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부산백산산악회 제 295차 정기산행: 하동 금오산(849m) ◈(2016. 11. 12. 토)

부산갈매기88 2016. 11. 18. 10:55

 

◎산행지: 하동 금오산(849m)

★산행일시: 2016. 11. 12. 토. 갬

☢산행 참석자: 부산백산산악회원 및 게스트 포함 40명(금호지, 동무, 윤슬, 파앗, 붉은 노을, 숙이, 솔뫼, 팅커벨, 나무, 동해, 태영, 은수, 현진, 블랙이글, 산행자, 미산, 가을바람, 옥여사2, 새콤달콤, 슬로우, (슬로우)퀵, 피네, 행운이, 갈바람, 해월정, joon, 산들바람, 승학산 붉은 노을, 폭우, 개벌, 와니, 운해, 부산갈매기 외)

●산행 코스: 대송마을~점곡 주차장~금오산~해맞이공원~석굴암~약사암~청소년 수련원~주차장

 

 

◔시간대별 산행코스:

10:46 대송마을 출발

11:09 점곡 주차장

1115 이정표(마애불 2.2km)

11:47 이정표(정상 1.9km/대송입구 1.1km)

12:39 이정표(덕천마을 3.0km)

12:42 마애불

13:01 임도/이정표(금오산 0.1km/덕천마을 3.45km)

13:04 금오산 정상(849m)

13:09 해맞이공원(중식 30분)

13:45 정상 단체 인증샷

13:50 석굴암 이정표(석굴암 700미터 →)

14:13 석굴암

14:54 임도/이정표(정상 2.8km/마애불 2.3km/청소년 수련원 1.0km)

15:10 약사암

15:14 청소년수련원

15:16 주차장

 

★산행 시간(후미 기준): 4시간 30분(점심식사 30분, 기타 휴식 20분)

                                     <순수 산행시간: 3시간 40분>

◍산행거리: 7.5km(GPS)

◎교통편: 신부산 고속투어버스

 

▶산행 tip: 이번 제 295차 정기산행은 하동 금오산을 찾아갔다. 들머리는 대송마을회관이다. 마애불을 거쳐 금오산(소오산) 정상까지는 2시간여 걸린다. 그리고 정상 바로 아래의 해맞이공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석굴암을 거쳐 청소년수련원까지 하산하는 코스로 전체 산행시간은 4시간 30분(중식 30분 포함), 7.5km의 거리를 남해의 다도해를 조망하면서 즐기는 산행이었다.

 

그러나 금오산이 849m 밖에 되지 않지만 실제 표고차이가 800여 미터에 이르기 때문에 허투루 볼 것은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때로는 이렇게 가볍게 즐기는 여행같은 산행도 깊어가는 가을날에 해 볼만 하다.

 

♣도대체 전국에 금오산은 몇 개?

전국의 금오산이라는 동명이산(同名異山)이 <한국의 산하>에서는 5개라고 소개한다. 구미 금오산(977m), 하동 금오산(849m), 밀양/양산의 금오산(766m), 경주 남산의 금오산(468m), 여수 금오산(323m)이다. 하지만 <한국의 산하>에서는 3개의 산을 빠뜨리고 있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3개가 더 존재한다. 화순 금오산(현 용암산 544m), 영천 금오산(412m), 예산 금오산(234m)이다. 그런데 하동 금오산, 여수 금오산, 경주 금오산은 큰 자라 오(鰲)자의 금오산()이고, 구미 금오산, 양산 금오산은 까마귀 오(烏)자의 금오산(金烏山)으로 표기한다. 하동 금오산은 산줄기의 형상이 자라 형상이라 하여 금오산()으로 부르고 있다. 또 옛날에는 노적가리처럼 우뚝 솟아 있다고 하여 소오산이라 불렀다. 

 

 

금오산 높이가 지도에는 875m로 되어 있으나, 백과사전 등에는 849m로 나옴. 실제 GPS로 측정한 높이는 849m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849m가 맞다고 생각함. 

