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부산백산산악회 제 299차 정기 송년산행: 합천 허굴산(682m) ◈(2016. 12. 17.토)

부산갈매기88 2016. 12. 23. 11:24

 

◎산행지: 합천 허굴산(682m)

★산행일시: 2016. 12. 17. 토. 맑음

☢산행 참석자: 부산백산산악회원 51명(솔뫼, 혜영, 금호지, 동무, 동방, 스마트, 윤슬, 옥여사2, 슬로우, 퀵, 미산, 피네, 흔적, 은수, 현진, 형제, 부용, 호두, 팅커벨, 가연, 산들바람, 가을바람, 청림, 방랑자, 이상호, 블랙이글, 야초, 수피아, 태영, 숙이, 걍 좋아, 파앗, 일식, 붉은 노을, 군자대로, 산하, 봄산, 유유산속, 자연지기, 앞마당, 신우, 종현, 새콤달콤, 인선, 청송, 산오디, 운해, 와니, 부산갈매기 외)

 

 

●산행 코스: 장단교(다리목)~장군재~용바위~허굴산 정상~허굴산성터~허굴산 농장~택계~황계폭포~버스 정류장

 

 

◔시간대별 산행코스:

10:23 장단교(다리목) 출발

10:30 안동권씨묘

10:54 석문

11:14 흔들바위

12:06 용바위

12:10 허굴산 정상석

12:25 허굴산 정상스텐(식사 25분)

13:07 허굴산성터

14:07 농장 임도

14:19 농장

14:39 택계3교

14:42 택계

14:50 묘지

14:57 황계폭포

15:22 버스 정류장

 

★산행 시간(후미 기준): 4시간 59분(점심식사 25분, 기타 휴식 31분)

                                      <순수 산행시간: 4시간 03분>

◍산행거리: 7.7km(GPS)

◎교통편: 뉴부산고속 전세버스

 

▶산행 tip: 백산의 제 299차 정기산행은 허굴산(682m)을 다녀왔다. 백산산악회에서의 허굴산 산행은 2009. 12. 12에 허굴산과 금성산을 연계하여 산행을 한 바 있다. 그래서 무려 7년 만에 재도전을 하였는데, 장단교에서 출발하여 용바위와 허굴산 정상을 오른 후, 정상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허굴산성터와 택계를 거쳐 황계폭포에서 마무리하는 송년 산행을 하고 왔다. 전체 4시간 59분, 7.7km 암봉과 육산을 즐기는 산행을 하고 인근의 식당에서 한우고기로 뒤풀이를 하였다.

 

장단교에서 허굴산 정상 가기까지 기암괴석, 암봉의 매력에 푹 빠지고, 하산은 육산의 부드러움으로 갈무리를 하면서 황계폭포에서 격정의 감동을 끌어안았다. 송년 산행의 진수를 맛본 후 한우고기로 입을 즐겁게 한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51명이나 참가하여 역대 백산 기록을 갱신하였다.

 

 

♣대병 삼산의 맏형 허굴산

대병 삼산은 금성산(봉화산 609m), 악견산(634m), 허굴산(682m)인데 이 허굴산이 삼산의 맏형이다. 그런데 허굴산의 유래에 대해서 세 가지 설이 있다. (1)산 밑 길목에서 바라보면 산 중턱 굴 안에서 부처님이 앉아 있는 것 같아 바랑을 벗어놓고 올라가 보니 부처님은 없고, 헛굴만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2)이 산봉우리에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그리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큰 굴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3)이 산 북쪽에 베틀굴이라는 큰 굴이 천여 년 전부터 내려오는데 이 굴이 허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등이 있다.

