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문지영양, 동네 교회·학원 돌며 혼자 연습
예술中 합격통지서 받았지만 돈 없어 입학 포기
저소득층 지원 행사서 눈에 띄어 교수 지도 받아
전남 여수에서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쳐온 문지영(17)양 집에는 피아노가 없다. 부모님은 장애 2·3급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서 한 달에 80만원씩 정부 지원을 받는다. 4년 전 서울에 있는 예술중학교 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학교 다니는 데 돈이 많이 들어 입학은 하지 않았다. 대신 지영이는 집에서 혼자 공부했다. 피아노가 있는 동네 교회와 학원을 돌아다니며 하루 8시간씩 피아노 연습에 몰두했다.
이런 지영이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8일(현지 시각) 독일에서 열린 제13회 에틀링겐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중국의 스타 연주자 랑랑(1994년), 한국의 손열음(2000년)과 김선욱(2004년) 등이 모두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적 연주자로 발돋움했다. 지영의 연주를 접한 대회 심사위원단은 "음악적 상상력이 17세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고 평했다. 한국 출신으로는 세 번째 대회 우승이다. 20세 이하 청소년을 대상으로 격년으로 열리는 이 대회에는 올해 세계 40개국의 청소년 연주자 251명이 참가했다.
- 지난 8일(현지시각) 독일 에틀링겐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문지영(17)양. /에틀링겐 국제 청소년 음악 콩쿠르 제공
고교 2학년에 해당하는 나이지만, 벌써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쳤다. 어머니 이복례(49)씨는 "부모로서 뒷받침을 제대로 못 해줘 언제나 미안한 마음뿐인데 아이는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대견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자칫 ‘가능성 있는 음악 영재’ 정도에서 멈출 뻔했던 지영이가 음악적으로 도약할 기회를 맞은 건 3년 전. 당시 한국메세나협의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예술 교육의 기회를 마련해주자는 취지로 ‘아트 드림 콩쿠르’를 처음 개최했다. 이 대회 중등부 대상을 받은 지영이는 피아니스트 김대진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를 만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올해 3월 지영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입학, 이들 사제의 만남은 지속되고 있다. 스승 김 교수는 “연습하기 싫다고 투정 부리기 쉬운 나이인데도, 지영이는 음악에 대한 갈증으로 늘 목말라 있었다. 이 때문에 아이의 피아노에서는 어른스러운 깊이가 묻어났다”고 말했다. 예술 각 분야의 영재를 조기 발견하기 위해 2008년 설립된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은 수업료 전액을 국비로 지원한다.
다행히 수업료 걱정은 덜었지만, 지영이는 교통비도 아끼기 위해 고속철도(KTX) 대신 무궁화호를 탔다. 열차를 타면 5~6시간씩 걸리다 보니 여수에는 새벽에 도착하는 날이 많았다. 이틀 연속 서울에서 공부할 때는 찜질방에서 잔 적도 있다. 이런 사연을 접한 한국예술종합학교 발전재단 이사회에서는 최근 지영에게 피아노를 사주기로 결정했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문지영은 5000유로(700만원)의 상금과 함께 독일에서 독주회를 열 기회를 얻었다. 말수가 적은 지영이 전화기 너머로 수줍게 말했다. “러시아의 명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를 하는 것이 꿈이에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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