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식히기

말 없는 아빠의 연장통

부산갈매기88 2009. 5. 5. 09:38

아이의 기침은 아침이 되자 더욱 심해졌다. 아이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엄마는 아이가 결국 왈칵 피를 토해내자 황급하게 일어나 피를 닦을 수건을 가지러 부엌으로 달려갔다.

 

“아니, 당신은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부엌 앞에서 연장을 손질하고 있는 남편을 보자 아이 엄마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아이가 다 죽어 가는데, 그깟 연장이 다 무슨 소용이에요!”

 

그러나 남편은 묵묵히 연장에 기름칠만 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는 혀를 차며 수건을 들고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이게 우리를 지금까지 살게 만들어준 소중한 건데.”

 

남편이 혼자 중얼거렸다. 남편은 목수의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모두 목수였다. 그가 지니고 있는 연장들은 그래서 모두 그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귀중한 것들이었다. 그 연장에 기대여 이제까지 살림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어린 딸이 갑자기 결핵에 걸리면서 약값과 병원비까지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목수를 찾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어 일거리도 거의 사라진 요즘에는 아이의 약값이 문제가 아니라 입에 풀칠하는 것도 걱정이었다.

 

아내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픈 아이만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속이 타들어갔다.

 

“아이를 살리려면 우선 입원을 시키고 장기간 요양을 해야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하루 먹을 양식도 없어서 고생을 하는 마당에 아이를 입원시킨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오늘도 연장통을 챙겨들고 집을 나서는 남편을 보며 아내가 말했다.

 

“일도 없으면서 나가긴 어딜 나가요?”

“가만히 있으면 누가 일을 가져다주나? 움직여야지.”

“그냥 애가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작정이에요?”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말이오.”

 

남편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연장통을 어루만지며 터덜터덜 걸어갔다. ‘이건 내 자식과도 같은 거야!’

 

그리고 남편이 다시 돌아온 것은 이틀이 지나서였다. 초라한 몰골로 돌아온 남편을 보며 아내가 화를 냈다.

 

“당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미안하오. 그냥....”

 

남편은 쓸쓸한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이었는데..... 고작 이 값밖에는 되질 않더구만.”

 

그의 손에는 거칠게 접혀진 지폐 몇 장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는 늘 짊어지고 다니던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그의 분신 같은 연장통이 보이질 않았다.

 

 

이가출판사 <참 행복한 세상>에서

 

 

*어려운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빠들의 모습입니다. 힘들지만, 더 힘차고 활기차게 용기를 가지고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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