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사설] 日本, 침략 역사와 전쟁 범죄까지 부정할 텐가

부산갈매기88 2012. 8. 29. 06:36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2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제 연행됐다는 사실이 문서로 확인되지 않았고, (일본 측) 증언도 없었다"고 말했다.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은 "각료들이 (위안부 강제 연행에 일본 정부가 직·간접으로 관여했다고 시인한) 고노 담화의 존폐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쓰바라 위원장은 입각 전 일본군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발언을 했으며 지난 8월 15일 민주당 각료급 인사 중 최초로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인물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 정부 대변인인 고노 관방장관의 발표를 통해 "일본군의 요청으로 위안소가 설치됐으며 위안소 설치·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밝혔다. 고노 담화는 1991년 12월부터 20개월에 걸쳐 경찰청·방위청·법무성·외무성·문부성·후생성·노동청 등 일본 정부 부처 자료와 옛 일본군, 조선총독부 관계자, 위안소 경영자, 위안소 부근 거주자 등의 증언, 한국 측 증인,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자료를 검토하고 오키나와 현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고노 담화 이후, 1945년 광복 그리고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래 계속 제기돼 오던, 일본군이 한국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삼았던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의 배상 문제로 차원이 바뀌었다. 일본 정부는 이참에 그 고노 담화를 뒤집겠다는 것이다.

차기 총리 재도전 의사를 밝히고 있는 자민당 출신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8일자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미야자와 담화와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 모든 담화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정부 견해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집권 후 구상을 꺼내 놓은 것이다. 미야자와 담화는 1982년 역사 교과서 왜곡 파동 때 미야자와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 정부가 책임지고 교과서 기술을 시정하겠다"고 밝힌 내용이다. 미야자와 담화는 이후 일본이 교과서 검정 기준에 '근린제국(近隣諸國) (배려) 조항'을 집어넣는 근거가 됐다.

무라야마 담화는 1995년 8월 무라야마 당시 총리가 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50주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면서 "의심할 여지 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발표했던 내용이다. 이는 일본 정부가 식민지 지배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성하고 사죄한 사례로 꼽힌다.

아베는 총리 시절인 2007년 3월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면서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는 한 달 뒤 미·일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인간으로서 총리로서 마음 깊이 동정하고 있다. 죄송하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런 아베 총리의 처신에 대해 "위안부들에게 해야 할 사과를 왜 미국 대통령에게 하느냐"고 비판했었다.

미 하원은 2007년 7월 "위안부는 일본 정부에 의한 군대 강제 매춘 제도로서 잔학성과 규모 면에서 전례 없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 중 하나"라고 규탄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국무부 관리에게 '일본군위안부'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니 '강요된 성노예(enforced sex slave)'라는 표현을 대신 쓰라고 지시했다.

일본군의 성노예 문제는 당시 일본이 한국·중국·대만·필리핀·태국·베트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거나 일본에 침략당했던 나라는 물론이고 당시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던 네덜란드 여성들까지 대상으로 삼은 인도(人道)에 반(反)하는 범죄로 아시아·유럽·미주(美洲) 국가의 규탄을 받았었다. 국제법에서 인도에 반하는 범죄는 시효(時效)를 따지지 않고 처벌하는 추세가 정착돼 가고 있다.

후발(後發) 제국주의·군국주의(軍國主義) 국가로서 아시아 이웃 나라를 침략해 수천만명을 죽이거나 전쟁터로 끌고 가 방패막이로 삼으면서 유럽 제국주의 국가보다 몇 배 잔혹하고 잔인한 범죄를 저질러 온 것이 일본 근대 100년의 역사다. 일본이 무라야마 담화를 뒤집겠다는 것은 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겠다는 뜻이고, 미야자와 담화를 무효로 하겠다는 것은 일본의 현재와 다음 세대 국민에게 거짓 역사를 가르쳐 자신들의 범죄를 되풀이하도록 하는 길을 닦는 것이고, 반(反)인도적 국가 범죄를 정당화하면서 고노 담화를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은 아시아 국가 공동(共同)의 규탄 대상으로 남겠다는 탈(脫)아시아 선언(宣言)이나 같은 말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상 궤도를 이탈해 막무가내로 달리는 일본을 제어(制御)하기 위해 국제적 공조(共助)를 모색해야 할 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현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