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글

한 팔로 가난과 싸운 울릉도 오징어 어부… 바다서 잃은 한 팔에 기부와 봉사를 담다

부산갈매기88 2012. 10. 9. 08:23

[최기철씨, 어려운 형편에도 2년연속 1000만원씩 기부]
가난했던 '울릉도 기부왕' - 초등학교 졸업후 바로 뱃일
3년 매일 멀미약 먹고 견뎌… 배 로프에 오른손 감겨 절단
15년간 꾸준히 장학금·봉사 - 독거노인 집 수리·청소 나서
낡은 배, 힘든 바다생활에도 "없는 사람 도우니까 참 좋아"

"찢어지게 가난했고 배운 것도 없지만 돈 없어서 힘든 사람들 보면 눈물만 나고 맴도 아프고 가슴 한쪽이 저렸지. 그 사람들 심정을 아니까네."

8일 오전 11시 경상북도 울진 죽변항에서 만난 최기철(53)씨가 배에서 내려 이렇게 말했다. 최씨는 울릉도 남서쪽 바다에서 잡은 오징어를 죽변시장 상인들에게 팔러 잠시 들렀다. 최씨는 2011년부터 매년 1000만원씩 기부해 온 '울릉도 기부왕'이다. 뿐만 아니라 15년 동안 꾸준히 기부와 봉사를 해왔다. 18명의 울릉도 주민과 함께 형편이 어려운 중·고등학생 5명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급해왔고, 7년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은 울릉도에 사는 독거노인의 집을 수리하거나 지체장애인 가족의 집을 청소했다. 그런 '기부왕 최씨'는 한쪽 팔 없이, 30년 된 아파트에 살면서, 17년 된 구식 배를 모는 오징어잡이 어부다.

8일 오전 경북 울진군 죽변항에 정박한 최기철씨가 오징어 낚는 물레 모양의 기계에 의수(義手)를 올리고 있다. 기계는 왼손으로 조작한다. 최씨는 배 위에 달린 전구들을 가리키며“이 전구가 환하게 밝아야 오징어들이 몰려옵니더”라고 설명했다. /윤형준 기자
최씨가 처음 배를 탄 것은 13세 때. 어머니는 산에서 나물을 캤고 아버지는 바다에서 오징어를 잡았지만 형편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6남매 중 넷째 아들인 최씨는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탔다. 뱃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 3년은 매일 멀미약을 먹어야 했다. 하루 종일 잡아봤자 당시 오징어 한 축(스무 마리)은 70원이었다. 고사리 손으로 가까운 바다에 나가 볼락과 문어를 잡기도 했다. 최씨는 "그때 반찬은 매일 오징언데 하도 배가 고프니 매일 묵어도 맛있었지요"라고 말했다. 울릉도를 떠나고 싶었지만 육지까지 갈 여유조차 없을 만큼 가난했다.

계속 어부생활을 하던 중 스물네 살 때 한쪽 팔을 잃었다. 배 로프에 오른손이 감겨들어가는 갑작스러운 사고 때문이었다. 수술로 오른쪽 손목 위 10㎝까지 잘라내야 했다. 최씨는 "당시 가진 것도 없는데 앞이 캄캄했심더"라고 말했다. 한쪽 팔을 잃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고기잡이는 안 되지만 오징어잡이는 가능했다. 오징어를 잡는 물레 모양의 기계는 한 손으로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80년에 2000만원을 들여 중고 배를 사 계속 오징어를 잡았다. 1년 뒤엔 지금 부인과 예식도 올리지 못한 채 셋방에서 결혼 살림을 시작했다. 1995년 사채와 정부 융자를 받아 드디어 지금의 배(만승호·29t급)를 장만했다. 최씨는 그 후로 쉬지 않고 일해왔다. 오징어 철이 아닌 3월부터 8월에는 제주도까지 내려가 조업을 계속했다.

그러던 최씨가 기부왕이 된 것은 2011년부터다. 그해 최씨는 17년간 져 온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당시 오징어 수확량이 평상시의 두 배였기 때문이다. 한숨을 돌린 최씨는 그해 울릉군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2012년에도 '경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최 선장은 "TV에서 사람들이 좋은 곳에 기부하고 그런걸 보면서 마누라랑 '저렇게 할 수만 있음 얼매나 좋겠능교' 했었는데 (나도 기부하니까) 이제 참 좋지"라면서 "이번엔 오징어가 싹 다 어디로 갔노…. 이놈들 농사가 잘돼야 (기부를) 더 많이 할 낀데"라고 웃으며 말했다.

최씨는 건강이 좋지 않다. 3년 전 뇌경색이 와 머릿속에 스텐트(인조 혈관 기구)를 삽입했다. 7년 전에는 신경성 장출혈로 장을 40㎝ 잘라내야 했다. 최씨는 "좋은 뜻이 있어도 계속 이어갈 수 있어야지…. 65세까지는 할라카는데 몸이 따라줄랑가 언제까지 할랑가 모르겠네요"라고 말했다. 최씨는 저녁 7시부터 새벽 6시까지 오징어를 잡고 오전에는 배에서 쪽잠을 잔다. 인터뷰 후 최씨는 다시 배에 올라탔다. 다음 행선지는 울릉도 남서쪽 바다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