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차가운 계곡·이끼·터널숲 어우러진 백천계곡… 뒷짐 지고 어슬렁어슬렁 걷는 왕복 2~3시간 코스 태백산 자락 영동선 승부역 일대서 양원역까지 5.6㎞ 트레킹 구간 ‘절정의 비경’ 시멘트 포장길·숲속 오솔길·강변 자갈길 밟는 재미도 ‘쏠쏠’ ‘사회적’이든, ‘생활 속’이든, ‘거리 두기’의 의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거리를 둔 지 이제 대여섯 달 남짓이지만, 백두대간의 봉우리들이 파도처럼 일어선 강원 태백과 경북 봉화 사이에는, 일찌감치 세상과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깊은 오지가 곳곳에 있습니다. 오지 중의 오지. 그곳에 청량한 자연의 한복판으로 난 길이 있습니다. 마스크를 벗어버리고서 마음 편히 걸을 수 있는 그런 길입니다. # 태백의 품에 숨은 오지를 찾아가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은 모두 합해 스물두 개. 지난 2016년 스물두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 태백산이다. 보통 명산의 이름은 산봉우리 하나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거대한 산군(山群)을 부르는 지명으로 쓰인다. 주봉인 천왕봉이 거느리고 있는 커다란 산군을 지리산이라 부르고, 대청봉이 중심이 돼 거느린 산들을 설악산이라 부른다. 지리산에는 ‘지리산’이란 산이 없고, 설악산에도 ‘설악산’이란 산이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태백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태백산은 지리산이나 설악산처럼 거대한 산군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천제단이 있는 하나의 산을 콕 짚어 부르는 이름이기도 했다. 태백산에서 사뭇 떨어진 소백산 끝자락에 있는 경북 영주의 부석사가 산문에다 태연하게 ‘태백산 부석사’란 현판을 건 것은 전자의 예이고, 고지도에서 천제단이 그려진 산에 적어놓은 ‘태백산’의 이름은 후자의 경우다. 태백산 국립공원의 영역은 태백산을 중심으로 문수봉, 장군봉, 부쇠봉, 함백산 등 일대의 산군을 모두 포함한다. 행정구역도 태백과 정선, 봉화와 영월을 아우른다. 태백산 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뜻밖에 태백산이 아니라, 북쪽으로 마주 보고 있는 함백산(1572m)이다. 그럼에도 국립공원을 대표하는 산은 여전히 태백산이다. 태백산을 오래전부터 신령(神靈)이 깃든 산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태백산은 신이 기거하는 영역이자 외경과 숭배의 대상이었다. 신라 일성왕 때 왕이 태백산에 올라 제를 지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전한다. 이후에 고려 태조 왕건이 아예 신이 돼서 태백산으로 들어갔고, 세조의 왕위찬탈로 죽임을 당한 단종도 태백산 산신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태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태백산이라 하면 그게 하나의 산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대의 산군을 일컫는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된 것. 결국 태백산국립공원사무소는 좀 어정쩡하기는 하지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일대의 전체 산군을 묶어서 태백산이라 부르고, 천제단이 있는 태백산은 따로 ‘영봉’이라고 구분해 부르는 것으로 정리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의 경우처럼 말이다. 태백산이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널리 알려진 산이었다. 하지만 태백산의 산줄기를 잇고 있는 인근의 산군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태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백두대간의 지붕을 이루며 오지 중의 오지를 거느리고 있는 일대의 산군들이 비로소 세상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태백산이 국립공원이 된 효과를, 꼭꼭 숨어있던 일대의 오지와 계곡이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 태백산 아래 호젓한 마을과 계곡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는 태백산 국립공원에 편입된 백천계곡이 있다. 부쇠봉과 깃대배기봉 사이를 흘러내리다가 문수봉에서 내려온 물과 합류하는 병오천 물길이 이어지는 계곡이다. 산 이름이 하나같이 낯설지만 모두 태백산 줄기로 태백산 국립공원의 산군에 속한 봉우리다. 그러니 병오천을 ‘태백산에서 흘러내린 물’이라고 해도 맞는 얘기다. 병오천 물길이 흘러내리는 계곡이라면 ‘병오천 계곡’이라 불러야 마땅할 텐데, 굳이 ‘백천계곡’이라고 따로 이름을 붙였다. 왜 그랬는지 아는 이가 없다. 백천이란 이름의 ‘백’ 자가 ‘잣 백(栢)’ 자라는 얘기도 있고, ‘흰 백(白)’ 자라는 얘기도 있다. 잣나무가 많아서 잣 백이란 주장과 태백산에서 내려온 물줄기라 흰 백이라는 주장인데, 흰 백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건, 이름으로나마 물길에다가 태백의 기운을 들이고 싶어서 그랬다는 짐작 때문이다. 백천계곡은 맑고 차가운 계곡 물과 진초록 이끼, 터널을 이루다시피 한 숲길이 잘 어우러진 트레킹 코스다. 평지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경사가 없어 뒷짐을 지고도 걸을 수 있는 데다, 왕복 두세 시간 남짓이면 다녀올 수 있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딱 적당한 거리의 오솔길이다. 게다가 트레킹 코스 초입에 국립공원사무소가 이른바 ‘명품마을’로 가꿔놓은 백천마을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운이 좋다면 차가운 계곡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자연부터 마을까지 다채로운 풍경을 감상하며 누구나 편히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백천계곡에 ‘최고의 트레킹 코스’라는 깃발을 달아주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는, 그곳까지 가는 길이 멀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태백도, 봉화도 오지로 손꼽히는데, 백천계곡은 그 두 지역의 끝과 끝이 겹쳐진 자리에 있다. 