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부산백산산악회 제 298차 정기산행: 여수 봉황산(460m), 금오산(323m) ◈(2016. 12. 10. 토)

부산갈매기88 2016. 12. 14. 17:57

 

 

◎산행지: 여수 봉황산(460m), 금오산(323m)

★산행일시: 2016. 12. 10. 토. 맑음

☢산행 참석자: 부산백산산악회원 및 게스트 포함 44명(영원한 부산, 금호지, 동무, 붉은 노을, 와석, 에포케, 옥여사2, 동방, 효리, 은수, 산들바람, 호두, 수정, 슬로우, 퀵, 차돌이, 새콤달콤, 팅커벨, 동해, 봄산, 유유산속, 피네, 미산, 흔적, 블랙이글, 인선, 청파, 청송, 가연, 아미, 종현, 일식, 방랑자, 달빛, 그림자, 이래, 산하, 운해, 와니, 부산갈매기 외)

 

●산행 코스: 죽포리 느티나무~봉황산~394봉~312봉~흔들바위~율림치~금오산~향일암~임포 주차장

 

 

◔시간대별 산행코스:

11:12 느티나무 출발

11:23 들머리(봉황산 입구)

11:39 임도

12:20 봉황산(460m)

12:24 전망대

12:28 이정표(죽포 정상/돌산 종주(향일암))

12:36 임도(방화선)

12:50 임도(식사 26분)

13:12 이정표(봉황산 정상 1km/율림치 2.5km)

13:40 흔들바위

13:54 산불초소

14:07 율림치

14:43 금오산(323m)

15:17 삼거리

15:36 전망대

16:05 향일암

16:38 임포 주차장

 

★산행 시간(후미 기준): 5시간 26분(점심식사 26분, 기타 휴식 31분)

                                   <순수 산행시간: 4시간 29분>

◍산행거리: 10.7km(GPS)

◎교통편: 뉴부산고속 전세버스

 

 

▶산행 tip: 이번 백산산악회 제 298차 정기산행은 여수의 봉황산(460m)과 금오산(323m)을 찾아갔다. 돌산도가 1984년 돌산대교로 육지와 연결됨에 따라 섬 같지 않은 섬이 되었는데, 산행의 시작점은 죽포리 느티나무에서 시작을 하여 봉황산을 오르고, 육림치에서 한 숨을 돌린 후 금오산자락에서 급경사를 내려간다. 그리고 금오봉 주위의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조망과 멀리 대율마을이 있는 밤섬의 풍경에 넋이 나간다. 그 여운을 안고 향일암으로 내려서는 중간의 기암괴석에 다시 한 번 탄성을 지른다. 파란 바다, 파란 하늘, 그리고 반짝거리는 윤슬. 날씨마저 우리 편이 되어 줄 때 감동의 물결은 가슴을 출렁거린다. 향일암에 들러 그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히 돌아서 나오며 임포 주차장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5시간 20여 분 10.7km를 사뿐히 걷고, 바다와 산과 산꾼의 대화에 하루해가 저물었음을 아쉬워한다. 여행 속의 산행이었다.

 

♣죽포리의 느티나무가 마을 지킴이?

전라남도의 자료에 의하면 돌산의 명칭은 백제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돌산현(突山縣)’, 통일신라시대에는 ‘여산현(廬山縣)’이라 불렸다. 일설에 의하면 섬의 여러 산에 돌이 많이 쌓여 있어 ‘돌산’이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뱃길 따라 남해안의 중서부를 가다보면 갑자기 큰 산이 나타나는 곳 또는 큰 산이 쑥 나오는 곳이라 하여 ‘돌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여산현(廬山縣)이라는 명칭에서 ‘오두막 여(廬)’라는 한자가 쓰인 것은 해안에 위치한 섬 지방의 특성상 작은 집들이 많아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추정한다.

 

봉황산의 산행의 시작은 죽포리 느티나무다. 그 느티나무 옆에는 죽포리보건지소가 있다. 그 느티나무의 수령은 5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죽포리(竹圃里)의 본래 이름은 큰 포구란 뜻으로 불렀던 ‘댓[大]자’이었으나 이를 한자로 기록하면서 대를 ‘죽(竹)’으로 표현하여 ‘죽포(竹浦)’가 되었다. 이후 방죽포에 방죽을 쌓아서 이 일대를 농토로 만들면서, 한자 ‘포(浦)’를 밭이란 뜻을 가진 ‘포(圃)’ 자로 고쳐 적어 지금의 ‘죽포리(竹圃里)’가 되었다고 한다(전라남도 해양항만과 자료 참조).