 

허굴산 산행의 들머리는 허굴산 서쪽의 양리나 송정, 남쪽의 부처고개와 산두, 북쪽의 청강사나 땅골 등이 있지만, 그 중에서 장단리 장단교에서 시작하여 황계폭포 방향으로 하산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기암의 보물이 숨겨있는 아기자기한 능선길

일단 농협창고의 너른 마당에 하차를 하여 산행채비와 준비운동을 한다. 농협창고에서 장단교까지는 200미터쯤 되지만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그리고 장단교 건너기 전에 단체 인증샷을 한다. 뒤편으로 올려다 보이는 산이 오늘 도전해야 할 허굴산이다. 정상부근의 대머리처럼 까진 암봉이 그렇게 녹록치 않은 산행임을 암시한다. 장단교를 건너 조금 가면 [허굴산 등산로 정상 2.4km]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좌측 수로를 따라 가게 되면 곧바로 비탈길이 나타난다. 비탈길은 얼마간 목책계단으로 되어 있다. 인원이 많은 관계로 두꺼비 걸음이 시작된다. 그 목책계단을 올라서면 밤나무숲 능선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금 위에 안동권씨 묘역이 나온다. 그런대로 완만한 능선길이기에 콧노래가 나온다.

 

 

초입에서 15분여를 오르면 큰 바위 틈새로 길이 나 있어 조심스럽게 오른다. 첫 번째 나오는 바위 전망대에서 바로 아래로 논밭이 보이고, 그 위 좌측에 금성산(609m), 그리고 그 우측으로 악견산(634m)이 비스듬히 올려다 보인다. 날씨가 좋아서 멀리까지 볼 수 있어서 좋다. 후미대장을 자처한 앞마당님이 뒤쪽에서 파앗님과 게스트를 챙겨온다고 조금 쳐져서 올라온다. 파앗님의 스틱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나 보다. 전망바위를 지나면 소나무가 우거진 길이 이어지다가 또다시 거암 사이의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비탈길도 나온다. 그렇다고 심한 비탈길은 아니다. 눈 앞에 펼쳐진 요상한 바위는 뇌 형상을 한 [뇌바위] 같기도 하고, 주먹모양을 한 [주먹바위]가 나타난다. 그 위로 [마당바위]가 펼쳐진다. 일행은 [마당바위] 입구에 놓인 [주먹바위] 위에 올라서서 잠시 시공을 초월해 본다. [주먹바위]의 검지는 황매산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능선길 옆의 바위들은 각가지 형상을 이루고 있어서 머릿속으로 ‘저게 무슨 형상일까’ 하는 의문을 안고 걷게 된다.

 

초입에서 30분 정도 오르니 이번에는 석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게 [통천문]일까 하는 기대심리로 지나가본다. 아마 그게 산 정상 부근에 있었다면 [통천문]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 석문은 햇살을 받고 있어서 그 돌문을 지나가면 새로운 세상을 맞는 기분이 든다. 물론 우회로도 있지만, 일부러 일행은 그 돌문을 지나가 본다. 인간에게는 호기심이 작동을 하게 되면 으레 시도해보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느낌이 들기에.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기에 논밭과 마을의 집들은 작은 성냥갑처럼 변해간다. 운해대장님의 고향집도 왼쪽 발아래에서 가물거린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꿈을 꾸고 부산으로 나와서 나름대로 기반을 닦고 희망을 일군 운해님. 이 범상치 않은 허굴산자락 아래에서 일찍이 깨우침이 있었으니 세상의 바른 길을 따라 살려는 기개 있는 모습을 볼 때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 그러하기에 백산에 사람이 모이고 지금의 명품 산악회로 거듭날 수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리더는 포용력과 관용이 있어야 한다. 이 산세와 지형을 보면서 하나씩 의문을 벗겨 본다. 합천과 대병면은 또 어떤 연유로 이루어졌을까?

 

♣협천(陜川)이여 합천(陜川)이여?

조선 태종 13년(1413)에 행정구역 개편시 주가 군으로 강등되면서 합천(陜川)이라 하였다. 합천은 좁은 내라는 뜻으로 이 지역의 산이 많고 들판은 없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좁은 계곡이 많다는 뜻과 부합되는 것으로 풀이 된다. 그러나 1914년 3월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분지를 이루고 있는 초계와 삼가가 합천군으로 편입되면서 좁은 계곡 또는 좁은 내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 하여(세 개의 고을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 합천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한문식 표기 방식은 그대로 존속하나 말할 때나 읽을 때는 ‘합천(陜川)’이라고 한다(합천군청 자료 참조).

 

♣대병면은 또 어떻게 해서 대병면이 되었을까?

