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가족의 의미

부산갈매기88 2009. 5. 20. 07:52

회사에서 실직당한 그는 벌써 일 년 가까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 역시 시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전반적인 경기침제로 인해 공사장 일도 생각처럼 많지가 않았다.

 

그는 변함없이 목을 잔뜩 움츠린 채 사람들 틈에 서서 장작불에 몸을 녹이고 있었다. 때 아닌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그는 더욱 처참한 심정이었다. 마치 거리의 인형뽑기 기계 속 인형과 같은 신세라는 생각마저 들어 그 비참함은 더 컸다. 결국 오늘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아내가 몇 달 전부터 식당에 다니며 그를 대신해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형편이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저녁밥상 때마다 그는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밥알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더욱 싫어 언제부터인가 거울을 보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차마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밀린 월세가 억센 손아귀로 발목을 잡아채는 것 같아 그는 하릴없이 시내를 돌아다녔다. 저녁 무렵 그는 용기를 내어 친구를 찾아갔다. 일자리를 부탁하면서 밀린 월세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고맙게도 친구는 흔쾌히 여기저기 알아보겠다며 위로를 해주었다. 그리고 힘을 내라고 어깨를 다독거리며 삼겹살에 소주를 사주었다.

 

그러나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아이들 생각에 그는 고기 한점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쓰띠쓴 깡소주에 놀란 속을 그는 오이 몇 조각으로 달래다 일찍 일어섰다. 빈속에 마신 술이라 취기가 오른 그는 힘겹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 골목으로 들어서니 귀여운 딸아이가 반갑게 달려와 안겼다.

 

“아빠! 엄마가 오늘 고기 사왔어. 아빠 오면 같이 먹는다고 아까부터 기다렸단 말야.”

 

열 시가 넘은 시각에 아내는 그를 기다리며 늦은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이 애들 갖다 주라고 고기를 싸주셨어요. 당신하고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는데 어서 씻고 오세요.”

 

모처럼 먹어보는 고기라 아이들은 정신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는 그는 그만 아이들에게 조차도도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해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당신도 어서 드세요.”

 

아내가 그런 그의 마음을 읽고는 고기 한점을 밥 위에 놓아주었다.

 

“난 아까 친구 만나서 삽겹살에 소주 한 잔 했어. 그러니까 당신하고 애들이나 많이 먹으라고. 나 기다린다고 꽤 배가 고팠을 텐데.....”

 

그는 마당으로 나와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가엾은 내 아내.’

 

사실 아내가 가져온 고기는 식당 주인이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여려서 손님들이 남기고 간 쟁반의 고기를 바라보며 몇 번이고 망설였을 아내는 집에서 엄마를 기다라고 있을 아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떨리는 손으로 고기를 비닐봉지에 서둘러 담았을 것이다. 아픈 마음을 사랑이라는 포장지에 꼭꼭 감춘 채 행복하게만 웃고 있는 착한 아내의 마음이 행여 다칠까 염려가 되었다.

 

 

이가출판사 <참 행복한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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