 

네 그루 느티나무 옆에서 일행은 산행채비를 한다. 그리고 나무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은 후 벌판을 가로질러 봉황산 들머리로 향한다. 느티나무 옆에 화장실이 있지만 여자 화장실만 개방이 되고, 남자화장실의 문은 잠겨 있다. 이걸 어쩌누? 민생고를 해결하고 느티나무 앞으로 오니 이미 일행은 단체사진을 찍고 신바람 나게 마을을 지나가고 있다. 에고~ 단체사진에 빠져보기는 처음이다. 지나가는 길손에게 앙칼지게 허연 이빨을 드러내놓고 짖어대는 견공의 모습을 보니 이 동네의 인심이 이렇게 흉악하단 말인가. 아님 밥을 제때 못 얻어먹었나......

 

길옆 밭에는 갓을 여기저기 심어놓고 보온을 위해 비닐로 덮어 놓았다. ‘여수 돌산’하면 갓김치가 저절로 머리에 떠오른다. 그런데 갓이 밭 가운데 있지 않고 길옆 둑에 머리를 내밀고 있다. 주인에게 버림을 받았는가. 글쎄 그 놈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하는 일식님, 소여물 먹듯 갓 이파리를 뜯어 입에 넣어 잘금잘금 씹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아주 달작지근하네”하고 말한다. 얼굴 표정에 미소가 흐르는 것으로 보아서 맛있게 느껴진다. 옆에 있던 종현님이 자기에게도 조금 달라고 채근한다. 뭐 별 것도 아닌 것이지만 옆에 누군가 그럴 듯하면 마음이 동하나 보다. 그렇게 장난기가 발동을 하면서 히히낭낭 하며 산행들머리에 이른다. ‘봉황산 등산로 봉황산 입구’ 이정표가 제대로 왔음을 알려 준다. 마을 느티나무에서 출발하여 여기까지 10여 분 걸렸다. 실질적인 산행 들머리라 일행은 상의를 챙겨서 배낭에 넣고 있다.

 

♣육산의 부드러움도 그 나름

들머리에서 아주 완만하게 산행이 시작된다. 부드러운 흙길이라 발걸음이 스폰지 위를 밟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등로 위에 구르는 낙엽을 가볍게 오르는 기분 또한 살갑다. 15분여를 오르니 발가스름한 단풍나무가 부채를 흔들 듯 서 있다. 햇빛을 받아서 더 자태가 발갛다. 그 화사한 단풍잎을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참새 방앗간을 못 지나치지 않는가. 두세 명씩 키 높이를 맞추어 본다. 입가에 미소가 흐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 행복이란 거창하게 찾아오는 것이 아님을. 거기서 조금 오르니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를 가로질러 봉황산 방향으로 오른다. 서서히 비탈길에 발걸음은 무디어져 간다. 임도에서 40여 분을 조금씩 가파르게 올라가야 봉황산 정상에 이를 수가 있다. 이곳 등로의 특색은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계단과 계단 사이를 1미터쯤 멀찍이 띄어 놓아 지그재그로 오르게 되어 있다. 그만큼 경사가 심하지 않다는 뜻도 있고, 돌이 이 주위에 많지 않다는 것을 단정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봉황산 정상이 가까이 갈수록 경사가 더 심해진다. 이제 다 왔는가 싶어 보면 아니다. 이제 봉황산 능선에 근접한 것이다. 정상은 늘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산은 늘 뭔가 여운을 남긴다. 빨리 가려고만 하지 말라고. 이파리가 진 나무, 돌 한 개의 의미도 존재의 이유를 찾아보고 가라고 한다. 등산로 위의 장애물 같은 돌 몇 개도 거기에 버티고 앉아있는 이유가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늘 그 산을 갔다 왔다고만 말하지 그 산 어디, 어느 구석에 어떤 모습의 나무나 돌, 또 꽃과 스쳐가는 바람소리, 자연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연에 숨겨진 보석을 찾지 않고, 자연의 전체 윤곽만 그리다 하산을 하고 마는 것이다. 100대 명산도 좋고 300대 명산도 다 좋다.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듯 모든 산들의 산세도 다 제각각이다. 사람의 지문이 다르듯 산의 자태와 풍미가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산에 들어가면 오감을 총 동원하여 느껴야 하는 것이다.