합천군 대병면은 1914년 군, 면 통합으로 대평면(大平面)과 병목면(幷木面)을 합치면서 대평면의 대(大)자와 병목면의 병(幷)자를 앞 글자 한 자씩을 따서 대병면(大幷面)으로 개칭한 면이다. 예부터 합천군 대병면에는 암릉과 암봉, 산세, 내와 골짜기들이 천혜비경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삼황삼산(三黃三山)이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즉 삼황(三黃)은 황강, 황매산, 황계폭포이고, 삼산(三山)은 허굴산, 금성산(봉화산), 악견산이다.

 

 

이러한 합천군의 지명을 살펴보게 되면 대병삼산(허굴산, 금성산, 악견산)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백산산악회에서 허굴산과 금성산 산행은 2009. 12. 12에 산행을 하였고, 악견산과 금성산은 2년 전인 2014. 12. 27 송년 산행을 했다. 이제 대병삼산 중에서 하나 남은 허굴산을 오늘 산행하게 되니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다.

 

 

♣퍼즐 바위모형을 찾아서

조금씩 고도가 높아지게 되니 멀리 황매산자락도 보인다. 작년 송년 산행은 감악산과 모산재였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 동안의 송년 산행은 합천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다른 지역보다 운해대장님의 고향이기에 마음 편히 뒤풀이 이벤트를 염두에 둔 탓일지도. 한 해의 마무리 산행을 감동 있게 끝내기 위해서 고뇌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번에 나타나는 바위의 모양은 시골에 어릴 적 보았던 [디딜방아]모양의 바위다. 생긴 것이 영락없는 디딜방아 모양이다. 그게 용케 암벽에 미끄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런 모습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비바람에 깎이었을까. 또 거암 사이를 지나가려고 하면 그 머리 위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바위도 있다. 그것은 호박엿을 가위로 잘라냈을 때의 모양이다. 또 어쩌면 미 해군의 모자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모습을 상상하면서 오르는데 이번에는 [말등바위] 같기도 하고 [기차바위] 같기도 한 암릉이 나타난다. 그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정말 황홀하다. 사방이 트이어 건너편 금성산이 싱그럽게 다가오고, 멀리 황매산까지 눈에 들어온다. 일행들은 그 바위에 교대로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다고 부산을 떤다.

 

이제 건너편에 벼랑 끝에 걸려있는 [흔들바위]가 보인다. 앞서간 일행은 그 바위 옆에서 바위와 친구가 되어있다. 각각의 바위들은 위태롭게 암벽 위에 올려져 있는데, 이제는 그 자리에서 제자리를 잡은 듯하다. 암튼 여기까지 편안하게 올라온 것 같다. 그 흔들바위가 있는 곳은 암릉이고 장소가 넓어서 쉬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거기서 동쪽 건너편에는 기암절벽의 [장군덤]이 보인다. [장군덤]은 그 옛날 장군들이 약수를 마시고 놀았다고 하는 곳이다. 옆에서 운해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하기야 어릴 적 뒷동산인 여기까지 올라와 친구들과 숨바꼭질도 하고 장난을 치며 놀았을 것이다. 공이로 받쳐놓은 바위도 있다. 거암의 무게에 짓눌리어 공이 모양의 받침바위는 세로로 금이 가 있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세상의 무게에 짓눌리어 가슴에 금이 많이 나 있을 터이지만, 안에서 금이 가 있기에 표시만 나지 않을 뿐이다. 제각각 가슴의 금은 실금이 가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골짜기처럼 패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단지 부모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안으로 안으로 삭이며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용바위는 용을 쓰고 올라야 하는겨~?

흔들바위 주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허굴산 정상을 향하여 진행을 한다. 664봉 아래의 솟대바위(돛대바위) 방향으로 접근을 하려면 암벽이 가로막혀 있고, 거암들이 장애물이라 오른쪽의 등산로를 따라 간다. 그 길은 우측으로 우회를 해서 오르면 다소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어딘가 동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앞서간 동방님이 기다려 보지만 운해님과 조우가 안 되어 결국 우회로로 진행을 한다.

 

 

664봉 아래의 서쪽 전망바위는 이제 황매산, 금성산, 악견산, 의룡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금성산과 악견산 사이로 합천호가 살짝 얼굴을 들이민다. 봄 같은 겨울산행의 묘미에 빠져들고 있다. 그 전망바위에 서서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새가 되어본다. 혼자 보다는 너댓 명이 함께 어울려 추억의 시간을 만든다.

