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세이

<하나님보다 무서운 전자 독수리눈>

부산갈매기88 2016. 11. 23. 08:52

 

7월의 마른장마가 계속 되고 있다. 오늘 하늘은 나지막이 버선발을 내리 밟고 있는 듯하다. 뭐 한 개 얻어먹지 못한 험상궂은 어린애의 얼굴을 하고. 뭔가 하늘은 한 방 때려줄 심사다.

 

오전이면 거의 일상 업무를 마무리 짓게 된다. 수산물 유통을 하는 업체의 주문이 오전에 이루어지기에. 이번 초여름의 국내경기도 메르스(Mers)라는 초거대 글로벌 회오리에 휘말려 기진맥진하게 되었다. 국내 경기는 작년 세월호 영향으로 휘청거리더니, 이번에는 메르스로 완전 그로기 상태다. 평소 학습이 안 되어 있는 메르스라는 단어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더니 국내 안방을 초토화시켰다. 염라대왕 보다 무서운 저승사자의 신출귀몰함에 병원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점심 후 걸려오는 전화는 달갑지 않다. 거래처 손님과 한 바탕 전화로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나를 바꿔 달라는 전화가 왔다. 사무실 여직원이 저쪽에서 혹시 최근 신용카드를 잃어버린 적이 있느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아니 신용 카드는 내 지갑 속에 누에잠을 자고 있다. 그런데 전화 속 남자는 내 신용 카드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다. 뭔가 불길한 조짐의 전화다. 혹시 뇌리에 스치는 것은 요즘 어디에서나 회자되는 보이스 피싱의 전화가 아닐까. 통장 잔액은 가을 고추잠자리가 호수 위에 꼬꾸라지듯 포물선을 그리고 있는 나에게까지 이런 일이. 정말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나 같은 서민 중의 서민에게 까지 이런 보이스 피싱의 해파리 촉수가 설쳐대다니. 이제 대한민국 쫑 나는 게 아닌가. 저쪽은 분명히 모 경찰서 여성청소년담당 수사관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경찰사칭의 보이스 피싱이 많은데, 필시 이것인가. 더욱이 신용카드까지 들먹대고 있으니. 가슴이 떨리고 전율이 인다. 일단 여직원에게 내가 자리에 없다고 둘러대게 하고 전화를 끊게 한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심경이 복잡해진다.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또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조금 전 그 전화인데 나를 바꿔 달라고 한다. 전화를 받아야 하나 어쩌나 잠시 갈등이 생긴다. 머릿속이 조금 하얘진다. 평소 파출소 앞에도 지나가는 것마저도 겁낸다. 그런데 경찰서라고 하니까 ‘경찰서’라는 단어가 벌써 중압감으로 떡메 치는 듯하다. 일단 수화기를 드는데, 저쪽에서 모 경찰서 여성 청소년계 00수사관이라고 한다. 또다시 최근에 신용카드를 분실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런 일이 없다고 무 짜르듯 한다. 그리고 내가 이 전화번호에 대해서 먼저 확인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랬더니 그는 몇 개의 전화번호를 나에게 일러준다.

 

어디에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하면 될까. 머리가 뒤죽박죽이 된다. 그래서 일단 먼저 112로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여순경인 듯하다. 저쪽에서 온 세 개의 전화번호를 얘기했다. 첫 번호는 뜸을 좀 들이드니 그 경찰서 전화번호가 아니라고 했다. 속으로 '옳거니’ 하고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컴퓨터 조회를 계속 하더니 “아~ 네. 그 뒤 번호는 그 경찰서 여성청소년계가 맞네요.” 일순간 생각의 앞대가리는 허공을 맴돌고 있다. 예상이 보기 좋게 어깃장을 놓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세 개의 번호를 다 조회하더니 그 전화번호가 모 경찰서 수사계 전화번호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인근 지구대에서 나에게 전화가 가도록 조치해 주겠다고 하고서는 전화를 끊었다.

 

3분 후 정적을 깨고 전화벨이 울린다. 송도 지구대라고 한다. 아까 확인한 전화번호는 모 경찰서 여성 청소년계라고 알려준다. 그래서 그 전화번호로 통화를 한 번 해 보라고 한다. 아뿔싸, 그럼 이것은 보이스 피싱이 아니란 말인가.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 했기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단 말인가. 남한테 사기 한 번도 칠 줄 모르는 세상 숙맥인데. 사업을 하면서도 남한테 돈을 떼일망정 재바르지 못해서 얼렁뚱땅 사기나 당하는 투미한 나인데.

 

이제 그 번호로 전화를 한다. 상대는 아까 통화한 그 수사관 목소리다. 40대의 조금 목이 쉰 듯한 목소리. “네. 확인이 되셨십니꺼? 언제 여기 나와서 확인을 해 주실 게 있십니더.”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가슴은 콩 볶듯 뛰고 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슴에 진득하게 묻어두는 성격이 아니기에.

 

쏟아지는 소나기. 후텁지근한 대지를 식혀주고 있다. 그 비는 나의 마음을 식혀주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 수사관이 부를까? 그 수사관이 일러준 경찰서로 향한다. 그 수사계는 별관인데 본관 5층으로 잘못 찾아갔다. 다시 전화를 해서 묻는다. 그래서 다시 1층을 뚜벅뚜벅 걸어 내려가 왼쪽에 있는 별관 5층으로 걸어 올라간다. 문이 살짝 열려 있다. 방에는 세 명의 수사관이 앉아 있고, 오른쪽 수사관 앞에는 서른 살 전후 되는 젊은 녀석이 앉아서 조서를 꾸미고 있다. 뭔가 묘한 공기가 흐르는 수사실이다. 아까 통화한 수사관은 첫눈에 나를 알아보고 앉으라고 한다.

