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사랑도 거래라면 … 선불로 주는 성매매와 후불로 왕창 주는 결혼과 다른 점은 뭘까?

부산갈매기88 2012. 8. 16. 08:46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난해 이맘때쯤. 우연한 기회에 매력적인 아줌마 한 명을 알게 됐다. 나이 50에 비해 매우 젊어 보이는 외모에다 매력도 넘쳤고 대화도 재미있게 이끌어갈 줄도 아는 멋쟁이다. 오래전, 아이도 없이 이혼하고 나서 혼자 유치원 원장 보조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그녀. 지금은 걱정이 없지만 노후가 걱정이라며 만날 때마다 한숨 쉬던 그녀가, 급한 일이라는 연락을 받고 달려나간 내게, 건넨 말의 내용은 이랬다.

 며칠 전 소개받은 남자한테서 은밀한 제안을 받았단다. 80살 된, 테헤란로에 커다란 빌딩을 갖고 있는 부자인데 자기랑 결혼해 주면 10년 뒤엔 10억원을 주고 매달 생활비로 1000만원씩 주겠다며 같이 살자는데 어떻게 할까 내게 물었다. 아들 둘은 결혼해 외국에 살고 있는데 이미 그들에겐 재산분할이 끝난 상태라 아들들은 아버지가 행복하다면 뭐든 오케이란다.

 난 단호하게 말했다. 돈으로 거래한 결혼이 오래 가겠느냐고. 돈을 먼저 받고 몸을 파는 성매매나 살면서 조금씩 받고 목돈은 10년 뒤 후불로 받는 조건의 이런 결혼과 다른 점이 뭐냐고 하면서 말이다.

 엊그제, 미국 억만장자 투자가 조지 소로스(82)가 42세 연하의 요가 교육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타미코 볼튼(40)과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고 한다. 이 기사 댓글의 대부분은 ‘부럽다. 돈이 좋다’ ‘나도 돈 벌고 싶다’ ‘어디 그런 남자 없나’ 하는 반응들이다. 돈만 많다면 있을 수 있는 결합이란다. 그렇다면 사랑도 거래가 되는가. 성매매에 비유한 내가 비현실적이었나.

 2006년 개봉된 이탈리아와 프랑스 합작영화인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란 영화에도 사랑의 거래 장면이 나온다. 거액 복권에 당첨된 남자가 미모의 여자에게 한 달에 10만 유로를 주는 대신 400만 유로의 당첨금이 다 떨어질 때까지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는 장면이다. 돈 때문에 혹해서 살기 시작하지만 나중엔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더라.

 대놓고 하는 거래를 통한 결혼이나, 겉으로는 ‘우아’를 떨지만 속으로는 다 따지면서 거래하는 결혼이나 어쩌면 다 거기서 거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돈과 마찬가지로 화이트데이에 선물 챙기고 데이트 후 집에 바래다 주는 정성도, 노력·배려·따뜻한 마음씨·외모 등 주고받는 모든 조건들도 다 거래 가능하단 말이다.

 대만의 파워블로거 중원룽은 ‘골목경제학’에서 ‘사랑에도 수요와 공급이 있고 균형가격도 있는데… 선택의 여지가 있는 사랑이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라는 나름 사랑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도 했더라.

 예나 지금이나 결혼을 하면서 인간이 조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관계가 이제는 겉으로 대놓고 속물화돼 가고 있다고 통탄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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