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 만물박사

태릉·홍릉갈비… 왜 능 이름딴 갈비집이 많을까?

부산갈매기88 2011. 6. 21. 08:02

 

경기 고양시 서오릉 내 숙종의 무덤인 명릉. 사진 오른쪽의 정자각 너머 보이는 동산은 왕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신의 세계’로 구분된다.

“훈아, 이번 주말에는 갈비 먹으러 교외로 나갈까?”

“태릉갈비와 홍릉갈비가 유명하죠? 그런데 왜 능 이름을 딴 갈비집이 많죠? 갈비와 왕릉이 무슨 관계가 있나요?”

“조선시대에는 소를 귀하게 여겼어. 농사를 짓는 최고 동력이잖아. 소를 잡으려면 관청의 허가를 얻어야 했대. 그러나 왕릉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허가가 없어도 됐어. 왕이 필요하다는데 누가 감히 이의를 달겠니. 그 결과 왕릉 주변은 ‘쇠고기 자유구역’이 됐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갈비집의 대명사가 된 거지.”

“그럼 서오릉은 어때요?”

“태릉에 비해 그리 유명한 것 같지는 않아. 아마도 서울 밖이라는 지리적인 약점도 작용했겠지. 또 태릉이나 홍릉갈비만큼 홍보마케팅을 못했을 수도 있고.”

“그럼 서오릉에 가서 왕릉 구경을 하고 갈비를 먹으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봐요.”

○ 왕실 무덤은 왜 수도권에 있을까?

조선 왕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조선 태조에서 순종까지 왕과 왕비 무덤 중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세종과 소헌왕후 무덤인 영릉(경기 여주군), 단종이 묻힌 장릉(강원 영월군), 사도세자와 정조가 잠든 융건릉(경기 화성)을 제외하면 모두 서울과 서울 인근에 있다.

조선 왕실의 가장 큰 가족무덤은 동구릉이다. 태조의 능인 건원릉을 비롯해 선조 영조 등의 무덤이 있다. 서오릉은 동구릉 다음으로 큰 왕실 가족무덤이다. 세조의 아들인 덕종 예종 숙종 등이 묻혀 있다.

“조선 왕릉은 왜 서울과 경기지역에 몰려있을까?”

“가까이 있어야 왕이 자주 들러 인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왕릉은 왕이 하루 만에 제례행차를 마칠 수 있는 거리를 고려해 조성됐다. 도성에서 10리(4km)∼100리(40km) 사이다.

“왕실 무덤에는 능(陵), 원(園), 묘(墓)가 있는데 어떻게 구분할까?”

“왕이나 왕비 무덤은 능, 원은 잘 모르겠어요. 묘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 무덤 아닌가요?”

“원은 세자와 세자비, 왕을 낳은 부모의 무덤에 붙이는 이름이야. 묘는 나머지 왕족의 무덤이지. 왕의 아들인 대군과 공주, 첩에서 난 아들딸인 군과 옹주 등이 해당돼.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아니고 ‘로열패밀리’야.”

숙종이 묻힌 명릉을 둘러보기로 했다. 붉은 칠을 한 홍살문이 보인다. 신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표시다. 홍살문을 지나면 참도가 나온다.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참도는 정자각 바로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여져 옆 계단으로 이어진다. 정자각 계단은 왜 측면에 있을까?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자연의 섭리를 건축에 활용했다고 한다. 동쪽 계단은 두 개지만 서쪽 계단은 한 개다. 올라갈 때는 참배자와 왕의 영혼이 함께이지만 내려올 때는 참배자만 내려오고 왕의 영혼은 봉분으로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

“저 큰 능에 무덤의 주인이 잠들어 있는 거죠?”

“저건 사초지 또는 강이라고 부르는 작은 동산이야. 무덤은 그 위에 있어. 정자각에서 사초지만 보이고 능침은 안 보이는 이유는 신의 세계를 산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거지. 동산 자체가 왕릉인 신라 무덤과의 차이야”

“굴착기 같은 장비가 없었을 때 저 큰 동산을 만들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했겠어요. 왕릉을 조성하는 데는 몇 사람이 동원됐을까요?”

왕릉 조성공사에는 전국에서 일꾼이 동원됐다. 공사시간은 대개 4, 5개월. 일꾼만 5000명 정도에 달했고 당대 최고 기술자들까지 합류했다. 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에는 이름 없는 백성들의 눈물과 땀이 배어 있는 것이다.

○ 조선 왕릉이 도굴되지 않은 까닭은?

“이왕 왔으니 능침까지 가보자.”

“여기 넓적한 돌은 뭐예요?”

“혼이 노닌다는 혼유석이야. 이 돌 때문에 왕릉 도굴이 어려웠대. 혼유석 밑에는 시신을 둔 돌방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는데 무거운 혼유석을 옮길 수 없었기 때문이지.”

조선 왕릉이 도굴이 거의 되지 않고 보존된 이유는 또 있다. 돌방 주변을 석회, 모래, 자갈을 섞어 두껍게 채웠기 때문.

“조선 왕릉은 어떻게 이렇게 잘 관리가 됐어요?”

“능참봉의 역할이 컸어. 왕족 무덤만 관리하는 미관말직이야. ‘나이 일흔에 능참봉 되니 거동이 한 달에 스물아홉 번’이란 속담의 주인공이지. 능이 훼손되면 귀양을 살게 되니까 목숨 걸고 보살핀 거야.”

“경주에는 천마총이 있고, 고구려 땅에는 무용총, 각저총이 있잖아요. 능과 총은 어떻게 구분돼요?”

“능은 주인이 알려진 무덤, 총은 왕의 무덤이라고 생각되지만 주인을 모를 때 붙이는 이름이야. 총은 대표할 만한 유물이나 무덤 특징을 따서 이름을 붙여. 분은 무덤 주인을 알지 못하고 특징적인 유물도 발견되지 않은 무덤을 말해. 송산리 고분군, 능산리 고분군, 가야 고분군 등이 여기에 속하지.”

조옥남 ‘특목고, 명문대 보낸 엄마들의 자녀교육’ 공동저자

왕들의 정원, 서오릉 탐사 체크 포인트

▶교과와 연계된 체험활동 목표
-서오릉에 묻힌 인물과 역사 이해하기
-서오릉의 명칭과 유래 알아보기
-왕릉을 지키는 석상에 대해 알아보기
-능 주변 주요 수종의 특성 알아보기

▶자녀와 부모가 함께할 만한 추천활동
-조선 왕릉의 위치 알아보기
-조선 왕릉의 구성과 특징 살펴보기
-능, 원, 묘의 차이 알아보기
-숙종의 비인 장희빈에 얽힌 이야기 알아보기

▶+α 탐구활동
-조선의 국장제도에 대해 조사하기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관계 알아보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의 가치 생각하기

 

<동아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