 

♣부드러운 산인 듯하나 얕잡아 볼 수 없는 산

들머리는 대송리 마을회관에서 출발을 한다. 대송리 마을회관에서 남해대교 방향으로 500미터 진행하여 들머리를 잡을 수도 있다. 또 시간을 절약하려면 점곡 소류지 부근의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해도 된다. 그러나 전체 산행시간이 느긋하게 4시간 반(점심시간 포함)에 불과하기에 대송리 마을회관에서 점곡 소류지 주차장까지 25분여 워밍업을 해 두는 것이 좋음을 이후의 산행에서 알게 된다.

 

대송리 마을회관에는 화장실이 있기에 민생고(?)를 해결할 수 가 있다. 산행 채비를 갖추고 마을회관 옆 동네 중간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오른다. 길 옆 한 집에서 발갛게 잘 익은 대봉감을 장대로 걸어 따고 있다. 먹음직스러운 대봉감이 바구니에 담겨져 있다. 그 감나무집 주인은 대봉감을 하나 먹으라고 일행에게 권한다. 일행은 그 감을 받아서 입으로 가져가 덥석 깨문다. 빨간 가을이 입속으로 들어간다. 가을이 녹는다.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보는 우리의 마음도 흐뭇하다. 도회지의 삭막한 인심을 보다가 감 한 개일망정 길손에게 권하는 인심. 그 인심이 살아있어서 아직도 시골스러움이 살아 있기에. 산행의 시작부터 감동이기에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기분이다.

 

마을을 벗어나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올라가면 축산농가의 집 앞에는 성인 주먹만한 유자가 주렁주렁 나무에 매달려 있다. 가을의 전령사가 그곳에서 노오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딱딱한 시멘트벽만 쳐다보다가 살아있는 계절의 길손을 만나게 되니 마음이 풍성해진다. 길을 나선다는 것은 새로운 계절의 변화와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기에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요즘 세태에 국민적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데, 자연의 선물이 위로가 된다. 저들이 주는 평안함, 안락함, 여유로움이 우리를 평화스럽게 만든다.

 

이제 아스팔트 도로가 나와 10여 분을 따라가면 금오산자락이 올려다 보이는 탁 트인 장소가 나타난다. 그 오른쪽에 점곡 소류지가 있다. 그 길은 차량 왕래가 빈빈하지 않아서 단체 인증샷을 찍는데 여유가 있다.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해서 한 무더기가 된다. 오늘은 전체가 빨리 달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산세나 산행거리로 보아서 먼 거리가 아니기에. 그냥 마음 편하게 즐기는 산행이면 되기에. 거기서 100여 미터 진행을 하면 실질적인 산행들머리다. 입석을 하나 세워두었지만 표시나 글귀가 없다. 무언가 표식을 하려고 세워 두었겠지만 미완성이다. 인생은 미완성인가. 그런데 거기서 오른쪽으로 1.5km를 진행하면 철쭉군락지다.

 

대송리 마을회관에서 이곳까지 30여 분 가볍게 걸어 왔기에 몸은 조금 풀리는 듯 하다. 그리고 점곡 소류지 부근의 주차장에서 오르는 길도 10여분 더 경쾌한 기분으로 오를 수가 있다. 이제 좌측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진행을 하면 골짜기로 해서 정상으로 오를 수 있다. 완만하던 비탈길이 점차 된비알로 바뀐다. 목책 계단이 나타나면서부터 허벅지가 뻐근해짐을 느끼게 한다. 일행의 걸음걸이도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차츰 느려져 간다. 갈증이 나는 일행은 목을 축인다고 길옆으로 비켜선다. 점곡 소류지 주차장에서 507봉의 지능선까지 표고차는 350여 미터이지만 피부로 느끼는 강도는 더 세다. 허투루 볼 게 아니다. 실질적으로 이번 산행은 바로 초반전 이 된비알을 올라서면 50% 이상 오른 느낌이다. 점곡 주차장에서 이곳 지능선 갈림길까지 40분 채 걸리지 않아서 오르게 된다. 이정표는 <해맞이 공원 1.9km, 대송입구 1.1km>라고 알려준다. 거기서 5~6분 정도 진행하면 조망 바위가 나타난다. 그래서 이제는 올라온 골짜기와 하동화력발전소에서 뿜어내는 허연 연기도 볼 수가 있다. 오늘은 미세먼지 탓에 시야가 흐릿해서 멀리까지 선명하게 볼 수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이게 산행이여~~

