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세이

하나님의 계획하심

부산갈매기88 2018. 9. 17. 07:06

 <하나님의 계획하심>

 

“목사님에게 긴급히 기도를 요청할 수가 없을까요?”

저쪽에서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급하고 간절했다. 어제 친구가 자신의 처남인 Y에게 부산대학병원 무균실에서 의식이 있을 때 혹시 자신이 쓰러지게 되면 꼭 담임목사님에게 기도를 요청해 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월요일 오전에 긴급히 나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친구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있다고 한다.

 

친구는 3년여 혈액암으로 투병을 해 왔다. 3년 만에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나 친구는 지난 1월부터 집 뒷산에 올라 체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최근 날씨가 따뜻해져서 산책시간도 늘리면서 남은 생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삶의 방관자가 아닌 삶의 주관자로 의식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생활용품 다단계 판매에도 지인의 권유로 가입을 해서 활력이 넘치게 미래에 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병원에 입원을 해서 쓰러졌다고 하니 가슴이 메어졌다. 게다가 서너 달 전부터 교회에 얼굴을 나타내고 6주간의 학습교육도 거뜬히 해냈다. 뭔가 예전의 모습이 아닌 뭔가 삶의 밭뙈기를 일구어 가려는 의지가 보여서 나에게 굉장히 고무적이었다.

 

그런데 그 하루 사이에 변고가 생긴 것이다. 어제 주일 친구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친구야 잘 지내지요? 나는 부산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우. 당분간 있어야 할 거 같다우. 변동이 있으면 다시 연락할게요.”

Y가 교회 담임목사님의 기도를 요청한다. 먼저 부목사님인 P에게 전화를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무슨 일일까. 교회의 모든 일을 꿰고 계시는 B원로 장로님에게 전화를 한다. 그 분으로부터 목사님이 노회 참석차 출타를 하셨다는 정보를 얻는다. 그래서 그 분은 목사님 두 분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놓으라고 한다. 속이 타는 심정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놓는다. 1시간이 지나도 회신이 없다. 그 사이 Y로부터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서 전화가 온다. 한 영혼의 등불이 꺼져가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내 마음은 허공을 가로질러 두둥실 떠다닌다. 혹시 저렇게 속절없이 이생을 떠나가 버린다면 얼마나 훗날 가슴을 치고 후회할 것인가. 문자를 보내 놓고 두어 시간이 흘렀건만 연락이 없다. 겨우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 부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노회를 마치고 담임목사님과 나왔다고 하는데......

 

부목사님은 직접 담임목사님에게 전화를 해 보라고 한다. 다시 한 번 더 B원로 장로님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상담 전화를 해본다. 꼭 담임목사님이 병문안을 할 시간이 없다면 자신과 부목사님이 함께 병원 심방을 하겠노라고. 그렇게 문자를 보내라고 원로목사님은 말씀하신다. 병원에서 더 이상의 심방 재촉 전화는 오지 않았다. Y에게 전화를 해 보니 중환자실의 면회는 오전 10시에서 10시 반까지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의 면회 일정은 끝이 났다고 한다. 이제 내일 오전의 병원 심방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재차 담임목사님에게 문자를 보내 놓는다. 하지만 두어 시간이 흘러도 무소식이다. 간신히 부목사님이 담임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여 담당 교구 S전도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일 아침 09시 20분에 교회를 출발하여 10시 면회시간에 맞춰 가겠다고 한다.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할까 하는 조바심이 뱀 똬리를 튼 것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친구는 중년의 나이에 사업이 실패하여 신용불량자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기도 했고, 3년 남짓 캄보디아에 해외파견으로 나가 있기도 했다. 그는 늘 낙천적인 성격 탓에 땅속 매미처럼 잘 살아왔다. 그리하여 인고의 세월을 버티고 건설회사의 이사로 이리저리 뛰어다녀 보기도 했다. 오륙 년 전 친구 처남인 대전에 사는 친구에게 공장을 한다고 큼지막한 액수의 돈을 내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건네 준 적이 있었다. 어쩌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지만, 나는 흔쾌히 친구를 통해서 그들에게 자금을 마련해 주었다. 무엇보다 친구에게 그렇게 해 준 것은 친구가 이제 막 교회를 출석하고 있었기에 그의 의지를 꺾고 싶지 않아서였다. 돈이란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갈 수 있지만, 친구의 우정은 그렇게 말라버려서는 안 된다는 심리가 작용을 했고, 또 예수님을 영접한 한 영혼과 소원해지고 싶지 않은 터였다. 그 오년 여의 세월 동안 그 돈 문제로 친구는 나에게 정말 미안하게 생각했지만, 그와 나의 우정은 변함없이 지속되어왔다.

