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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31세 여성 "결혼한다면 노총각보다 이혼남과 하겠다"

부산갈매기88 2011. 12. 17. 10:27

"넌 결혼 왜 안 하니?"라고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묻기에 "언젠가는 하겠죠, 총각 없음 참한 이혼남 하나 건지지 뭐"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가 대뜸 진지하게 나를 붙잡고 훈계를 늘어놓는 것이다. "그러면 안 돼. 넌 좋은 사람이고 더 멀쩡한 사람을 만날 여지도 있잖아. 이혼한 사람들, 정말 문제가 있어서 이혼한 거야. 평범하고 안정된 경험만 한 좋은 남자를 만나야지."

 

의도야 어떻든 간에 그의 말은 편협하고 보수적으로 들렸고, 그만 발끈 하고 말았다. "결혼이라는 게 도대체 뭔데요? 그냥 틀이잖아요.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그냥 '결혼'이라는 틀을 걸칠 뿐인 거잖아. 이게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그 틀을 걷어내면 되는 거 아녜요? 정말 무책임한 건, '결혼'이라는 틀에 자기 인생을 틀어 맞춘 채 불행한 상태로 스스로를 계속 내버려두는 거라고요. 정말 소중한 건 남들이 만들어낸 틀이 아니라, 바로 나잖아. 내가 행복해야 하는 거잖아요."

 

내가 그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한 건, 실제로 내 주변에는 별다른 문제 없는 아주 평범한 이혼남-이혼녀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남자가 전혀 섹스를 원하지 않아 헤어진 커플도 있고, 한 명은 아이를 원하는데 한 명은 원하지 않아서 헤어진 커플도 있고, 남자가 가정을 부양할 만큼의 경제적 여건이 없어서 헤어진 커플도 있다. 여자가 알고 보니 심한 결벽증과 의부증이 있어서 헤어진 경우도 있고, 시댁의 간섭과 구박을 견디지 못해 헤어진 경우도 있다. 자세한 속사정이야 다 알 순 없지만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때 그들의 죄는 사람을 잘못 알아봤거나 혹은 미리 살아보며 삶의 방식을 맞추지 않았다는 게 제일 크다.

 

사실 나는 스스로 '이혼' 근접한 단계까지 경험해봤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를 정말 사랑했던 한때에는 그 남자와 그냥 이렇게 조그만 옥탑방에서 살면 뭐 어떠랴, 싶었다. 우리는 어쩌면 '어린 부부'랑 같았다. 가난했지만 부둥켜안은 몸은 따뜻했고, 집 앞 구멍가게에서 서로 맛난 간식을 사겠다고 우겼고, 고기 한 점을 서로 먹여주려고 안달 부렸고, 그는 나를 위해 '사랑해'라고 콩으로 새긴 도시락을 만들었다. 또 다른 면에서도 '철없는 부부' 같았다. 우리는 서로를 잡아먹을 것처럼 싸워댔고, 나는 일부러 그의 상처를 긁었고, 울면서 잠이 들었고, 몰래 그의 휴대폰을 확인했고, 내 모든 스트레스를 그에게 아무렇게나 풀어댔다.

 

그 남자와 그렇게 1년을 함께 살다시피 하다가 헤어진 이후의 상실감은 이혼 후의 상실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감히 생각한다. 나에게 이혼이란 정말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는 이별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혼한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게 싫다. 마치 나에게 손가락질하는 것 같으니까.

 

대단한 실패를 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저 '사랑' 하나에 실패했을 뿐이다.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사랑'에 한 번쯤 실패한 경험이 있지 않던가. 그게 '결혼'이라는 과정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나를 아끼는 가족 친지들 앞에서 한 약속을 깨는 게 되었더라도,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결국에는 내가 행복해야 하는걸.

 

나는 이혼남, 이혼녀를 옹호한다. 결혼을 한다면 촌스러운 노총각보다는 모든 살들을 얇은 회칼로 저며가는 고통과 아픔과 상실감을 경험했던, 자신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배신해본 경험이 있는 그런 이혼남과 하겠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