지능선에 올라서면 한결 마음은 가벼워진다. 다도해를 아스라이 조망도 할 수도 있고, 발아래 골짜기의 홍엽이 펼치는 가을 잔치를 볼 수도 있다. 산자락은 갈색 옷으로 갈아입고 있고, 약간의 물감칠을 해 놓아 마음에 평온함을 준다. 녹색일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주위 잎들이 조락하는 나무에서 가을의 서정을 느낀다. 아직 날씨는 따뜻하여 비지땀을 흘리게 한다. 일행은 전망바위에 올라서서 골짜기를 훑어본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경향이 있다. 산행이든지 인생살이든지 그 여정을 돌아보는 것은 인지상정인 것 같다. 507봉 부근의 전망바위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 전망바위에 올라서서 시간의 화석이 된다.

 

금오산 정상까지는 다시 표고차가 350여 미터 나기 때문에 또다시 치고 올라가야 한다. 올라 온 표고차 만큼 정상을 향해서 올라가야 한다. 이곳의 바위들은 거북등처럼 금이 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랜 세월 동안 건기에 견디다 못해 바위가 풍화작용에 의해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다. 반달처럼 생긴 바위, 공룡알이 깨어나기 전의 바위, 삿갓을 씌어 놓은 바위 모양 등 가지가지다. 그 능선길 왼쪽의 통신시설과 능선 중앙으로 마주 올려다 보이는 군부대의 송수신탑에 눈이 자꾸만 간다. 그 시설들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임을 알려주지만, 자연 훼손의 상징물이기에 더 마음이 짠 해지기에.

 

마애불 아래의 갈림길 이정표는 덕천마을 3.0km라고 알려준다. 그 높은 곳에 한 기의 묘가 있었으니. 그 무덤은 아마 군사용 작전도로가 개통된 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거의 800고지 가까운 곳에 무덤이 있었으니까. 그 바로 뒤편에 마애불이 위치해 있다. 마애불은 바위굴 아래 음각으로 새겨진 불상조각으로 높이는 110cm이고, 고려 후기의 불상 양식이라고 한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 290호로 1993년 지정되어 있다. 그 마애불 앞에는 돌탑이 두 개 서 있고, 그 주위는 대나무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공군부대 시설 바로 아래에서 돔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축구공처럼 둥근 모양이 신비스럽게 보인다. 아마 우리의 하늘을 감시하는 기능이 아닐까. 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갈대의 흔들림과 함께 잠시 만추의 서정에 마음이 흔들린다. 일행과 함께 교대로 추억의 앨범을 남긴다. 거기서 정상방향으로 조금 오르면 시멘트 포장된 도로가 나타난다. 이 도로 때문에 일반인들도 해맞이공원에 비박을 하러 온다는 소문이 자자하더니 승용차를 타고 산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정상석은 도로변에서 홀대를 받고, 해맞이 공원은 궁전처럼

임도를 따라 100m를 가면 금오산(소오산) 정상석이 보인다. 배불뚝이 비만형 정상석이다. 정상석을 각 지게 세워 놓았기에 정면에 한자로 金鰲山으로 적혀 있고, 그 오른쪽 모퉁이에 소오산이라 새겨 놓았다. 보통 산에서 보는 정상석 크기나 모양이 아니다. 그 글씨나 정상석이 심오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다른 지자체의 정상석을 너무 잘 해놓아서 그런 탓일까. 산 정상의 공군부대시설에 밀려서 그 아래쪽에 외롭게 놓여 있다. 그 대신 바로 아래의 해맞이공원은 데크 시설에 비박을 할 수 있도록 궁전처럼 잘 꾸며져 있어서 대조적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앞뒤가 안 맞는 글귀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으로 그곳까지 올라와 비박을 하고 아침에 해 뜨는 광경을 조망한다고 한다. 결국 하룻밤을 지새우려면 음식을 조리해 먹어야 한다. 하지만 플래카드에는 취사 금지라고 적어 놓고 있다. 사리에 맞지 않은 글귀를 적어 놓고 버젓이 불법을 저지르는 비박꾼들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지자체는 알고 있으면서 눈을 감아주고 있는 것일까. 왜 지켜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플래카드를 걸어두고 있을까. 시설을 보완해서 양성화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일행들은 해맞이공원 데크에 앉아서 점심을 먹는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섬들은 군데군데 빵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미세먼지에 시야가 흐려져 또렷하지는 앉지만 실루엣으로 다가와 신비스러움을 더해 준다. 이렇게 뿌옇게 흐린 날씨는 사진의 색채가 좋지 않다고 일행 중 한 사람은 일러준다. 여기저기 무리지어 앉아서 점심을 먹으며 토종 요굴트 한 잔을 곁들인다. 누군가 돼지족발과 바지락살 등 맛있는 반찬을 가져와 내어 놓는다. 요산요수의 맛이 여기에 있었으니. 친한 벗과 함께함이 인생의 낙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이해관계가 없는 벗이 더 부담감이 없어서 좋지 않을까. 세상은 어지럽고 요란스러워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도 그런 모양은 하동화력 발전소에서 내뿜는 연기에 불과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제 자리를 잡아 갈 것이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이도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아닌 산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오늘은 이 시간, 이 주어진 시간에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라면 족한 것을.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고 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했다. 또 누군가에 의해서 이 나라는 다스려질 것이고, 세상은 그렇게 또 굴러간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진리처럼.

