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낚시광 헤밍웨이. 네 명의 아내가 바뀔 때마다 새작품...4명의 여성이 준 영감

부산갈매기88 2018. 7. 2. 17:35

낚시광 헤밍웨이의 쿠바

 

헤망웨이는 쿠바를 무척 사랑해, 미국과의 국교 단절로 어쩔 수 없이 쿠바를 떠나야 하자 크게 상심했다. 사진은 쿠바 수도 아바나의 골목길.
미국 대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사진)는 시카고 인근 오크파크에서 태어났다. 사냥과 낚시를 가르쳐줬던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는 평생 불화했다. 아버지가 자살하자 그는 어머니와의 인연을 끊었다.


고교 졸업 후 신문사 기자가 돼 간결하고 정확한 문체를 익힌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려 이탈리아로 가지만 권투를 하다 다친 눈 때문에 입대하지 못한다. 적십자 운전요원으로 일하다 부상을 당해 입원한 병원에서 미국인 간호사에게 구애했다 거절당한 경험은 ‘무기여 잘 있거라’의 소재가 됐다. 고향에서 여덟 살 연상의 해들리와 결혼한 뒤 파리로 가 각국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얻은 영감은 평생의 자양분이 된다.


전후 ‘잃어버린 세대’의 방황을 생생하게 묘사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로 스타가 된 그는 ‘보그’지 기자 폴린과 사랑에 빠진다. 폴린과 재혼한 그는 부유한 처가 덕에 세계를 여행하며 작품을 구상했다. 스페인산 페르민 투우 축제와 ‘킬리만자로의 눈’ 배경지인 아프리카에서의 사파리 투어는 환상적이었다. 날씨와 자연환경 묘사가 일품인 그의 소설은 치열한 체험과 관찰, 철저한 현지 조사가 바탕이 됐다. 연중 기후가 온화한 멕시코만 연안은 낚시광인 그에게 최적의 집필 장소였다. 플로리다 키웨스트섬에서 작품의 70%를 썼고, 서재에는 지리책과 대축척지도가 가득했다.

중년의 헤밍웨이는 종군기자 마사 겔혼과 함께 스페인 내전을 취재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다. 둘은 쿠바 아바나 인근에 농장을 마련하고 결혼했다. 커플 사진을 찍어준 전설적인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가 “사랑에 빠질 때마다 결혼하느냐”며 농담을 건네고 마사와 다정하게 지내자 질투에 사로잡힌 그는 폭음한다. 마초 이미지가 강하지만 지인들은 그를 ‘가슴에 털 난 여자’라고 부를 정도로 여렸다. 혼자 여행도 못 갈 정도로 의존적인 그는 독립적인 아내와 갈등을 겪다 헤어진 후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 특파원이었던 메리와 네 번째 결혼을 한다. “사랑에 빠졌을 때 가장 좋은 글이 나온다”고 한 그는 아내가 바뀔 때마다 새 작품을 썼다.


헤망웨이는 쿠바를 무척 사랑해, 미국과의 국교 단절로 어쩔 수 없이 쿠바를 떠나야 하자 크게 상심했다. 사진은 파도가 부서지는 경관이 유명한 말레콘(방파제).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강 건너 숲속으로’로 혹평을 받았지만 자신 있는 분야인 ‘낚시’를 소재로 쿠바에서 ‘노인과 바다’를 쓰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1953년 아프리카 여행 때 우간다의 머치슨폭포 인근에서 항공기가 추락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하고 쿠바와 미국의 국교가 단절되자 그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정든 아바나를 떠나야 했다. 아이다호주 선밸리와 소투스산맥에서 화려했던 20대를 회고하며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쓰던 그는 쇠약한 몸과 우울증에 무너진다. 결국 1961년 오늘(7월 2일) 자살한다. 그는 아이다호주 케첨의 묘비에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은 그대가 무엇을 가지지 못했는지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 동아일보 2018.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