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포새마을청소년중고등학교

36년만의 소식

부산갈매기88 2012. 12. 21. 09:45

지난 12월 15일 장산에 산행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산 정상을 정복하고 북동쪽에 위치한 기장 산성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나에게 모르는 문자가 왔습니다. 문자의 주인은 1976년에 전포새마을 청소년 중학교를 다니다 중1 때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의 친구 중 아는 사람이 있었냐고 했더니 준호라는 친구의 이름을 알려 왔습니다. 그리고 산행 중이라 몇 번 문자를 주고 받았는데, 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기억을 하고 있었습니다.

 

36년만의 소식,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젊은 시절 아무런 댓가도 없이 배운 것을 후학을 위해 봉사를 했습니다. 그떄만 하더라도 정말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라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는 주경야독하는 애들이 많았습니다. 오로지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배를 곪아가면서 낮에는 땀을 흘리고 저녁에 학교에 와서 지식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열의가 많았습니다.

 

그 당시의 제자들을 지금도 1년에 2~3차례 만나곤 합니다. 중소기업을 하면서 성공한 사장도 있고, 그 나름대로의 분야에서 이제 자리를 잡고 자식들을 잘 키워내고 있습니다. 대견스럽습니다. 하지만 제자 중 몇 명은 운명을 달리한 사람도 있습니다. 살기 힘든 세상살이 속에서 술에 의지하여 살아오다보니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게지요.

 

36년만의 소식을 들으니 아득히 먼 시간을 달려 왔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는 지금 중소도시에 살고 있는데,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을 했다고 합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 신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상담학을 전공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하루의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황령산 중턱에 위치한 야학에는 중등과정이 있었는데,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가진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그 인근의 절에서 다니는 스님도 있었고, 야간 업소에서 색소폰을 불며 음악을 하는 제자도 있었습니다. 공업용 브라쉬 제조를 하는 제자도 있었는데, 지금은 한 우물을 판 결과 성공을 했습니다. 직업은 참 다양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한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 얼굴들이 보고 싶습니다. 이제 세상을 뒤돌아 볼 나이가 되고 보니 지난 세월이 많이 그리워집니다.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러면서 나이를 먹어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