 

♣경주 석굴암 생각하고 가서는 후회하는겨~~

30여 분 점심을 먹은 후 해맞이공원의 데크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 조망이 혼이 나가서 삼삼오오 사진을 찍기에 분주하다. 단체 사진을 찍지 못했기에 금오산 정상석으로 다시 올라간다. 한 덩어리가 되어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한다. “백산 파이팅~~!!!”을 외친다. 그 외침의 소리가 하늘 저 멀리 사라진다. 우리의 가슴에 열정이 살아난다. 정상석 부근의 억새는 바람에 일렁거린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은 나무가 어디 있을까. 억새의 숨결이 잔잔하게 밀려온다. 어찌 그 하얀 억새의 흔들림에 발걸음을 멈춰 서지 않을 수 있겠는가. 큰 나뭇가지의 흔들림보다 가냘픈 억새의 흔들림이 우리를 더 애잔하게 만든다. 측은지심인가.

 

이제 석굴암 방향으로 내려선다. 석굴암 700미터라고 쓰인 표지석에서 인증샷을 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그 표지석 바로 아래 100미터도 채 못가서 너덜지대가 나온다. 누군가 탑을 여기저기 세워두었다. 사람들은 탑의 돌무더기에 돌을 얹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종교적인 면도 있겠지만 그곳에 소원을 비는 마음으로 소원을 쌓아두고 가는지도 모른다. 소원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너덜지대를 지나면 평안한 육산의 산행이 시작된다. 너덜지대에서 10여 분 내려가지 않아서 석굴암을 만나게 된다. 조그마한 암자다. 돌담에 가려진 석굴암. 암자가 있기에 물을 얻을 수가 있다. 산 어딘가에서 물이 나오는지 플라스틱통에 물이 가득 고여 있고, 배관 줄기를 따라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일행은 한 바가지씩 퍼서 목을 축인다. 그리고 암자 안쪽의 법당에 갔다 오기도 한다. 경주의 석굴암을 생각한 탓에 많은 실망감을 느낀다. 조그마한 석굴로 된 암자라고 이해를 하면 그렇게 실망할 것은 없다. 한 모금의 물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다면 여기 온 의미를 깨닫고 가는 것이다. 이 지역은 너덜지대로 그런지 돌로 담을 쌓아 두었다.

 

 

♣석굴암과 하산

석굴암에서 약사암까지는 50분 정도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야 한다. 석굴암에서 30여 분을 내려가면 개울이 나타난다. 그 개울 못 미쳐서 대나무 숲과 무속인들이 굿을 하는 성황당이 나타난다. 개울에 이르면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하얀 물줄기에 눈은 골짜기로 향한다. 시원함이 전해져 온다. 낙엽도 함께 떠내려간다. 그 개울물에 우리의 욕심도 씻어내었으면 한다. 이 계곡에 암반이 크게 형성되어 있어서 보존할 가치를 느낀다. 함께 걷던 나무님이 일본에서는 이런 곳을 천연기념물로 보존한다고 말한다. 더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아직 골짜기에는 노오란 잎들이 가을 색채를 한껏 뽐내고 있다.

