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소문과 말의 한계

부산갈매기88 2012. 8. 10. 06:56

어느 유명 개그맨이 방송국 앞에서 식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를 몰라본 옆자리 사람들은, '카더라 통신'에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그날 안주는, 그의 둘도 없는 단짝 친구였답니다. “맞고 산다느니, 확인 안 된 자식이 두 명이라느니...” 듣기에도 민망하고 화끈거리는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개그맨은 “여보세요. 당신들이 그 사람 알아요?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라고 했답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그의 얼굴을 확인한 당사자들은 당황하며 어색한 침묵이 흘렀답니다. 남 얘기라서 쉽게 말하고, 확인 안 된 사실을 마치 사실인양 퍼뜨리는 악소문의 괴력은 대단합니다.

헛소문, 루머, 마타도어, 유언비어, 흑색선전 등 표현이야 어찌됐든 악한 소문은 사람이나 조직에만 해악을 끼치는 게 아니라 나라까지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아무 근거 없이 널리 떠도는 ‘유언비어’의 ‘비’는 ‘바퀴 비’ 자로 바큇과에 속하는 곤충을 뜻합니다. 이 ‘비’ 자는 또 `날 비'자와 같은 뜻으로, 비어란 결국 널리 퍼져 떠돌아다니면서 악취를 풍기는 말입니다. 흑색선전이라고 풀이되는 마타도어(matador)란 말은 “죽이다”라는 뜻을 지닌 스페인말 “마타르”에서 갈라져 나온 낱말입니다. 글자 그대로 투우경기에서 소의 숨통을 아주 끊어주는 “죽이는 사람”입니다.
악소문은 사람들의 베개를 눈물로 적시게 하고, 결혼을 파괴하고, 직업을 파멸시키고, 명성을 더럽히며, 가슴을 아프게 만들고, 건강을 해치게 하고, 공동체를 무너뜨리게 합니다.

“모든 악 가운데 가장 빠른 게 소문”이라고 하듯이 소문은 빠릅니다. “좋은 말은 멀리 간다. 그러나 나쁜 말은 더 멀리 간다”는 속담처럼 소문은 멀리 갑니다. 허무맹랑한 소리일수록 제멋대로 추측과 악의가 붙어 무서운 속도로 번지게 마련입니다. 소문은 돌고 도는 사이에 엄청나게 부풀어갑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던 것도 이사람 저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사이에 틀림없는 사실처럼 믿게 됩니다.
거짓 소문이라도 폭로되었을 때는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한 고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에서 쥐뼈가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물론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고 유포자 또한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도 이 소문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쥐고기가 연상되어 식당을 찾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소문은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줍니다. 특히 가까이 지내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소문을 들으면 확인되지 않았지만 쉽게 상대의 의견에 동조해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친분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급격히 부정적인 소문은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미하엘 셸레는 그의 책 [소문, 나를 파괴하는 정체불명의 괴물 ]에서 “우리 모두는 소문의 유포자인 동시에 희생양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눈앞에서 직접 경험한 것도 100% 진짜 그대로 묘사하거나 전달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잠재적으로 거짓 소문의 생성에 범인 혹은 공범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특히 공격적 소문은 공격적인 감정을 양분으로 삼고 자라는데 손상된 허영심, 손상된 명예심, 질투, 시기 등등이 위기라는 틈을 타 희생양을 찾아 악의적 소문으로 그 희생양을 모욕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합니다. 거짓 소문은 자신의 편견을 확고히 하려는 무의식적 욕구나 억압된 공격성을 터뜨리기 위해, 말하는 즐거움 혹은 인정받지 못한 불만의 표출 등으로 발생할 수 있지만 사람은 주의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 소문의 생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적인 기억은 철저히 선택적입니다. 객관적인 중요한 상황보다는 관찰된 상황의 주관적인 지각이 훨씬 큰 역할을 합니다.

제너바의 법정 심리학자 클라파레드는 대학생들과 함께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는 막 강의를 시작한 교실로 복면을 쓴 남자 한 명을 침입하게 했습니다. 복면을 쓴 남자는 거친 몸동작을 취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와 문장을 내 뱉었습니다. 그런 후 바로 그들을 밖으로 내 보냈습니다. 이 연극은 20초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상태에서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즉시 클라파레드로부터 이 사건에 관해 11개의 문항으로 구성된 질문을 받았습니다. 첫 문항은 복면 남자를 묘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입은 옷과 가지고 있던 물건, 그리고 전체적인 외모 등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네댓 개의 질문에만 정답을 기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실험은 정보 및 인상의 지각과 전달이 개인마다 상이하며 매우 주관적임을 증명해 준 것입니다. 잊어버린 세부사항은 대개 추측에 의해 그럴듯해 보이는 것으로 재구성되고 묘사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복면 남자의 옷 색깔에 관해서는 단연 특정 색깔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 연상, 선호 혹은 거부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실험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바로 학생들이 세부사항에 대한 거짓된 묘사를 매우 자신 있게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즉 ‘추한 것은 보는 사람의 눈속에 있다’라는 말처럼 인간은 분명히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 즉 자신의 기대치와 일치하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내가 보고, 내가 느끼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며 함부로 악소문을 내면 안 됩니다. 좋은 말하고 살기에도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옆에 듣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출23:1)”,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약4:11)”♥

열린교회/김필곤 목사/섬기는 언어/2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