 

거기서 조금만 암릉을 타고 오르면 용바위에 접근을 할 수가 있다. 용바위는 용을 쓰고 오른다고 해서 용바위라고 불린다고 하지만, 용을 쓰고 오를 정도의 바위는 아니다. 아마 옛날 전설에 용이 놀다 갔다고 하니까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용바위는 셋으로 나누어진 30여 미터 높이의 바위다. 그 갈라진 틈을 한 번 뛰어넘을 때마다 수명이 10년씩 늘어난다는 이바구도 전해지고 있다. 바위 셋 중 북쪽 바위에 홈이 파여 물이 고인 샘이 있는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 바위에 고인 물은 비가 오지 않을 때 비를 오게 하기 위해 물을 퍼내면 줄어든 물을 채우기 위해 3일 만에 비가 온다고 한다. 또 이 바위주위를 지저분하게 하면 역시 3일 이내에 비가 와서 깨끗이 씻어 놓는다고 한다. 함안군청 자료에 의하면 1982년에도 가뭄이 들어 대병면 양리와 장단 주민들이 용바위에 올라 물을 퍼내고 기우제를 지내니 주민들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비가 내려 효험을 보았다고 한다. 일행은 용바위 위에서 올라가 뻐끔히 벌어진 틈새를 폴짝 뛰어 건너가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두 개의 허굴산 정상석, 어디가 진짜여?

용바위에서 일행은 여전히 모델 놀이를 하고 있다. 허굴산 정상부근의 하이라이트는 용바위일지 모른다. 그러나 산꾼의 속마음은 그게 아니다. 슬슬 노닐다 정상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용바위에서 허굴산 정상은 우측으로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왼쪽의 암봉에 뭐가 있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금호지님과 동무님이 허굴산 정상석을 찾아서 단차가 진 암벽을 타고 내려가고 있다. 그쪽을 주시해보니 소나무 사이에 숨은 듯 허굴산 정상석이 보인다. 허리 높이의 정상석은 한자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곳은 664m인지라 정상석이 서 있을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정상석이 그곳에 세워졌을까?

 

 

정상석 사진을 찍은 후 금호지님은 허굴산 정상으로 바로 올라가버린다. 물론 664봉의 암릉에 자리잡고 사는 자그마한 소나무에 감동을 받아 사진을 찍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 정상부근의 볼만한 경치는 마무리가 된 듯하다. 그때 뭔가를 찾아오는 종현님이 있었으니. 그 정상석을 찾아서 온 것이다. 다시 한 번 1.5m의 암벽을 타고 내려가서 종현님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준다. 산꾼이라면 정상석 사진에 목숨을 거는 이유. 이제 잰걸음으로 허굴산 정상을 향하여 올라간다. 664봉과 허굴산 정상과의 거리는 400여 미터 된다. 그 중간에 암벽을 따라 밧줄이 하나 걸려 있다. 그곳을 지나게 되면 편안한 등로가 정상으로 이어진다.

 

정상 바로 아래에 일행은 점심을 먹을 자리를 펴고 있다. 후미로 간 종현님과 나는 허굴산 정상표지를 껴안고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이 정상 표지는 스텐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두드리면 텅텅 쇠소리가 울린다. 이처럼 초라한 정상 표지판은 처음 본다. 또한 정상석이 두 개인 산은 아마 전국에서도 여기뿐이지 않을까. 19년 전에 세워진 것이기에 볼품이 없다. 글씨는 오랜 세월의 비바람과 사람의 손에 칠이 벗겨지고 있었으니. 합천군이 이 정상석 하나 세우는데 이렇게 인색해서야 되겠나. 게다가 이정표가 제대로 안 되어 있고, 전설이 담긴 보물 같은 바위가 많지만 바위 이름도 제대로 표시가 안 되어 있어서 아쉽다. 지자체는 외래 관광객이나 등산객을 유치하여 농가 소득에 이바지하려고 하지만 기본적인 투자마저도 하지 않고 있으니 책상행정만 할 일이 아니다.

