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세이

<유월의 가리왕산 산행>

부산갈매기88 2016. 11. 8. 07:15

 

태고 원시림의 비경을 간직한 정선 가리왕산(1,561m). 그 오지의 가리왕산은 주목나무와 이끼류로 유명하다. 산행의 들머리는 장구목이다. 장구목이는 계곡이 장구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구목이 입구에서 장구목이 이끼계곡을 지나 가리왕산 정상까지 4.2km 3시간여, 그리고 하산은 어은골을 지나 매표소까지 6.7km 3시간이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행은 장구목이 입구에서 자드락길을 따라 간다. 왼쪽 계곡으로 허연 속살이 비치는 소폭들이 눈짓을 한다. 졸졸 개울의 합창 소리가 들린다. 심연에서 천국의 음악소리가 들리어 안식을 얻는다. 숲이 뱉어낸 향기에 코를 발름거린다. 숨을 깊이 들이 마신다. 오랜 세월 인간의 발길이 뜸한 곳이라 곰팡내가 코를 자극한다. 그 곰팡내는 이끼 계곡이 새날을 맞이하여 깨어나고 있는 냄새다. 나무다리를 건너서 상류계곡으로 갈수록 계곡 바위에 초록빛으로 뒤덮인 이끼류에 숨이 덜컥 멎는다. 습한 계곡의 정기와 함께 이끼 내음이 콧속에 확 풍겨온다. 그 향에 도회지 속의 네모나고 정형화된 심장소리가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코는 자연스레 킁킁거린다. 수풀의 향에 온몸이 전율의 포물선을 그린다. 자연의 체취와 소리에 온몸이 깨어난다. 와폭 주위의 바위는 촉촉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그곳 이끼는 삶의 색이 진초록이다. 주위 생장 여건에 따라 이끼들은 색깔을 조금씩 달리하고 있다. 이끼계곡의 마력에 빨려들기 시작한다. 연둣빛 이끼바위에 청정심을 찾는다.

 

계곡 이끼와 와폭의 향연에 취하다 다시 등로로 되돌아온다. 등로 옆 고비는 녹색 우산을 거꾸로 세워 둔 것 같다. 파랗게 하늘을 향해 팔들을 곧추세우고 있다. 우산 살대처럼 팔을 벌리고 있어 그 속에 얼굴을 파묻고 싶다. 아니 우묵하여 앉아보고 싶다. 한 마리의 거미라면 그 안에 집을 짓고 싶을지도 모른다. 고비는 등로를 따라 여기저기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개울물소리와 계곡의 연두색 이끼, 가슴을 안을 듯한 고비, 아름드리 주목, 수풀 내음. 그 초록색 본향에서 몸의 세포가 흐물흐물 살아난다.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숨 가쁘게 인생길을 달려 왔던가.

 

산행 들머리에서 50여 분을 오르면 계곡의 초록색 이끼의 속삭임은 마침표를 찍는가 싶다. 이제 본격적인 오름이다. 그때 눈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 있다. 물결무늬 이끼바위다. 그 바위 결을 따라 이끼가 붙어 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바위와 이끼가 동고동락했을까. 강인한 생명력과 끈질긴 착근. 가을이나 겨울이면 이끼 또한 바위에 숨을 죽이지 않았을까. 봄이 되어 비가 내리고 촉촉해지면 포자가 다시 움을 틔우길 얼마나 반복해 왔을까. 바위와 이끼의 동행.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았음을. 우리가 생업터에 날마다 발을 붙이고 살려고 발버둥을 치듯.

 

임도를 지나 조금씩 고도를 높여 정상 부근으로 접근을 하면 아름드리 주목나무 밑동에 시간이 멎는다. 주목은 몇 백 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서 있다.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윗몸은 다 날아가고 없는 놈. 그래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어 서 있는 놈. 또 강풍에 벌러덩 누워 있는 놈. 밑동이 뻥 뚫려 있는 놈. 속살이 세월의 기다림에 까맣게 타버리고 비어 있는 놈. 그 밑동에서 새 생명이 하늘로 뻗어있는 놈. 유달리 바위 위에 걸터앉아 세월을 짓이기는 놈. 흙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놈. 주목은 생명을 하늘로 향하고 속살은 세월의 노래에 더 단단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땅에 영원무궁한 것은 없으니.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 그에 비해 우리 인간은 겨우 당대와 다음세대까지는 영향력이 미치지 않을까. 자연이나 인간이나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임을. 그 후대를 위해 자신의 속살을 주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거늘. 모든 것을 움켜쥐려고만 하는 우리가 아닌가.

 

돌무더기의 가리왕산 정상. 정상은 민둥산이다. 그 민둥산의 허전함을 메우려 하는 듯 운무가 깔려있다. 정상의 변화무쌍한 운무는 40대 여인의 자태다. 여인의 춤사위는 이리저리 비바람에 나부낀다. 얼굴을 부드럽게 휘감기까지 한다. 그래서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 여운을 안고 마항치 삼거리로 내려선다.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박새(꽃) 군락지. 그들은 하얀 면사포를 쓴 여인의 모습들이다. 순박한 여인들이 하얀 머리를 쳐들고 있다. ‘진실’과 ‘명랑’이라는 청순한 꽃말과는 달리 박새는 농약과 살충제의 원료로 쓰인다. 그래도 저 꽃에 묻혀 여인(?)의 체취를 느끼고 싶다. 아름다운 경치에 잠들고 싶은지도 모른다.

 

미끄러운 된비알을 간신히 등로 옆 밧줄에 의지하여 발걸음을 뗀다. 어은골 임도를 지나 내려서면 어은골 이끼계곡이다. 하산로 왼쪽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개울을 쭈뼛거려 본다. 개울이 은빛 손짓을 한다. 듬성듬성 보이는 계곡의 바위마다 진초록 이끼가 생명을 토해 낸다. 거멓한 바위에 초록색 옷이 입혀져 있다. 그 옷의 질박함에 마음이 넉넉해진다. 그 초록 옷 한 벌에 만족하는 바위들. 안분지족일까. 개울에 발을 담근다. 피로가 녹아내린다. 자연이 가슴에 안긴다. 정기가 온몸으로 전해진다. 가리왕산의 연둣빛 계곡이끼가 내 몸에 덮인다. 자연과 내가 하나 된다. 내 마음이 제 자리를 찾는다. 원시림의 가리왕산 산행을 통해서 넉넉한 안분지족의 의미를 깨닫고 간다. 하얀 물보라가 소폭마다 오늘을 노래하고 있다. 골짜기 개울을 따라 삼한시대 맥국 갈왕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글: 부산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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