 

봉황산 입구 들머리에서 50여 분 걸러서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일행과 중간에 과일을 먹으며 쉬긴 했지만, 그 시간은 행복을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정상이 초라하다. 모 산악회에서 1999년에 세운 정상목이 전부다. 그것도 자기네 산악회 공적을 내세우기 위해 정면에 산악회 이름이 잘 보이게 세워 놓았다. 이게 봉황산 정상이란 말인가. 봉황이 아니고 와작도 아니다. 초라하게 세운 정상목은 봉황산을 깃털 빠진 참새와 같이 만들어 놓았다. 여수시청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상석을 세울 여력이 안 되어서 안 세운 것은 아닐 테고. 봉황산을 와작산(?)으로 만들어 놓고 있으니 참 많이 실망스럽다. 사진을 찍으려니 역광이라 눈이 부시고, 정상목 자체도 각이 져 있어서 ‘봉황산’ 글씨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카메라 각도를 맞춘다고 손이 바동거려진다. 조금 떨어진 전망대에서 일행의 웃음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치니 마음이 급해진다.

 

♣도대체 전국에 봉황산이 몇 개여?

예로부터 민간신앙 및 도교에서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열 가지 사물, 해, 산, 돌, 구름(또는 달),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등 십장생이라 부른다. 이러한 불사를 표상하는 것으로 신선사상에서 유래하였다. 그런데 봉황은 새 중의 으뜸으로 고귀하고 상서로움으로 여겨서 그 문양이 건축 공예에 많이 활용되었다. 또 전국 지명 중에 이 봉황이라는 많이 나오고 있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국에 봉황산이라는 이름이 19개나 존재한다. 영주 봉황산(818m), 상주 봉황산(741m), 홍천 봉황산(648m), 제천 봉황산(510m), 여수 봉황산(460m), 의령 봉황산(384m), 영덕 봉황산(271m), 보령 봉황산(257m), 담양/순창 봉황산(236m), 고흥 봉황산(199m), 충주 봉황산(150m), 삼척 봉황산(147m), 김제 봉황산(100m), 부여 봉황산(70m), 그리고 공주에 2개, 논산에 3개 등. 야트막한 뒷동산까지 봉황산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우리 선조들은 얼마나 봉황의 상서로움에 젖어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봉황산 전망대는 봉황의 몸통인가?

봉황산의 실질적인 정상은 전망대가 위치한 곳이다. 그곳이 정상 부분이요 몸통 부분이다. 덱 시설의 전망대에 앞서간 일행이 동서남의 삼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동쪽을 조망하면 우리가 출발한 죽포리 느티나무 왼쪽의 산이 수죽산(300m)이고, 오른쪽 해안에 가까운 산이 본산(276m)이다. 그리고 죽포리에 저수지가 하나 내려다보인다. 그것이 승월 저수지이고, 남쪽으로 비스듬히 넘어다 보이는 것은 밤섬이다. 또 가야할 능선에는 여기저기 쭉쭉 길게 그어진 생채기 난 임도가 보인다.

 

봉황산 전망대에서 단체가 어우러져 사진을 찍고 한바탕 웃음꽃도 피운다. 이게 산행의 즐거움이요. 마음의 힐링이다. 또 마음의 다이어트를 하는 시간이다. 늘 자신의 삶에 짓눌리어 마음의 짐을 껴안고 살아간다. 그게 심하게 누적이 되면 병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서 마음 맞는 사람끼리 웃고 떠들다 보면 저절로 마음의 리모델링이 된다. 사람은 사람을 그리워하도록 조물주가 만들어 놓았나 보다. 그래서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처음 산행에 참가한 산꾼이라면 그런 분위기에 녹아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하기에 소외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그 전망대에서 7~8분을 살짝 내려서면 임도가 나온다. 임도에 내려서기 전 오랜만에 온 봄산님과 유유산속님 부부와 도란도란 이야기도 한다. 그 임도는 산불방화선이다. 그런데 임도는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다. 도대체 어떻게 능선을 따라 시멘트 포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 안일한 생각으로 방화선을 만든 것 같다. 시멘트 포장도로이기에 불이 났을 때 소방차의 접근은 빠를지 모르지만, 산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지. 그 임도 위에 깔린 낙엽이 시멘트 포장도로를 위장해 주고 있다. 그 임도를 따라 5분여 진행한 지점에서 앞서간 일행이 식사를 하고 있다. 오늘 첫산행을 한 산꾼 세 사람은 벌써 식사를 끝내고 한쪽 옆으로 피해서 앉아 있다. 함께 식사를 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멋쩍게 앉아 있다. 기름과 물처럼.

