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부산갈매기의 남덕유산-장수덕유산(서봉) 산행기

부산갈매기88 2013. 1. 8. 10:16

*산행일시: 2012. 1. 5(토). 맑음

*함께 한 분: 부산백산 산악회원 44명

 

*산행코스: 조산마을(10:35)-영각사(11:00)-영각매표소(11:09)-영각재(12:34)-남덕유산(1507m)(14:23)-서봉(장수덕유산 1492m)(15:34)-경남도 교육청 덕유 교육원((17:33)-영각사 주차장-조산마을(18:00)

 

*산행시간: 7시간 25분(점심 30분, 휴식 50분 포함)

 

*산행 tip: 남덕유산의 설원 산행을 꿈꾸며 달려가는 길은 날씨도 맑고, 고속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잔설에 더욱 마음이 하얗게 되어가고 있었다. 단성을 지나 산청과 함양의 지리산 지맥을 따라 갈수록 높은 산 위의 눈을 바라보니 마음은 정상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남덕유산이 멀리 버스 앞쪽으로 밀려왔다. 하얗게 덮인 산을 올려다보니 그 높이와 위용에 마음이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도로는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영각사까지 버스는 올라 가지 못한다고 공원관리소 직원들이 통제를 한다.

 

만덕 출발 기준으로 2시간 반 못 미쳐 함양군 서상면의 조산마을에서 하차를 했다. 일행들은 정상을 향해 빨리 달려가고 싶어 채비를 서둘렀다. 얼어붙은 도로 사정상 아예 스패츠와 아이젠을 신었다. 공원 매표소까지는 20여 분이 걸렸다. 이미 앞서 온 타 산악회원들이 매표소 쉼터를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일행마저 합류를 하고, 또 이어서 부산에서 온 다른 산악회원들이 밀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산꾼들은 3개 팀 130여 명에 이르는데 화장실은 몇 개 밖에 안 되어 생존경쟁이 치열했다.

 

우리 대원들은 매표소 마당에서 함께 모여 인증 샷을 남겼다. 일행들이 한 줄로 쭉 늘어서서 계곡을 따라 오른다. 아니 이미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등산로를 따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올라가는 좌우편에는 순백의 설원은 누군가가 밟는 것을 거부한 채 하얀 속살을 햇빛에 반사시키고 있었다. 감히 그곳이 너무 깨끗해서 우리의 더러운 발을 차마 밟을 수가 없었다.

 

바람도 숨을 죽인 길을 따라 가면서 일행들은 설경의 분위기에 젖어드는지 말이 없다. 그리고 대오를 이탈할 생각도 없다. 오로지 자연이 향연하는 대서사시에 순종하여 앞서 간 사람이 만들어 놓은 눈길을 따라 오른다. 눈길은 계곡을 따라 나 있어서 힘들지 않았다. 다리를 두 개 지나고 나니 이제 조금씩 가파라진다. 체력이 조금 달리는 사람들은, 100여 명 이상의 산악인들이 쭉 늘어서 있어서 비켜 주고 싶어도 비켜 줄 자리가 없어 숨 가프게 버텨내고 있었다. 영각재 바로 아래의 계단을 밟을 때에는 다리가 조금 뻑적지근해 왔다. 그래도 시야가 확보되고 보니 가슴이 열려지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까지 오로지 남덕유산의 설경에 취해 있었다. 그냥 눈에 덮힌 바위나 나무를 보기만 해도 20대 한창 때 아가씨를 보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느낌, 뭐 그런 것이었다. 그 풋풋함과 알싸함이 능선에 올라서면서 산을 넘어온 찬바람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조산마을 버스 정차장에서 2시간 걸려 영각재 안부에 도착하니 먼저 온 타 산악회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이 그곳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었는데, 아뿔싸 인생은 엿장수 마음대로 안 되는 법인가. 그 안부를 조금 올라 능선에 올라서서 아스라이 보이는 향적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컷 한다. 옆에서 그 자리가 포토 존이라고 하니 죄다 한 방씩 시간을 정지시켜 본다. 그러나 저러나 배꼽시계가 사정없이 울려대니 일행들 식사할 장소를 정하느라 부산하다. 운해님이 조금 더 올라가면 바람이 세차게 부는 지역밖에 없다고 하니, 입김 좋은 여자 회원님들의 등살에 그만 자리를 펼친다. 역시 40~50대의 대한민국의 남자들, 폼은 억수로 잡아 보았자 이성의 한 마디 말에 쭉정이 바람에 날리는 모양새다.