 

♣하산은 갈색 보물을 밟으며

점심식사는 정상 부근에서 세 팀으로 나누어 먹는다. 그런데 선두조가 안 보인다. 정상 부근에서 식사할 자리를 잡으라고 일러주었다고 하는데. 청송님이 오늘 술에 타 먹을 좋은 효소를 들고 왔고, 봄산님은 복분자술을 가지고 왔다고 했는데..... 옆에는 앞마당님이 라면을 끓여대고, 또 다른 장소에서는 청림님이 열심히 라면을 끓이고 있다. 신토불이의 김장김치가 제철이라 맛있다. 와니님이 한 포기를 가져와 손을 쭉쭉 째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야초님은 오늘도 문어숙회를 가지고 와서 일행과 함께 맛있게 먹는다. 게다가 누군가 굴을 가지고 왔으니 제철의 굴회 맛도 천하와 바꿀 수 없다. 점심때 요것조것 먹는 식도락도 산행의 깊은 맛이다.

 

 

25분여의 점심식사 시간은 빠르게도 지나갔다. 이제 하산이다. 하산길은 육산이라 어려운 것은 없다. 산성터에서 산성에 쌓은 너덜을 지나 하산길은 듬성듬성 바위를 구경할 뿐이다. 대부분 편안한 능선길에 큰 부담이 없어서 좋다. 그런데 안부 갈림길에서 전체가 한 번 멈춘 후 곧바로 국제신문 리본을 따라 하산을 하게 된다. 산성터에서 임도까지 1시간 정도 갈색 보물을 밟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때마다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는 국제신문의 리본이 확인시켜 주어서 도움이 컸다. 농장 임도를 따라 택계까지 30여 분을 길을 따라 간다. 그리고 택계 외딴집에서 황계폭포 방향의 대나무숲으로 진행을 하게 된다. 거기서 7~8분여를 가면 묘지가 나오고 물소리가 들리는 비탈길을 6~7분 내려가면 황계폭포가 나온다.

 

♣남명 조식 선생이 예찬한 황계폭포

달아맨 듯 한 줄기 물 은하수처럼 쏟아지니

구르던 돌 어느새 만 섬의 옥돌로 변했구나

내일 아침 여러분들 논 그리 각박하지 않으리

물과 돌 탐내고 또 사람까지도 탐낸다 해서

 

과연 남명 조식 선생이 이 황계폭포를 두고 예찬을 할만 했다. 황계폭포는 합천 8경 중 7경에 드는 것으로 계곡 위쪽 폭포는 높이가 15미터쯤 되는데, 떨어지는 물줄기가 세차다. 그리고 그 아래는 물줄기가 튕겨져 허연 얼음이 얼어 있다. 덱 계단과 전망대를 설치해 둔 탓에 일행은 그 폭포를 배경으로 추억을 담기에 분주하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흐르고, 웃음소리는 폭포의 물소리에 희석이 된다. 늘 자연의 위대함 때문에 감동을 받는다.

 

 

정상에서 여기까지 2시간 가까이 걸어왔는데, 그 하산길의 밋밋함이 한 방에 날아간다. 폭포의 웅장함에 가슴마저 시원해져 온다. 폭포 아래쪽은 분지를 이루고 있어서 물소리가 스피커처럼 울려 퍼진다. 소는 제법 깊은지 시커멓다. 일행이 여기서 사진을 찍는 시간이 길어진다. 하산길은 농장 임도를 따라 왔기에 그렇게 볼거리가 없었다. 그런데 위에서 허연 물줄기가 바로 아래로 뚝 떨어지는 장관을 보게 되었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래쪽에 있는 하단 폭포는 20여 미터의 와폭이다. 높이는 그렇게 높지 않고 조금 비탈진 암벽을 따라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길이 방향으로 하얀 얼음이 얼어 있어서 물소리는 크지 않다. 그 하단폭포 옆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징검다리가 온통 시멘트 칠이라 진한 감동은 오지 않는다. 자연미가 점점 상실되어 가는 것이 아쉽다. 거기서 10분여 걸어 나오게 되면 4시간 59분, 7.7km의 산행은 끝이 난다. 