 

♣금오산(거무산)으로 가는 아기자기 능선길

오늘 점심은 청송님이 내 몫까지 도시락을 싸 온 탓에 잘 먹었다. 여기까지 내가 짊어지고 온다고 조금 고생이 되었지만 그 정도의 수고야 음식을 만든 수고에 비하면 약과 먹기다. 일행과 함께 오순도순 먹는 재미도 산행 중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나누는 즐거움이 인간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든다.

 

일행이 주는 따끈따끈한 커피까지 마셨으니 최상의 기분이다. 식사한 자리에서 100여 미터 가지 않아 이정표(봉황산 정상 1km/율림치 2.5km)를 만난다. 대략 여기서 율림치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게 될 것을 예상한다. 바로 진행을 하면 흔들바위로 오르는 능선이고, 임도는 오른쪽으로 나 있다. 그래서 흔들바위 방향으로 완만한 비탈길을 오른다. 낙엽이 등로에 수북이 쌓여 있어서 일행 셋과 함께 오른발을 내밀어 사진을 찍어보는 장난도 해본다. 그렇게 힘 들이지 않아도 걸을 수 있는 산책로다.

 

어느덧 대율마을과 밤섬이 내려다보이는 흔들바위까지 왔다. 앞서간 일행이 전망바위와 흔들바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웃을 수 있는 여유. 입술의 도끼를 내려놓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다. 나이가 들수록 웃을 일이 적어지고, 웃음이 잘 안 나오기 마련인데 일행과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정신에 무지개칠을 하는 것과 같다. 흔들바위는 아무리 밀어보아도 꿈쩍도 않는다. 그래도 장난기가 발동하여 일행은 열심히 밀어보는 시늉을 한다. 그런데 누가 이름을 갖다 붙였는지는 몰라도 ‘흔들바위’라기 보다는 ‘햄버거바위’라고 하면 딱 맞을 것 같다. 그 모양이 영락없는 햄버거다.

 

그 흔들바위에서 10여 분 능선길을 따라가게 되면 산불초소가 나온다. 초소 안에는 산불을 감시하기 위해 감시인이 오가는 산꾼을 주시하고 있다. 그 초소를 지나 조금만 가면 율림치 능선에 풍력발전기의 대형 날개가 동쪽과 서쪽에 1기씩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바람은 잠을 자고 있어서 날개는 갈 길을 잃고 있다. 일행은 그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부산하다. 그리고 율림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바위에 올라서서 포즈를 취한다. 시간의 족적을 남기기 위해 멈춰 선다. 부부는 함께해서 좋고, 또 혼자는 외로워 둘씩 맞춰 시간의 궤적을 그린다. 이제 이 길은 일생에 마지막 걷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율림치 산행 안내판 앞에서 온 길과 가야 할 길을 확인해 본다. 시작점에서 여기까지 6km 정도 걸어왔나 보다. 율림치는 동쪽 육림리와 서쪽 금성리를 오가는 고개다. 율림치를 순수한 우리말로 하면 밤숲재가 되지 않을까. 그 순수한 우리말들이 일제 식민지시대를 지나면서 한자화 되어 요상하게 변한 것들이 정말 많다. 육림치에서 약간 비탈길을 오르니 길옆에 억새가 허연 수염을 늘어뜨리고 흐드러지게 만추를 노래하고 있다. 그곳은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는 아늑한 곳이라 아직 억새의 자태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행은 그 억새와 친구가 된다. 자연은 우리의 억센 마음을 부드럽게 바꾸는 요정 같다. 이제 금오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된비알이다.

 

♣금오산이 왜 이리 많은 거여~~!!

금오산(323m) 정상석은 산 높이만큼이나 나지막하다. 봉황산은 정상석도 없었는데, 그나마 여기는 작지만 정상석은 있다. 서쪽에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옆 사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사진의 구도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 그림자 좀 치우라고 아우성이다.

 

전국의 금오산이라는 동명이산(同名異山)은 8개나 된다. <한국의 산하>에서는 5개로 구미 금오산(977m), 하동 금오산(849m), 밀양/양산의 금오산(766m), 경주 남산의 금오산(468m), 여수 금오산(323m)을 꼽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산하>에서는 3개의 산을 빠뜨리고 있다. 2016년 11월 12일 하동 금오산 산행기에서 언급하였지만,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3개가 더 존재하는데, 영천 금오산(412m), 예산 금오산(234m), 포항 금오산(230m)이다. 그리고 화순 금오산(현 용암산 544m)을 포함한다면 4개가 더 존재하여 동명이산은 9개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여수 금오산, 하동 금오산, 경주 금오산은 큰자라 오(鰲)자의 금오산()이고, 구미 금오산, 양산 금오산은 까마귀 오(烏)자의 금오산(金烏山)으로 표기한다.

