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전에 블로그에 댓글이 달려 있었다.
1979년에 전포새마을 청소년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여학생이었는데, 이제는 중년의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댓글을 단 사람은 그 중년 여인의 둘째 아들이었다. 정말로 이 중년 여인은 두 아들을 잘 키워 놓았음을 그 아들의 메일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정말 반가웠다. 정확히 33년 전의 일을 그 중년의 여인은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그때 수학과목을 가르쳤다는 것과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낮에는 직장을 다녔고, 밤에 황령산 중턱에 있는 학교로 올라와 미래의 꿈을 펼쳤다.
그런 그네들이 이제는 사회의 한 영역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있음을 볼 때 정말 마음 뿌듯했다. 그 당시 보수 없는 무료 봉사와 헌신,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을 그네들에게 전해주고 싶었고 사회 일원이 될 한 사람의 앞길에 길잡이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가끔 그네들과 1년에 1~2번 만나서 지나간 삶의 흔적을 살펴보며 즐거운 자리를 마련한다. 사람의 인간적인 가치는 물질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가 가장 진지하고 솔직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음을 실감한다. 오늘의 사회는 너무 물질적으로만 흘러 다소 무미건조한 맛이 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지식만 주입하고, 오로지 좋은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 당시 단발 머리의 소녀는 이제 중년의 여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난 아직 그녀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고, 문자로만 본인임을 확인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에게 과거 자신이 다녔던 야간학교에 대해서 들려 주었다. 그녀의 둘쨰 아들은 인터넷에서 혹시나 그 당시 다녔던 사람이라고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내 블로그에 들어와 댓글을 남겨 놓았던 것이다.
인터넷의 위력을 심감했다. 관 두껑 닫을 때까지 마음만 먹으면 찾고 싶은 사람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제자들과의 모임을 더 재미가 있을 것이다. 흩어져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하던 그네들이 이제 중년의 나이를 넘어서니 추억을 먹고 자라고 있음을 알았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나이들어 꼬부라질수록 과거의 추억은 더 꼬부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때 다녔던 학교가 남아 있었더라면 더 많은 제자들과 만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그 자리에는 청소년 수련원이 들어와 있기에.
강흥순/부산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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