 

주민증을 주라고 하더니 인적사항 등을 먼저 물어본다. 아까 여직원이 있어서 전화상으로 구체적인 얘기가 힘들었단다. 그래서 직접 경찰서로 오라고 했다고. 7월 3일 저녁 10시 40분 좌천역 여자 화장실에서 남자 한 사람이 여자 고함소리를 듣고 뛰쳐나갔다고 한다. 그날 그 시간대에 좌천역을 지나간 사람을 체크 중이라고 한다. 그 시간대에 내가 좌천역 안으로 들어갔기에 불렀다고 한다. 신용 후불교통카드의 일련번호 확인 결과 나였다고 한다. 그는 그날 저녁 10시 40분경에 좌천역에 왜 갔느냐고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7월 3일이라 한 달 전 기억의 필름을 되돌려 본다. 그 날 저녁이라면 아무래도 교회의 금요심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스쳐지나간다. 그래서 그날이 무슨 요일이냐고 앞에 앉아 있는 수사관에게 물으니 그 옆의 동료 수사관이 금요일이라고 얘기해 준다. 그럼 교회에서 우리 남자지회 금요심야 담당인 것 같다. 곧바로 교회의 사무 간사에게 전화를 한다. 우리 남자지회의 금요심야기도 담당인 것이 확인된다. 뭔가 생각이 다소 정리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날 저녁 교회의 남자지회 금요심야 기도담당이라 참석을 한 후 10시 30분쯤 교회를 나서서 좌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부전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서’라고 설명을 했다. 그러자 그 옆의 수사관이 맞장구를 친다. "그래, 맞네요. 부전역이 찍혀 있던데......"

 

담당 수사관은 그날 어떤 옷을 입었느냐고 묻는다. 평상시 늘 이 까만 양복을 잘 입고 다닌다고 말했다. 혹시 그날 등산복 차림이 아니었느냐고 물어 본다. 그리고 좌천역 화장실에 가지 않았느냐고. 교회는 1번 출구 쪽에 있고, 화장실은 50여 미터 떨어진 북쪽 3번 출구 쪽에 있는데, 굳이 그곳에 갈 이유가 없다고 설명을 했다. 계속해서 수사관은 나와 일문일답을 하면서 그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휴대용 메모리 USB가 들어있는 컴퓨터를 구동했다. 화면이 그의 의도한 대로 잘 뜨지 않았다. 입술은 타고, 숨고르기가 필요한 것 같았다. 잠시 후 화면이 떴다. PC앞으로 와서 보라고 한다. 그 화면은 입구에 카드를 찍고 역 안으로 들어가는 뒷모습 사진이었다. 뒷모습이 희미하고 어렴풋이 머리가 좌측으로 틀어져 있었다. 그 모습은 왼쪽으로 가기 위해서 몸을 약간 틀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교통카드를 찍고 들어간 곳은 개폐형 출입구였다. "지는 개폐형 출입구는 이용을 잘 안 합니더. 저쪽을 이용하면 환승할 때 제대로 카드가 잘 찍히지 않았던 징크스가 있어서예." 그 희미한 뒷모습 사진으로서는 제대로 판독하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동영상을 보여준다. 그 동영상은 화장실에서 급히 30대 후반의 사내가 화장실에 뛰어나온다. 상의는 파란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화장실 안에서 뛰어 나올 때 왼쪽으로 한 번 몸을 뒤틀면서 뛰어가려다가 오른쪽으로 향해 달려 나갔다. 아마 화장실 안에 있던 여자가 고함을 질러 당황해서 왼쪽으로 가려다 오른쪽으로 뛰어나간 것 같았다. 그 오른쪽은 지하철 역무실이 있는 곳인데. 왜 굳이 긴 복도를 달려갔을까.

 

그 화면을 보니 내가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 화면의 사내는 상의가 파란 등산복 차림이고, 얼굴로 보아서 30대 후반 정도로 보인다고 한마디 했다. 그네들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모양이다. 달갑지 않은 1시간 반 정도의 조사가 갈무리 되었다. 작성한 조사서를 읽은 후 서명을 하고 가라고 했다. 선의의 피해로 내 인생의 황금 시간이 그렇게 토막이 났다. 이제 밖에는 비도 그쳐가고 있었다.

 

우리가 매일 도심지를 걷게 되면 적어도 여섯 번 이상 CCTV에 노출된다고 한다. 싫든 좋든 CCTV에 사진이 찍히고, 우리 자신의 모든 모습이 고스란히 그 속에 남는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전자 칩에 저장된다. 이 지구는 그 전자 칩이 관리를 한다. 도로와 항만이든, 버스나 지하철이든 모두 하나하나 전자 칩으로 관리되고 통제되고 있다. 자유롭게 활보하는 듯 하지만 거미줄처럼 얽히고 옭아매는 전자 독수리눈의 공격에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그 일거수일투족을 고스란히 전자 독수리눈이 감시를 하고 있다. 내가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하늘의 하나님은 영상을 남기지 않지만, 도심지의 CCTV는 매일 우리의 얼굴을 기록하고 있다. 보이스 피싱은 늘 우리 옆에 시한폭탄처럼 잠재하고 있다. 우리 일상의 발자취는 CCTV가 다 알고 있다. 우리는 잠들어도 CCTV는 잠들지 않는다. 그들은 늘 우리를 감시하는 전자 독수리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유롭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하나님보다 더 무서운 CCTV......

 

***상기 수필은 <2016 고려문학>회지에 발표한 글입니다.

 [수필가  강 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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