 

금오산에서 인증샷을 한 후 일행들은 잰걸음으로 향일암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금오산에서 남쪽 금오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급경사를 내려가야 한다. 그런 다음 약간 치고 올라가면 전망바위가 나온다. 그 전망바위에서 대율마을의 포구와 밤섬이 내려다보인다. 그 전망바위에서 밤섬을 바라보면 정말 밤 모양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사방이 트이어 시원스레 조망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일행의 사진 찍는 시간이 다소 길어진다. 그리고 거기서 5분정도 이동하면 덱 시설이 있는 전망대다.

 

♣거북등을 밟고 남해바다를 굽어보니

덱 시설이 있는 전망대에서 멀리 하얀 물결을 가르며 지나가는 선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발밑의 바위는 온통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다. 금오산()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 옛날 바다거북이들이 뭍으로 올라와 바위 위에서 다 죽은 듯 바위는 거북등 모양을 하고 있었으니. 신기하고 묘한 느낌이 든다. 여기저기 기암괴석의 암릉이 펼쳐진다. 일행은 암릉 위에 올라서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동방님이 주점에 앉아 막걸리를 한 잔 하자고 어디에 있느냐고 전화 연락이 온다. 아직 향일암도 도착하지 못하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으니. 계단 옆의 솟대바위가 인상적이고, 가마니 모양 절벽에 서 있는 바위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봉황산의 육산에서 능선길을 따라 향일암 위의 금오봉에서 골산이 되어 산꾼들의 마음을 붙들어 매니 일행은 암봉 위에 올라가 내려올 줄을 모른다. 향일암 위의 암봉에서 남해 만경창파 속의 경치에 속이 시원해진다.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가 않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행을 채근하여 향일암으로 내려간다.

 

♣마무리가 좋으면 다 좋다.

향일암 입구에서 운해대장님을 비롯한 일행을 만나게 되어 단체 사진 한 장을 찍는데 동참한다. 그리고 암자 왼쪽으로 들어가는 바위굴에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떡국가래 뽑듯 술벙술벙 나온다. 나중에 보니 나오는 길이었으니. 절 안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서 조금 소란스럽다. 얼른 둘러보고 절을 나온다.

 

절 밖 입구에는 건어물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고,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가게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주차장으로 빨리 오라는 무전 때문에 황급히 달려간다. 향일암에서 임포 주차장까지는 20여 분을 걸어가야 했다. 이미 버스 안에는 앞서 온 일행들이 앉아 있다. 그런데 그때 동해님이 조금 전 막걸리를 마시던 주점에서 스틱을 가져 오지 않았다고 한다. 긴급 상황이라 운해님은 다시마과자를 우리 일행에게 팔고 있던 영업맨의 차량을 빌려 타고 그 주점으로 향한다. 꽤 시간이 지나도 돌아 올 기미가 없다. 차 안의 일행은 차가 밀려서 접근을 못해서 늦는 것일까. 아님 아까 그 주점을 못 찾아서 아직 못 오는 것일까 등등 추측이 분분하다.

 

20여 분 가까이 지나서 운해님은 돌아왔지만 스틱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버스가 주차장을 출발해서 10분쯤 가고 있는데 뒤에서 아까 다시마과자를 팔던 영업맨이 클랙슨을 울리어 우리 차를 세우게 한다. 뭔 일인가 했더니 운해님이 산행 명단이 적힌 쪽지를 그 승용차에 두고 내린 것이다. 그 영업맨이 그 명단쪽지를 주기 위해 우리 차를 따라 온 것이다. 아까 그 차를 빌린 댓가로 과자떨이를 해 주었는데, 그 가치를 한 것이다. 어디 이 땅에 공짜가 있던가. 그래도 풋풋한 시골 인심이 살아 있음에. 그리고 타지에서 아름다운 도움을 받고 보니 그 고장이 더 이쁘게 보인다.

 

뒤풀이는 돌산읍내에 있는 <녹차간장게장 한식뷔페(T: 061-644-8922)>에서 맛있게 먹었다. 아름다운 감동을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건배로 힘을 모두었다. 여행 속의 산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백산의 전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 부산백산산악회장/수필가/산행 작가>

 

산행지도

 

♣산행사진

 

 

 

 

 

 

 

 

 

 

 

 

 

 

 

 

 

 

 

 

▼송월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