 

♣아뿔싸 5명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버스 정류장의 하산 지점에 도착해서 운해님이 인원을 체크하니 5명이 행방불명이다. 왠걸 도대체 어디로 하산을 했단 말인가. 분명 다른 하산지점으로 내려갔나 보다. 버스는 부랴부랴 그들을 태우려 30여 분을 달려간다. 허굴산 남쪽에 있는 산두마을로 간다. 산두마을은 버스가 더 이상 달려갈 길이 없다. 산두마을회관 부근에 방랑자님을 포함한 5명의 특공 동지(?)들이 있었으니. 아마 성터 아래의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하산을 했는데 황계 저수지에 막혀서 결국 서쪽으로 진행을 하여 산두방향으로 내려온 것이다. 양쪽 절벽에 가로막혀 개고생을 한 5인. 나름대로 엄청나게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허굴산에 이정표가 제대로 안 되어 있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버스에 오를 때 5인에게 보내는 박수소리가 우렁차다. 월남전에서 살아 돌아 온 전우처럼.

 

 

♣합천의 한우로 뒤풀이를 장식하며

그 산두마을에서 5명을 태운 버스는 합천호 부근으로 20여 분을 달려간다. 영상테마파크 부근의 한우식당 앞에서 차는 멈춘다. 식당 안은 우리를 위해서 식사 준비가 완료되어 있다. 공간이 넓어서 좋다. 음향시설도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먼저 전 회장의 이임사, 신임회장의 축사, 그리고 회장과 부회장 몇 분의 건배 순서가 이어지고 각 테이블마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운다. 백산의 자랑은 끈끈한 우정이다. 가족처럼 친숙하고 사랑이 넘치는 백산이기에 오랜만에 와도 한결 같다. 서로 흉허물이 없이 가족 이상의 관계를 유지해 왔기에 백산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런 구심점 역할을 한 사람은 운해대장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백산의 살림을 도맡아 준 와니님의 노고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 또 부회장님들을 비롯한 운영진의 땀이 응집되어 있었다. 지난 3년을 뒤돌아보니 정기산행에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없이 회장직을 내려놓고 보니 하늘의 도움이 컸다. 그리고 모든 운영진과 회원 여러분의 단합된 힘이 있었기에 산행 때마다 응급환자가 발생하였지만 원만하게 처리되었다.

 

 

지난 3년 동안 회원 여러분의 사랑을 듬뿍 받고 회장직을 내려놓으니 한결 어깨가 가볍다. 뭔가 경직된 근육이 풀어진 듯한 느낌. 내년에는 새로운 동방회장님을 주축으로 백산의 힘이 모아질 것이다. 이제 백산은 전국 어느 산악회에 내어 놓아도 뒤처지지 않고 상위 10% 이내에 들어가는 명품 산악회라고 자부한다. 명품 옷을 걸친다고 해서 명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보아도 명품 산악회답다. 또 명품이기에 명품의 산꾼이 모이게 된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사람들은 모이기 마련이니까. 새해 백산이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산행지도: 지형 및 지명 참조. 코스는 약간 다름.

 

▲▼이 지도는 '특공 5인이 어떻게 해서 산두로 빠지게 되었을까?' 하는 답을 찾기 위해서 올림.

 

♣산행사진

 

 

 

 

 

 

 

 

 

 

 

 

 

 

 

 

 

 

 

 

 

▼주먹바위, 뇌 모양의 바위 같기도 하고~~

 

 

 

▼슬랩구간

 

 

 

 

 

 

 

 

 

 

 

 

 

 

 

 

 

 

 

 

▲▼흔들바위

 

 

 

 

 

 

 

 

▼장군덤

 

 

 

 

 

 

 

 

 

 

 

 

▼솟대바위(돛대바위)

 

 

 

 

 

 

 

▼용바위 틈에서 가슴이 철렁하게 하는 종현님

 

 

 

 

 

 

 

 

▼첫산행의 【걍 좋아】님

 

 

 

 

▲▼664봉에서

 

 

 

 

 

 

 

 

 

 

 

 

 

 

 

 

 

 

 

 

 

 

 

▼안부 길림길

 

 

 

 

 

 

 

▼황계 저수지

 

 

 

 

 

 

 

 

 

 

 

 

 

 

 

 

 

 

 

 

 

 

 

 

 

 

 

 

▼자연정

 

 

 

▼산두마을에서 기다리는 특공 5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