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세이

<치유와 회복의 자연>

부산갈매기88 2016. 11. 2. 09:58

 

8년 전 C형 간염선고를 받았다. C형 간염은 혈액으로 간염 되는데 오염된 침, 주사바늘, 면도기 등을 통해서 감염된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경로를 통해서 C형 간염에 걸렸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간 기능이 안 좋은 상태였고, 초기 당뇨증세가 있어서 치료하고 있는 중이었다. 몇 개월 동안 치료를 받은 결과 당뇨수치는 100이하로 떨어졌으나 간 기능은 크게 호전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정밀 혈액검사를 통해서 C형 간염 판정을 받았다. C형 간염치료를 하는 1년 동안 몸무게는 18kg이나 빠졌다. 간염치료를 하는 과정의 고통도 심했다. 항암치료를 받는 것과 거의 같다고 의사는 일러주었다. 매주 1대씩 맞은 주사와 조석으로 먹는 약으로 인해서 적혈구와 백혈구는 절반 이하가 되었다. 등과 허리의 통증으로 괴로웠다. 걷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힘이 없기에 빨리 걸을 수도 없다. 건강하지 않기에 삶의 의욕도 해파리처럼 흐물거렸다. 머리털은 뭉텅 빠지고, 볼기짝은 해골처럼 움퍽 파졌다. 아직 살아야 할 날들이 많은데. 그 살아가야 할 의미를 잃었을 때 시작한 것이 산행이다.

 

맨 처음 산행은 부산의 회동수원지의 자드락길이다. 수원지의 둘렛길을 걷기로 했다. 혈구수치가 정상 때의 절반 이하라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빴다. 처음에는 30여 미터도 채 가지 않아 숨이 가빠서 주저앉아야 했다. 제대로 걷지 못하기에 누군가 함께 걸을 수도 없었다. 과연 이 시련은 어떻게 감내해야 할까. 아름다운 수원지 호반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몇 걸음을 떼어 어디서 쉬어야 하는가’ 하는 현실의 문제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쉬엄쉬엄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을 걷게 되니 조금씩 몸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체력이 회복되고, 근력이 생기게 되었다. 삶의 능선도 변화가 찾아왔다. 차츰 비탈길이 가파른 산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제 금정산의 각 코스를 오르기 시작한다. 금정산 산행코스는 몇 개월을 다녀야 할 정도로 다양하다. 몸이 성치 않으니 빨리 갈 수도 없다. 두꺼비 걸음으로 걸으니 평소 느끼지 못한 숲속의 움직임을 잘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도회지 아파트의 네모난 틀 안에서 정형화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다. 그래서 생각도 네모다. 원처럼 둥글지가 못하다. 자칫 주위 사람에게 말벌 같이 쏘아댄다. 상대의 가슴속 깊숙이 보이지 않은 침을 박는다. 그 박힌 침은 또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가슴에 보이지 않은 상처를 싸매고 살아간다. 하지만 숲속에 들어서면 웃음 짓는 꽃에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차가운 겨울을 이겨내고 땅바닥에는 제비꽃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아직 나뭇가지에는 잎이 매달리지 않았다. 나무들은 겨우내 얼어있던 땅을 위해서 햇빛을 양보한다. 이파리가 무성하게 되면 그 이파리 때문에 땅은 햇빛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기꺼이 나무들은 땅에게 기지개를 켜게 한다. 그래서 그 얼었던 땅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영역에 있는 사람을 깔아뭉개려 하는 경향이 있다. 생존의 본능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숲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봄꽃은 대체로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진달래와 벚꽃 등 꽃이 피고지고 난 이후에 이파리가 무성해진다. 겨울의 인고를 견디어 온 나무들이 화려한 꽃을 피운다. 인간도 흙갈이를 하는 농부의 심성이 도시 사람보다 더 아름답다.

 

산허리를 감돌아 천천히 소걸음으로 올라선 능선이 더 아름답다. 하늘의 입김에 따라 잘룩한 산등성이가 바람을 실어 나른다. 그 숲속의 나무둥치는 오랜 시간을 누워 지내다 사위어가고 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며 자연에 동화되어 간다. 그 자리에서 서서 일생을 마친 후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간다. 어쩌면 우리 삶도 이렇지 않을까. 결국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흙이 되지 않을 것처럼 욕심을 부린다. 부귀영화와 명예도 한 줌의 흙이라는 것을 나무 옷을 입었을 때 깨닫게 되니......

 

그런데, 편백나무와 잣나무는 일반 잡나무와는 다르다. 자신의 몸에서 강한 향을 풍겨 자신들이 위치한 나무 밑동에는 다른 수목들이 살지 못한다. 자신의 영역을 향으로 지켜낸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울타리를 치듯. 우리에게 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좋지만 다른 식물들에게는 좋지 않나 보다. 칡이나 넝쿨 식물을 보면 다른 식물을 타고 올라간다. 결국 그들은 홀로서기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누구와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라 주위 여건을 활용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어쩌면 칡이나 넝쿨 식물 같은 인간도 얼마나 많은지.

 

몸이 아파 마음을 추스를 때 산은 본래의 모습으로 다가 온다. 쉼 없이 달려온 인생.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이 안 돌아갈 것처럼 살아온 날들이다. 숲은 나에게 겸손하라고 이른다. 숲속 나지막이 현호색꽃, 제비꽃, 노루귀, 매발톱이 봄을 노래하고 나면 나뭇가지에 이파리가 싹을 틔운다. 자연의 수레바퀴가 빙글빙글 돌듯 인생 수레바퀴도 돈다.

 

그렇게 시작한 산행이 어언 8년. 사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자연은 나의 몸에 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처음에는 내가 산을 좋아했는데, 이제 산이 나를 좋아한다. 산은 치유의 기운을 불어준다. 산의 나무와 수풀만이 힘을 얻는 게 아니다. 사람이 쉼을 얻는다. 안식을 얻는다. 행복을 찾는다. 산새 소리, 개울물소리, 꽃이 웃는 소리가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켜 준다. 풀먹인 하늘 아래 산등성이를 타고 넘는 운해가 여인의 옷자락처럼 나부낄 때 우리의 마음도 본향을 그리워하게 된다. 아파 본 자가 세상을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자연이 오염되어서는 회복이 되지 않기에. 자연의 오염과 함께 우리 숨소리도 거칠어가게 되나니.....

 

<부산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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