 

점식 식사할 장소가 협소하여 두 곳에 자리를 잡아 앉으니, 햇띵구님이 먼저 막걸리를 한 잔 건네준다. 주위의 바람이 솔솔 부는 탓에 온몸이 떨린다. 배낭에서 얼른 겉옷을 하나 걸쳐 본다. 이번 산행을 위해 혜영님이 오늘 아침에 굴과 배, 갖은 양념을 해서 갓 담궈 온 김장김치를 입에 넣으니 자연이 내 입속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자그마치 두 포기를 가져 왔단다. 인생에서 이런 먹는 재미를 빼고 나면 뭐 살맛이 나겠는가. 거기에 햇띵구님이 버너를 피워 라면을 끓여 뜨거운 라면 국물을 컵에 따라준다. 속이 뜨뜻해져 온다. 엔돌핀 상승에 따라 상쾌 지수가 높아져 가는 것 같다. 우리 일행이 먼저 먹고 일어났고, 조금 위에 자리를 잡은 운해님과 은수님, 서희님 일행은 식사중이었다.

 

암능을 올라서니 세찬 북서풍이 불었고 남덕유산의 봉우리로 올라가는 철계단들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쳐다만 보아도 그 높이와 규모에 오금이 저려온다. 그 암능에서 20여 미터를 일단 내려갔다가 철계단을 굽이 돌아올라 가야 한다. 그런데 80~90미터의 철계단을 오르는 중간쯤에 앞서 가던 혜영님의 허벅지에 쥐가 난다고 다리 난간을 붙들고 있다. 운해님이 바로 뒤에서 얼른 다리를 주무른다. 교행하기도 힘든 계단이라 어찌할 방법도 없다. 운해님이 아스피린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60~70도의 깍아지른 절벽 계단 위에서 절차절명의 긴급 상황이었다. 나는 그 절벽 난간 위에서 아래를 향해서 계단을 올라오는 타 산악회원들에게 “아스피린 가지신 분 없어요?” 하고 고함을 질렀다. 2~3분 후 절벽 아래에서 누군가가 아스피린이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궁하면 통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해결 방법이 나오고, 고기는 씹어야 제 맛이 나는 법. 덩치가 큰 사나이가 아스피린을 건네주며 입으로 꼭꼭 씹어서 우유같이 넘기라고 했다. 혜영님은 아스피린 두 알을 그냥 씹어서 먹었다. 운해님은 다리를 계속 주무른다. 경련이 일어난 허벅지는 좀처럼 가라앉지가 않았다. 교행하기가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곳에 오르내리는 누구 하나 불평 없이 기다려주고 걱정을 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 계단 위의 능선에 조금 걸어올라 올라와서는 햇띵구님이 가세를 하여 허벅지를 주물러 본다. 진정한 리더는 위기 상황 속에서 빛을 발하는 법.

 

이제 조금 차도가 있어서 혜영님은 남덕유산 정상 바로 아래로 걸어 올라갔다. 혜영님은 정상에는 오르지 않고, 정상 좌측의 험하지 않은 길을 따라 갔다. 그리고 내가 정상 표지석으로 가니 이미 일행은 다 내려갔고, 정상 인증샷을 위한 다른 산악회원들의 줄이 엄청 났다. 하는 수 없이 운해님과 정상 표지석 옆에서 인증 샷을 남기고 내려오려는데, 휘운님이 정상 이정표 앞에서 홀로 사진을 찍는다고 이러저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내가 두세 장 사진을 찍어주고 삿갓재 갈림길에 내려가니 앞서 간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덕유산과 서봉 사이의 안부는 바람이 지나가는 골이라 세찬 칼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들에 떠밀린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에 이리 미끄러지고 저리 미끄러지면서 앞에는 현진님과 은수님, 그리고 맨 뒤에는 붉은 노을님이 따라오면서 서봉(장수 덕유산)을 향해서 나아갔다.

