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일본도 무릎 꿇어야

부산갈매기88 2012. 8. 21. 07:49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 유태인 600만 명 학살이라는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독일이 사실상 유럽국가인 EU의 중심국가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진정한 참회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희생된 유태인을 기리는 위령탑에 헌화를 하는 도중 털썩 무릎을 꿇었다. 추운 겨울날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오랫동안 묵념을 했다. 폴란드 유태인들뿐만 아니라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된 모든 사람들에게 올리는 진심 어린 사죄였다. 독일이 전범국이라는 멍에를 벗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세계 언론들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평가했다.

독일은 그 후에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들을 쫓고 있고, 매년 대통령과 총리는 연설 등을 통해 사죄를 거듭하고 있다. 또한 만행을 저질렀던
역사의 현장을 보존해 교육의 장으로 삼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대부터 약 140년간 네 번의 큰 전쟁을 치르면서 '이웃'이 아니라 '원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화해와 협력의
동반자이자 EU를 이끄는 쌍두마차이다. 독일은 프랑스에 사죄를 하였고, 프랑스는 독일을 용서함으로써 적대관계를 끝내고, 상생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양국은 공동으로 역사교과서를 편찬하고, 여론조사에서도 양국 국민들은 좋아하는 나라로 상대국을 꼽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 일본은 독일과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참회는커녕 끝없이 갈등을 야기하는 동북아의 '문제 국가'다

일본
도쿄 한가운데에 있는 야스쿠니신사에는 246만여 명의 전몰자가 안치되어 있고, 1978년에는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되었다. 일본 우익들은 "A급 전범은 연합국이 일방적으로 규정한 것이고, 일본 국내법상으로는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일본 정부는 '합사'는 민관합동기구가 결정한 일일 뿐이라고 발뺌했다. '야스쿠니(靖國)'는 '평화로운 나라'라는 뜻과 다르게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각종 전쟁기념물로 가득 찬 박물관까지 있다.

일본 민주당은 정권 출범 이후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깼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일 마쓰바라 공안위원장과 하타 국토교통상은 개인적 참배라며 전범 위패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그들이 머리를 조아려야 할 곳은 20년 넘게 수요집회를 통해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앞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양국 차원을 넘어
전시(戰時) 여성인권 문제"라며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반인륜적·반역사적 범죄행위다. 미 하원은 2007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신매매 사건의 하나로 규정하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역사적 책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위안부가 강제 동원된 증거가 없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치졸하게도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에 대한 '보복메뉴'를 준비하고 있다. 700억 달러 규모인 양국 통화스와프를 규모 확대 전인 130억 달러로 되돌리는 방안과 한국 국채 매입을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1일 각료회의에서는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선별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과 대신 보복할 조치를 찾고 있는 일본은 가까운 나라지만 먼 이웃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일본과 같은 이웃이 있다는 것이 불행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에서 보듯이 새로운 미래는 과거사를 슬기롭게 정리하는 길밖에 없다. 왜곡된 교과서로 역사를 가르치고, 독도에 대한 억지 주장을 하는 한 일본의 미래는 없다. 일본이 진정으로 사과하는 날이 머지않은 장래에 올 것이라고 본다. 진실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감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