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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프 다슬러: 아디다스

부산갈매기88 2009. 6. 23. 07:43

세계적인 스포츠 의류용품 회사인 아디다스(Adidas)는 ‘디자인과 기능혁신’을 가장 중요시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아디다스는 1920년 독일의 조그만 도시 헤르초게나우라흐에서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 1901-1978)에 의해 세워졌다.

 

아돌프는 달리기를 하다가 신발이 너무 딱딱하고 앞창이 자주 망가지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그는 스스로 밑창이 좋고 내구성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집안에서 운영하던 세탁소에서 연구에 매달린 끝에 마침내 최초의 스포츠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운동화가 육상선수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되어 1924년 아돌프는 형 루돌프와 함께 사업체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아돌프 자신은 개발과 제작에만 전념하고 형에게는 주로 경영과 관련된 일을 맡겼다. 그는 좋은 군화 없이 강한 군대가 있을 수 없듯이 좋은 스포츠와 없는 강호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과학적인 기술을 스포츠화에 접목시켜 날씨나 운동장 상황에 따라 다르게 신발을 조립할 수 있도록 했다.

 

1925년 아돌프는 스파이크를 박은 러닝화와 가죽 징을 박은 축구화로 최초의 특허권을 따냈다. 이 스포츠화를 신고 독일 운동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사업을 크게 성장하게 된다. 아돌프가 만든 신발의 명성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 제시 오웬스가 무려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고부터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슬러 형제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되는데, 아돌프는 1949년 회사명을 자기의 애칭 아디(Adi)와 성의 첫 부분인 ‘다스(Das)'를 결합한 아디다스로 정했고, 형 루돌프는 신발이나 옷을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 3개의 선이 들어간 디자인을 선택했고, 현재 전 세계가 입고 있는 아디다스의 트레이드 마크가 만들어졌다.

 

아디다스의 명성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다시 한 번 진가를 올렸다. 결승전에서 옛 서독과 헝가리는 비 내리는 베른의 구장에서 맞부딪쳤다. 전문가들과 도박사들은 헝가리의 우세를 점쳤지만 이미 서독은 경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아돌프가 고안한 축구화 때문이었다. 아디다스의 축구화는 징을 교체할 수 있어서 미끄러운 진흙에서 경기를 펼치는데 유리했던 것이다. 아돌프는 그날의 날씨를 예상하고 서독 선수들의 신발에 평소보다 긴 징을 장착했고 그것은 승리로 이어졌다. 서독의 우승 이후 아디다스의 징 박힌 축구화는 날개 돋힌 듯 팔렸고, 아디다스는 축구화 브랜드로로 세계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아디다스는 축구인들의 요구를 먼저 파악하고, 그것을 시의 적절하게 제품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 될 수 있었다.

 

아디다스는 1954년 FIFA 월드컵 최초로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은 선수들을 대회에 등장시킨 후 다양한 의류까지 생산하며 사업 분야를 확장했으며, 1970년 월드컵 공인 축구공을 제공하면서부터 월드컵 공식 후원사 지위를 누리기 시작했다.

 

아돌프 다슬러는 1978년 사망했지만 ‘아는 것이 많아야 성공한다!’는 그의 정신은 아직도 회사를 이끌고 있다. 아디다스는 2005년 FIFA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스포츠용품의 공식 공급을 도맡는 파트너 계약을 연장했다. 이 계약을 체결했을 때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은 “축구와 아디다스는 하나다.”라고 말했다.

 

 

북인 <위대한 경영자들의 결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