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의 어느 시골 소녀가 편지겉봉에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분에게'라고 적은 편지를 보내었답니다. 주소도 없이 보낸 그 편지는 영국의 처칠 수상에게 배달되었다고 합니다.
역사는 처칠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인류를 나치의 폭압으로부터 구한 영웅이며 전후 세계평화의 기반이 된 국제연합과 유럽연합을 제창한 역사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칠은 처음부터 위대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절망의 바다를 넘고 우뚝 선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랜돌프는 아내에게 “아들이 목사가 되기에는 성격이 너무 안 좋고 변호사가 되기에는 머리가 나쁘니 군인밖에는 할 것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아들의 능력을 낮게 평가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제니는 워낙 바람기가 많은 여자여서 아이들의 양육을 유모와 하인에게 맡겨 버린 채, 거의 관심을 쏟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들이 일곱 살 무렵이 되자, 기숙학교에 보낸 뒤 돈을 보내 주고 가끔씩 편지를 쓰는 것으로 어머니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학창 시절의 처칠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성적이 좋지 않았으며 게다가 수업태도마저 좋지 않아서 늘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는 문제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공부에 소질이 없었고 게다가 고집이 셌기 때문에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교사의 눈 밖에 났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성적이 나빠 샌드 허스트 사관학교에 지원했지만 두 번이나 시험에 낙방했고 아버지로부터 "전혀 쓸모없는 놈"이라는 심한 꾸지람을 듣은 후에 하는 수 없이 고시원에 들어가 6개월 간 과외 선생들로부터 집중적인 교육을 받으며 세 번째 시험을 준비했답니다.
그때 사관학교 입시에는 세계의 여러 나라 중에서 하나를 정해 그 나라의 지도를 자세히 그리는 문제가 출제되었답니다. 처칠은 고민을 하다가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수많은 나라 중에서 뉴질랜드를 찍어서 집중적으로 준비했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나라 중 뉴질랜드를 그리라는 문제가 나와 기적적으로 세 번째 시험에 간신히 합격했다고 합니다. 그는 여든 살이 넘어 노벨 문학상을 받을 때까지 늘 지긋지긋한 빚 독촉과 돈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열 세 살 때부터 폐렴을 앓았고 심장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처칠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좌우명은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였습니다.
자신의 단점이나 나이, 환경과 과거가 포기의 빌미가 되지 않았습니다.
수상직에서 물러나 모교 대학에서 연설을 할 때 그는 학생을 행해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결코...."라고 말하며 연단에서 내려와 뚜벅뚜벅 걸어나갔다고 합니다.
-열린편지/김필곤 목사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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