 

다음 날 오전 9시가 넘어서 병원으로 달려간다. 대학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는 탓인지 병동마다 인산인해다. 여러 대의 엘리베이터마다 병문안을 하는 손님들로 그득하다. 예정마다 20분 빨리 T5층에 도착하니 보호자 대기실에는 사람들이 환자의 면회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병원 전체에 웬지 모르게 묵직함이 느껴진다. 인간의 삶이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는 느낌을 받아서인지. Y에게 전화를 거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오랜만에 보는 낯익은 얼굴 Y를 대한다. 5년 전에 그의 친구에게 만져보기 힘든 돈을 건네주었지만 아직 한 번도 나는 그를 원망을 한 적이 없었다. Y에게 누나는 어디 있는지 물으니 비상계단 쪽으로 안내를 한다. 그 계단 옆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그 자리 깐 것을 보아서 거기에 대기한 시간이 제법 되었음을 느끼게 했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 온 남편이 의식불명인 상태로 저렇게 누워 있는데, 마음이 편할 수가 있었을까. 나와 손 인사를 하면서 내 엄지손가락 부분을 꼭 쥐는 느낌이 어딘지 모르게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여자의 눈물. 그 눈물의 의미는 세상의 벽에 부딪힌 절규가 섞인 것인지도 모른다.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온 것일까 하는. 그러나 그녀는 3년 여 혈액암으로 투병한 남편의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행여 남편의 뒷일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게 간절하게 깨어나기를 소망했지만 친구는 의식을 잃은 1주일 만에 내 곁을 떠나갔다. 천국에 가기 이틀 전 친구의 아들이 의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친구 부인에게 해 주었다. 아빠가 의식은 이미 없는데, 뭔가 아직 정리가 안 되어서 숨을 끊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명히 의식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누군가가 천국에 잘 가라는 그 작별인사가 없어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친구 부인은 다음날 저녁 병상의 남편을 찾아갔다. 속으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이제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가소. 나는 어찌 살아도 안 살겠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친구의 아들이 ‘아빠! 사랑해.'하며 한 마디 거들었단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이튿날 혈압은 뚝뚝 떨어져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안고 천국으로 가 버렸다. 한 밤중 잠자리에 들어 깊은 단잠을 자고 있는데, 친구의 처남인 Y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가 숨을 거두었다고.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잠은 저 만치 달아나버렸다. 친구와 함께 한 시간이 영화 필름처럼 막 돌아간다. 3개월마다 검사결과를 보고 백혈구 수치가 4,000이하인 경우 대학병원의 무균실에서 보름 정도 항암치료를 받고 귀가하기를 삼년 여.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았었는데, 하루아침에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세달 마다 병원에 가기 전 송도의 내 사무실을 찾아와 오후 두세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서면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그와 이제는 만남의 즐거움을 함께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슴이 멍해진다. 그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나의 한숨은 땅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이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그의 아내야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조용히 장례식은 치루어졌다. 우리 교회의 교역자와 우리 구역식구, 지회원들이 장례식장을 찾아가서 친구의 아내를 위로했다. 지회원들은 달포 전 삼일절에 언양의 모 가든에서 닭백숙을 먹으며 웃고 즐기던 것을 생각하면서 정말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랜 병마와 싸우며 웃음을 잃지 않았던 친구.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가슴이 요동친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인생인 것을 우리 모두는 천 년을 살 것처럼 온갖 탐욕을 부리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미망인이 된 친구 부인은 갑자기 하늘로 올라가버린 남편을 못 잊어 밤마다 흐느끼면서 전화가 온다. 왜 그토록 망자와 정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망자가 죽기 전까지 육칠 년을 매일 아침 야채를 믹서기에 갈아서 부인에게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계란 후라이도 자주 해주었다고 한다. 신용불량자로 객지 생활을 떠돌다 아들의 권유로 집에 들어오게 되었단다. 아들이 엄마에게 “아빠가 갈 곳이 없는데, 거실이라도 재워주시면 안 될까요?”하고 애원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집 안으로 들어온 친구가 아프고 난 후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음과 정성을 다할 수 있는 아주 소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일이 아내에게 더 큰 감동으로 남아서 남편의 온기가 온 집안에 끈적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늘 미망인은 그 추억의 성에 갇혀버려서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집안 구석구석 망자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어서 살아있는 사람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게다가 작은 방에 들어가면 그 웃고 있는 영정사진이 아직 자신과 함께 호흡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함께할 수 없는 망자 때문에 그냥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 흐르는 것이다.

 

미망인에게 망자가 살아 있을 때 마누라와 함께 언젠가는 이 교회로 올 거라고 했던 말을 상기시켜 주었다. 미망인은 남편이 정말 그렇게 말했냐고 물었다. 나는 그가 한 말을 일러 주었다. 교회에서 다른 부부가 함께 나와 예배드리던 모습을 한껏 부러워했노라고. 자신이 저질렀던 과거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결국 아내에게 교회에 같이 가자는 말을 못하고 그는 천국에 간 것이다. 내 말을 듣고 난 미망인은 장례도 끝났고, 또 교회에서 장례식도 집례를 해 준 고마운 마음에 아들과 함께 인사드리려 가겠다고 해서 주일 출석을 했다. 교회의 지회원들이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찾아와 환한 얼굴로 대했다.

 

친구는 천국에 가고 없지만, 그 대신 친구 부인의 영혼을 구원하게 되니 정말 기쁘다. 나는 죽은 친구의 영혼 구원을 위해 7년여 기도했다. 그 결과 친구는 온전히 주님을 믿고 천국에 갔다. 이제 미망인으로 남겨진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은 나에게 또 다른 기도의 숙제를 주셨다. 교회에 믿음 뿌리를 잘 내리기까지 줄기차게 또 몇 년을 기도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망자의 처남이자 미망인의 친동생인 Y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Y를 통해서 Y의 친구에게 넘어간 거액은 어쩌면 영혼구원을 위한 제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예정하심 속에서 우리는 걸어갈 뿐이다. 다만 기도 제목만 남아 있을 뿐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

 

 

<2018 고려문학 21집 수필 개재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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