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방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2012. 3. 18 부산성산교회 이용수 목사 주일 설교

부산갈매기88 2012. 3. 19. 13:16

                                                                                              2012. 3. 18. 주일 설교

계 22:17                                                                                 부산성산교회 이 용수 목사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학습세례식은 결혼식과 같습니다.

 

오늘 주일은 학습세례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이 학습세례식은 결혼식에 비유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즐겁고 기쁜 날이 바로 이 날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기쁜 날 중의 한 날이 바로 이렇게 학습세례식을 받는 날입니다. 이 날에 분명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신랑되신 예수님에게 서약을 하게 됩니다. 마치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결혼서약을 통해서 영원히 함께 할 것을 고백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이 학습세례식을 거행할 때마다 감히 결혼식 주례자의 느낌을 많이 받게 됩니다. 신랑되신 예수님께서는 이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런 예식을 통해서 먼저 믿고 이미 세례를 받은 성도들이나 오늘 이렇게 학습세례식에 참여한 성도들이나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주께 온전히 고백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성도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우리의 신분을 두고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부르는 구절은 모두가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정확히 말하면 4번 나오지요. 아시는 것처럼 요한계시록은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분명히 우리는 말세의 시대를 삽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성도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신랑 되신 예수님께 대한 순결과 정도를 온전히 지켜가며 살 것을 권고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여기 ‘신부’라는 개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왜 특별히 ‘신부’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여기 신부는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와 모든 성도를 가르킵니다. 여기서 얼마든지 다른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령과 하나님의 가족, 성령과 그리스도의 군대, 성령과 하나님의 몸 등 다양한 표현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성령과 신부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분명한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바로 주님 재림하시는 그날에는 우리 모두 신랑되신 주님을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무엇보다 중용한 것은 친밀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영적 트렌드는 바로 신부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신부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친밀함 때문입니다. 성도를 아들로 성경이 표현할 때에는 그것은 바로 상속자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나 성도를 신부로 표현한 것은 바로 사랑의 관점에서의 표현입니다. 여기서 ‘친밀함’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다윗을 예로 듭니다. 다윗은 큰 용사이면서 또한 그리스도의 신부였습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다윗처럼 용맹스러운 용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구약에서 보면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운 자였습니다. 다윗보다 더 하나님을 마음으로 사랑한 사람은 찾기가 드물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학습세례예식을 거행할 때마다 구원에 초점을 많이 맞추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영생을 선물로 받고 천국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예수님 믿는 자의 자격이 그것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 이제는 신랑되신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식날 신랑, 신부를 보면 다른 것 없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서로에게 서로가 가장 큰 선물이고 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게도 이런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 37~39절에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도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주님은 그 사랑을 또한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그 사랑을 원하시는 것도 사실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학습세례 받는 분들이나 우리 모두 이 자리에 그리스도의 신부로, 그 자격으로 서 있습니다.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신부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몸을 주신 것처럼 우리도 신랑되신 예수님을 사랑하겠다고 마음과 중심을 다해 고백하고, 우리 삶에 그런 믿음의 정조와 순결과 사랑을 지켜가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운 이때에 더욱 영적으로 준비하고 주님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드립니다.

 

<부산갈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