주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일으키겠다는 자신감과 긍지가 엿보인다. 이들은“전 세계에서 터치패드산업하면 대한민국 광주가 떠오를 날도 멀지 않았다”며 가슴속 희망을 펼쳤다.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한국에서 함께 일해봅시다. 미국에서 개발한 기술은 한국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우리의 것으로 새로 만듭시다."

기다리던 그가 정색하고 다부지게 말했다. 광주는 물론 우리나라의 미래 정보기술(IT) 성장 동력이 꿈틀대는 순간이었다.

◆터치패드 거목과의 만남

제임스 정의 한국 이름은 정진화. 실리콘밸리의 '마이다스의 손'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전류를 인식해 작동하는 지금의 스마트폰 '정전식 터치' 방식을 처음 개발한 실리콘밸리 '시냅틱스'사(社)의 선임 엔지니어였다. 이런 그를 학수고대한 이는 대우그룹 출신으로 국내 IT 전문가인 우관제(42) 대표였다. 우 대표는 제임스 정의 경험을 한국 터치패드 개발에 쏟아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우 대표는 1년 전 산자부 '차세대 성장동력사업단'의 자문 교수단과 함께 실리콘밸리를 찾았다가 제임스 정을 알게 됐다. 당시 교수단으로부터 "세계 터치패드 기술의 거목이 한국계 미국인이고, 그 사람이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국내 터치패드사업 파트너로 제임스 정을 낙점했다.

우 대표는 "시냅틱스는 참 불가사의한 회사였다. 미국 터치패드 중견업체이면서 연간 매출이 1조원이 넘었고, 마이크로소프트(MS)보다도 오히려 주가가 2배가 높았다"며 "그런 '몬스터(괴물)' 같은 회사 중심에 제임스 정이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심감이 넘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입 작업은 쉽지 않았다. 제임스 정은 이미 미국에 안착해 있었고, 업계에서의 입지는 확고했다.

실제 제임스 정은 2007년 휴대폰으로는 처음 정전식 터치패드를 장착한 LG 프라다폰을 선보였다. 아이폰 출시 4개월 전의 일이다. LG 초콜릿폰과 캐나다 림(RIM)의 블랙베리스톰, 구글 GI 등의 터치패드가 모든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이뿐 아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부활 제품인 아이팟(MP3 플레이어)의 정전식 터치센서도 제임스 정이 개발한 것이다. 전 세계 노트북의 80%를 차지하는 마우스 패드도 모두 그의 작품.

더욱이 미국 생활 23년째.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한국행을 선택할 만큼의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사실 제임스 정은 1984년 인하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고향은 강원도 원주.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 이틀 뒤 잠실 선착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곧장 미국으로 향했다. 이후 미국에서 줄곧 생활했고, 시민권까지 획득했다. 이민 초기에는 PC를 조립하고 주유소에서 일하며 지내야만 했다. IT로 성공하기 위해 무작정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영상 보안 사업체를 창업해 진가를 올렸다. 라스베이거스의 초대형 호텔에 영상장치를 납품하며 승승장구했다.

우 대표는 그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서울과 샌프란시스코를 8회 왕복했다. 삼고초려(三顧草廬)의 노력으로 제임스 정을 설득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가 무슨 제주도도 아니고, 금요일에 갔다 일요일에 오는 경우도 많았어요. 처음엔 불법 체류자로 의심하던 현지 이민국 직원이 '저번 주에 왔는데 또 왔냐'고 하더군요."

우 대표의 진심을 알게 된 제임스 정은 결국 시냅틱스의 스톡옵션 18만달러를 포기하면서까지 고국행을 택했다. 지난해 5월의 일이다. 그는 가방 8개를 들고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제임스 정은 "일면식도 없던 처지였지만, 우 대표의 열정 하나만 믿고 왔다"고 말했다.

◆희망의 땅 '광주'에 안착

이들은 지난해 5월 18일 광주시 북구 월출동 첨단과학산업단지 광산업 집적화단지에 입주했다. 회사명은 대한민국이 꼭 가져야 할 기술이란 뜻을 담은 '솔렌시스㈜'.

우관제 대표를 비롯, 제임스 정이 최고기술책임자(CTO)겸 부사장을 맡기로 했다. 우 대표의 대우그룹 후배였던 이용규(41)씨가 홍보이사로 힘을 보탰다. 미국에서 정 부사장을 도운 수석 엔지니어 스티브 한(39·한국명 한상철·제품설계개발 수석팀장)과 크리스 장(38·장창식·소프트웨어 개발팀장) 등 4명도 솔렌시스에 합류했다.