 

이제 길은 넓은 임도로 바뀐다. 마애불까지 새로운 임도를 건설한다고 산자락이 파헤쳐지고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계속 편안함과 개발이익을 위해서 산은 생채기가 나고 있다. 최근 하동 금오산의 케이블카를 2018년 완공 목표로 청소년 수련원 부근에서 금오산 정상 부근으로 연결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편안한 임도를 만나게 되어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앞서 간 일행은 약사암이 있는 소류지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청소년수련원의 주차장에 도착한 일행들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한다고 부산하다. 아직 물이 차갑지 않아서 개울물에 머리를 감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해서 산행은 끝이 났다.

 

♣충렬사와 뒤풀이

우리는 남해대교를 건너 충렬사로 향한다. 기존 남해대교 옆에는 새로운 제 2의 남해대교 공사가 진행 중인 것을 볼 수 있다. 충렬사 앞에서 하차하여 25분여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충렬사를 돌아본다. 충렬사 안에는 단풍나무들이 발갛게 옷을 바꿔 입고 있어서 일행은 그 옆에서 서서 사진을 찍기에 분주하다.

 

 

남해대교 아래 노량포구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 남해 충렬사(忠烈祠)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1598. 11. 19)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충렬사에는 1604년에 선무공신 1등으로 서훈되고 덕풍부원군, 좌의정의 직위가 내려지고, 1613년에는 영의정으로 책봉된 충무공의 구국충정의 얼이 서려 있다.남해 충렬사는 통영 충렬사와 함께 ‘충렬’이라는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조선시대 인조 임금 때 지어졌다.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의 시신은 이락사에 최초로 안치되었다가 그해 이곳 남해 충렬사로 이장, 안치되었다. 시신을 충청남도 아산으로 운구하기 전에 3개월간 이곳 가묘자리에 안치했다. 1599년 2월 11일 유해가 충렬사에서 군영지인 전라도 고금도를 거쳐 아산 현충사로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1663년 남해 충렬사는 통영 충렬사와 함께 현종 임금이 친필로 써서 내려준 ‘충렬사’ 현판을 받게 되었다.

 

1726년에 이곳에 노량서원을 세웠는데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서원은 철거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향사 윤기섭과 고준홍 등이 모여 조직한 ‘보존회’의 기금으로 사우를 건립했다. 이들이 사재를 털어 모은 자금으로 사당을 새로 짓고 제사를 지내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충렬사는 1965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써 준 ‘충렬사’와 ‘보천욕일(補天浴日 하늘을 깁고 해를 목욕시킨다는 뜻으로 극히 큰 공적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이라는 액자 현판을 달았다.

 

 

뒤풀이는 충렬사 부근의 경북횟집으로 가서 매운탕으로 했다. 전체가 식당을 가득 메우고 앉아서 끈끈한 우정의 잔을 높이 들었다. 이 좋은 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위해 건배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깊어가는 가을날, 여행 같은 산행이었다. 백산의 우정과 사랑은 깊어지고, 그 열정과 에너지는 가정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믿음의 산악회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가 건강해야 가정과 사회, 국가에 더 이바지할 수 있다. 건강이 국력이다. 산꾼의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백산을 위하여!!!"

 

 

♣산행지도: 들머리는 대송마을회관이기에 조금 다름.

♣산행사진

 

 

 

 

 

 

 

 

 

 

 

▼점곡 소류지

 

 

▼점곡 주차장 옆 초입

 

 

 

 

 

▼지능선에 올라서서: 미산님/동해님/가리이끼님(강해영)

▼joon님,/나무님/팅커벨님/태영 부회장님

 

 

 

 

 

 

 

 

 

▼마애불

 

 

 

 

▼가을바람님: 가을바람이 붑니꺼?

 

▼은수 부회장님/행운이님/현진님

 

 

 

▼임도에 올라서서

▼태영 부회장님

▼갈바람님

▼산행자님: 백산에서의 첫산행 기분이 어떠하신지요?

▼행운이님

▼피네 부회장님

▼숙이님과 낭군님

 

▼옥여사2님

 

 

▼해맞이공원 식사

 

 

 

 

 

 

 

▼금호지님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석굴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