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죽이고 '총 2발' 더 쏜 까닭

부산갈매기88 2011. 7. 11. 20:45
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죽이고 권총 2발을 더 쏜 까닭은...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국민 안보의식 여론조사’에 의하면 청소년 10명 중 6명이 6·25전쟁 발발연도를 모른다고 답했다. 19세 이상 성인 중에서도 10명 중 4명은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청소년 40% 이상이 3·1절이 어떤 날인지 모른다는 결과도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너무나 당연해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던 민족사적 대사건이 이제는 흐릿한 기억의 저편으로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근대사를 좀더 가깝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이충렬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그림으로 보는
한국 근대의 풍경’(김영사)을 썼다. 20대 초, 미국에 이민 간 저자는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우리나라 근대사의 그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며 "그 가운데서도 외국화가들이 한국을 방문해 그린 근대의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그는 1898년에서 1958년 사이에 그려진 그림을 86점이나 모았다. 그는 "그림에는 뒷이야기가 있다"며 "그림과 그림에 얽힌 뒷이야기들로 근대사를 재미있게 풀어쓰면 초·중·고생들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책을 쓴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민상호와 민영찬은 둘 다 명성황후의 친인척으로, 유학파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 두 사람은 운명을 달리하게 된다. 민영찬은 고종의 밀사로서 활동하며 일본에 쫓기는 신세가 되는 반면, 민상호는 친일에 앞장서면서 일본으로부터 남작 지위를 받는다. 위풍당당한 모습의 민상호의 초상화와 탄식을 내뱉는 민영찬의 인터뷰 자료를 보면 조선 말기의 암울했던 시대상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이충렬은 “같은 시대, 한 핏줄에서 황제의 밀사와 친일파가 나오는 과정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아픔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저자가 생생한 시대상을 담은 그림들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궁중 예복을 입은 공주’라는 작품의 주인공을 밝혀내고자 매일신보 등 당시 신문기사들을 일일이 찾아봤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라는 제목의 책에서 '공주'에 관한 단서를 찾아 실마리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자료조사는 황실 종친회 족보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하지만 그 시대 황실 종친회의 족보에는 공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백방으로 수소문 했지만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저자는 포기하지 않고 3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추적한 끝에 마침내 그림 속 공주의 신분이 순종효황후의 여동생, 윤희섭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그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끈질긴 집념과 인내로 작가의 지적 호기심이 충족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는 그림을 찾았다. 그 그림은 1909년 11월 7일 이탈리아 군사전문지 ‘라 트리부나 일루스트라다’에 실린 삽화다. 그림에는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쓰러지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 명은 앞 쪽으로, 다른 한 명은 뒤 쪽으로 쓰러지고 있다. 그 뒤에는 안중근 의사가 헌병에 의해 제압당하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안중근 의사는 법정진술에서 "나는 맨 앞에 행진하고 있는 자가 이토라고 생각돼 세 발을 발사했다. 그런데 뒤쪽에 또 사복 입은 사람이 있어 그가 이토가 아닌가 생각하고 그쪽으로 두 발을 더 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작가는 ”안중근 의사의 재판기록과 당시 기사들을 비교한 결과 ‘라 트리부나 일루스트라다’ 삽화와 내용이 일치한다"고 했다. 그는 "당시 사진기술이 요즘같이 발달하지 못해 그 짧은 순간을 촬영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삽화를 그린 사람이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6.25전쟁 휴전 직전에 그려진 ‘이승만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그림은 당시 한·미간의 미묘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그림이다. 한국에서 열린 회담에는 미국 대통령 당선자 신분인 아이젠하워가 책상 앞에 앉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책상 밖에 앉아 있다. 당시 통역을 담당했던 백선엽 장군의 모습도 나온다. 작가는 "아이젠하워가 이승만 대통령의 '휴전 반대·북진 통일' 주장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냈던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백선엽 장군 또한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아이젠하워는 한국전쟁 종식이라는 미국국민의 염원을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어서 그는 휴전회담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분단 이후 북한의 모습을 그린 변월룡의 그림에서는 당시 북한 내부에서 벌어진 권력투쟁과 암투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또, 6·25전쟁 때 그려진 한강도강과 서울풍경에서는 전쟁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역사를 바라볼 때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근대사의 경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많지만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잊어서는 안 된다"며 "근대를 모르고서는 지금의 시대를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모두가 잃어버린 시대라고 우리 근대사를 표현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집필활동을 하면서 우리 선조가 그 시대를 헤쳐나오면서 지키고자 했고, 끝내 지킨 것도 있었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혼, 정신, 영혼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조선의 멸망과 남북분단, 그리고 6.25전쟁을 거치면서도 뺏기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새 책이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자는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국립박물관 관장을 지내며 문화재 보호에 앞장섰고, 특히 인간문화재 보호에 공을 들였던 '고(故) 최순우'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다음 작품이 될 것이다. 2009년 출간된 ‘간송 전형필’에 이은 두 번째 인물시리즈인 ‘최순우 전기’는 내년 3월 출간될 예정이다.

1994년 ‘실천문학’ 봄호에 ‘가깝고도 먼 길’로 등단한 이충렬은 일반인들에게 그림을 보는 안목과 감상법을 알려주는 ‘그림 애호가로 가는 길’, 북한 취재기인 ‘상속받은 나라에 가다’ 등의 책을 썼다.

 

조한민 기자 / 김진수 PD kaiso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