 

그런데 서봉인가 싶어 올라선 능선에서 올려다 본 서봉의 철계단은 다시 한 번 힘을 빠지게 했다. 30~40m의 높이에 경사가 만만찮았기에. 그 계단을 힘겹게 올라갔더니 펑퍼짐한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출발지에서 5시간만에 도착하니 사방팔방이 탁 트인 서봉에서 하늘과 먼 산을 배경으로 일행들은 한 컷을 했다. 예전부터 후미조로 잘 다니는 휘운님이 폰카로 사진을 찍고 싶단다. 서봉 표지석은 거기서 남서쪽으로 3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휘운님의 사진을 찍어주고 내려다보니 일행들은 전부 내려가 버리고 일행에서 낙오된 두 사람만 남았다. 마음이 다급해져서 150여 미터쯤 떨어진 능선에 붉은 노을님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능선 아래로 내려가니 암능 사이로 일행은 하산 중이라 겨우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제는 계속 내려가기만 되는 줄 알았는데, 외줄이 걸린 20여 미터의 구간이 나타났다. 육십령이라고 쓴 이정표를 따라 계속 하산을 했다. 서쪽 해를 보니 서쪽 산에 걸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교육원 방향은 남동쪽에 위치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교육원이라는 이정표가 나왔으면 했는데, 드디어 오후 5시가 넘은 시각에 나타났다. 그곳은 삼자봉이었다. 거기서부터 교육원까지의 하산길은 심한 비탈길이었다.

 

이제 어둑어둑해지는 느낌이었기에 다들 마음이 다급해졌다. 내 뒤의 후미에는 서희님, 휘운님, 붉은 노을님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갈 길은 멀고 마음이 급한 데다 체력은 다소 고갈되어 서희님이 몇 번이나 미끄러지며 내려 왔다. 그 순백의 고결하고 멋진 눈들이 체력의 고갈과 함께 지겨워졌다. 세상사 처음의 마음이 끝까지 가는 법이 있을까.

 

교육원이 다 되어 가는데 갑자기 능선으로 올라서야 하니까 일행 중 “또 올라가야 돼...” 하는 소리가 들렸다. 11명의 일행들은 교육원의 뒤뜰로 올라섰을 때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속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번 겨울에 눈 속에서 파묻힐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을 생각하여 이런저런 자세를 취해 본다.

 

교육원을 지나 포장도로를 내려오는 길은 잔설과 얼음이 얼어 있었다. 그 길 또한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30여 분 이상을 걸어 내려왔다. 조산마을의 버스로 왔을 때 회장님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인즉 짝지가 아직 안 와서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귀중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후미조인가 했더니, 아직 오지 않은 일행이 있었으니. 늘상 우리 일행이 후미조를 도맡아 했는데, 후미조의 대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하산길 로프 구간에서 올라와 계곡으로 빠지는 바람에 형제님. 부용님, 흔적님, 윤슬님, 태영님, 운해님 등의 일행이 엄청 고생을 했단다. 여름 산행시 간 경험을 살려서 그곳으로 갔다고. 하지만 겨울이라 눈이 엄청 쌓여 있어서 미끄럽고 넘어지기를 여러 차례 했단다. 그래도 일행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얼마나 좋은가.  또 다른 장소를 갔었기에 다른 일행에게 멋진 사진을 보여주니 더 즐겁고.

 

  때론 인생은 줄인 것 같다. 보다 나은 어떤 리더가 앞길을 개척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또 산행 지도를 주었기에 숙제 해결도 잘 해야 하는데, 우리의 생각과 욕심이 앞서서 때로는 썩은 동아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 함께 뜻과 마음을 모두게 되니 즐겁지 아니한가! 늘 감사와 배려하는 마음이 우리 백산을 지탱시켜 주는 힘줄이 아닌가 생각한다.

 

생초에서의 매운탕은 이번 산행의 피로와 고생을 말끔하게 해소시켜 주었다. 산에서 못 다한 이바구, 거기서 잔치를 벌였다. 생탁이 한 순배 돌고, 소주잔이 도는 가운데 얼큰한 매운탕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어 다음 산행지인 선자령으로 옮겨갔다. 백산님들은 언제나 넉넉하게 기다려 준다. 함께 하기 위해서.

 

 

*산행지도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