이 홍보이사는 "광주시의 도움이 컸다. 강운태 시장이 솔렌시스의 잠재력을 인정해 싼값에 공장부지를 장기 임차해주고, 정책자금도 지원해 줬다"고 말했다. 광(光)산업이 집적돼 있고,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기초연구력이 튼튼한 점도 매력이었다. 산업현장과 연구집단이 협력해서 얻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지난해 12월 16일 제1공장이 가동했다. 월 70만개의 터치패드를 생산하는 이 공장은 정 부사장의 기술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솔렌시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3.1인치부터 10인치까지 다양한 크기의 정전식 터치방식 터치패널을 주문방식으로 양산한다. 설계에서 제품 완성까지 모든 것이 자동화돼 있다. 물론 이 설계·제조에 대한 국내 특허를 이 회사가 갖고 있다. 한국이 터치패드 원천기술을 확보해 본격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터치방식에 따라 패널 재질은 강화유리와 플라스틱으로 나뉜다. 스마트폰에 사용하는 정전식 방식은 모두 강화유리를 사용한다. 밝은 데다 작동이 정교하다. 솔렌시스는 이 패널을 주력한다. 반면 플라스틱은 신용카드 사인 패널과 네비게이션 등 압력을 가해야 작동하기 때문에 정교함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우 대표는 "그동안 터치패드 원천 기술이 없어 미국·일본·대만 등 해외로 로열티만 3년간 5조원이 빠져나갔다"며 "이제 외화 유출을 막는 동시에 역으로 우리나라가 터치패드의 로열티를 받을 때가 왔다"고 말했다.

더욱이 그간 수입 터치패드는 불량률이 절반에 달했다. 국내 업체는 해외 터치패드 설계업체가 요구하는 대로 제작비용과 로열티를 지급하고도 절반은 손해를 봐야했던 셈이다. 터치패드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떻게 설계돼 있는지 그 내용도 전혀 몰랐다. 그러나 솔렌시스는 터치패드 개발 원천 기술은 물론 특허로 개발한 국내 자동화 공정으로 제품 불량률을 10% 미만으로 떨어뜨렸다. 제품뿐만 아니라 공장도 통째로 수출할 계획이다.

◆"5년 안에 세계적 엔지니어 20명 육성"

세계 터치패드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냉장고,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도어록 버튼, 유선전화기, 엘리베이터, 자동차, 오디오 등 터치패널을 장착하는 전자제품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솔렌시스는 올해 제2공장을 증설, 생산 규모를 4배 이상 키울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월 최대 350만개의 터치패드 생산이 가능하다. 올해는 월 70만개씩 연간 840만개를 생산, 매출 1000억원을 목표하고 있다. 이중 80%를 수출할 예정. 2013년부터는 월 420만개씩 연간 5000만개를 생산, 1조원 매출을 일으키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세계 터치패드시장 점유율(15%)을 우리나라가 달성하는 데 적극 기여하겠다는 계획.

이슬비(28) 전략기획팀원은 "유망한 기업에 입사해 기쁘고도 책임감을 느낀다"며 "국내 터치패드산업을 일으키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 부사장은 현재 솔렌시스에 입사한 국내 20명의 엔지니어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현재 이 회사의 연구직과 생산직은 모두 29명.

"이르면 5년 안에 저의 모든 것을 국내에 이식한 뒤에 미국으로 돌아갈 작정입니다. 제 분신과도 같은 수제자 20명을 반드시 키워놓을 겁니다. 터치패드는 전기·기계·통신·화학 등 모든 기초과학이 망라돼 있기 때문에 통섭적으로 꿰뚫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이런 능력과 매일 밤낮 없이 연구하는 열정만 가진다면 저와 같은 수준에 금방 도달할 거예요. 무엇보다 광주는 실리콘밸리와 같이 주위 환경이 쾌적합니다. 지스트라는 연구대학이 있어 미래가 유망합니다. 광주는 그야말로 첨단산업의 산실이 될 것입니다. 광주의 터치패드 산업은 이제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뻗어나갈 거라 확신합니다"

우 대표는 "강운태 시장께 고마움을 표시하는 의미로 신축 광주야구장 VIP 좌석에 야구 데이터를 검색하는 '터치패널'을 선물할 계획"이라며 "믿고 지원해 준 광주시와 강 시장께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강 시장은 송·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이점을 분명히 했다. 광(光)·정보가전 등 지역 주력산업과 '터치산업'의 융·복합화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터치융합산업'을 육성하는 데 2014년까지 총 4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상용화 기술을 개발하고, 공동연구센터를 구축하고, 해외 전문 기업의 연구개발센터를 유치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도 '솔렌시스'에 거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지난해 광산업 총매출액은 2조54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으로 수년 내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한 회사가 광주에서 매출 1조원시대를 열게 된다면 광주경제로선 '일대 사건'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과 삼성전자 광주공장의 2010년 추정 매출액은 6조, 4조원대. 지난 2009년 광주지역 총생산액 규모는 22조였다. 새해 벽두에 광주 경제의 부흥을 가져다줄 솔렌시스㈜에 새 희망을 걸어본다.

 

조홍복 기자 powerbo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