그러니 계곡은 늘 적요할 따름이다. 자, 이제 백천계곡 트레킹을 시작해보자. 절집 현불사 앞 주차장에서 줄곧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편도 4㎞ 남짓이다. 이중 터널을 이룬 숲길은 뒷부분의 2.7㎞ 남짓이고, 앞쪽은 백천마을을 둘러보며 지나는 길이다. 백천마을은 마을 주민 전체가 여섯 가구라 ‘마을’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다. 한때 일흔여덟 가구까지 살았던 때도 있었다는데, 울진·삼척 무장공비침투사건과 화전민 이주정책으로 하나둘 주민이 떠났다. 백천계곡에 열목어가 서식한다는 이유로 1962년 마을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래 마을 개발도, 외부인들의 입주도 불가능했으니 주민들이 떠난 자리는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이렇게 한 세대가 넘는 시절이 갔으니 숲과 계곡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보전될 수 있었다. # 청량한 계곡과 이어진 최고의 숲길 백천마을에는 여섯 가구가 모두 이름을 갖고 있다. 투방집, 큰바우집, 나무다리집, 옛집, 끝집, 사과부자집…. 집 옆에 큰 바위가 있어서 큰바우집이고,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산 주민의 집이라 ‘옛집’이며, 계곡으로 드는 마을 끝에 있다고 해서 ‘끝집’이다. 사과부자집은 마을 비탈에 제법 너른 사과밭이 있어 ‘부자(富者)’인 줄 알았더니, 사과농사를 짓는 아버지와 아들이란 뜻의 ‘부자(父子)’란다. “머 여기서 부자 캐도 다 거기서 거기지. 안 그래요?” 이렇듯 세상과 돌아앉은 오지 산골 마을까지 들어와서 돈이 많고 적음으로 집의 이름을 삼았을 거라 생각했다는 외지인의 얘기에 주민들은 피식 웃었다. 집과 집을 잇는 마을 길은 마치 잘 꾸민 자연 정원의 산책로 같다. 인상적이었던 건 청량한 물소리를 따라가는 마을의 ‘물소리길’에 있던 전체를 투명 아크릴로 지은 작은 도서관이었다. 말이 도서관이지 한두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차는 그런 장난감 같은 집이다. 보아하니 숲과 계곡의 풍경이 투명하게 보이는 이 방의 책상에서 책을 읽으라는 얘기인 듯하다. 책이 비치돼 있지 않았고 관리도 좀 소홀해 보이긴 했지만, 거기 앉아 자연 속에 푹 파묻혀 책을 읽는 기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었다. 그러니 백천마을에 갈 때는 읽고 싶었던 책을 챙겨가 보는 게 좋겠다. 마을을 지나 ‘계곡 깊은 길’이란 이정표를 따라 들어서는 백천계곡 숲길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할 게 없다.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같다.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가는 길이 온통 초록의 숲 터널이고, 숲 여기저기에 붉은 금강송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으며, 길을 걷는 내내 박하 향 같은 숲의 향기와 청아한 새소리가 따라오는 그런 길이다. 여기는 길을 저절로 걷게 만들어서 제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으니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치유될 듯하다. # 승부에서 양원까지 깊은 오지를 걷다 태백산 자락 아래 봉화 일대에서 첫 손으로 꼽히는 오지가 바로 영동선의 승부역 일대다. 지금은 그나마 교행이 불가능한, 굽이굽이 멀미가 나는 실낱같은 좁은 길이라도 이어져 있지만, 과거 승부역은 차로 갈 수 있는 길 자체가 없었다. 기차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곳. 승부역이 오지이면서도 낭만적인 정서가 스며있었던 것도, 승부역에서의 짧은 정차가 겨울이면 운행했던 ‘눈꽃열차’의 하이라이트였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승부역은 1955년에 완공된 경북 영주의 영주역∼태백 철암역을 연결하는 ‘영암선’ 철도 노선의 역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영암선 전체의 공사가 다 어려웠지만 그중에서 가장 난공사였던 건 험준한 오지의 산악 지형인 승부역 일대였다. 영암선 개통 기념비가 영암선 출발역이나 종착역이 아닌 이곳 승부역에 세워진 연유다. 개통 기념비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자연석을 투박하게 다듬어 세운 비석의 초대 대통령 글씨에서는 우리 손으로 처음 놓은 철도건설의 감격이 느껴진다. 영암선은 개통 8년 뒤에 동해북부선과 통합돼 영동선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최고의 오지에 있는 역이 영동선의 승부역이라면, 영동선 열차가 달리는 최고의 오지 구간은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의 5.6㎞ 구간이다. 이 구간에는 낙동강 상류의 물길이 흐르는 계곡과 숲, 그리고 물길에 나란히 놓인 철로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거기에 걷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두고 ‘양원∼승부 비경길’이라고 하기도 하고, 승부역에서 분천역까지 이어지는 ‘낙동강 세평 하늘길’ 1코스라고도 부른다. 승부역에서 출발해 낙동강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은 시멘트 포장길에서 숲 속 오솔길로, 강변 자갈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협곡 구간에서는 험준한 지형에 기찻길을 놓기 위해 다져놓은 시멘트 위를 걷기도 한다. 강변의 기찻길을 줄곧 따라가지만, 철로가 터널로 들어 가버리는 구간에서는 강변 가까이 난 길로 에둘러 간다. 길의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오는 낙동강의 물소리에다 앞산의 뻐꾸기 소리와 함께 걷는다. 어쩌다 한 번씩 지나가는 화물 기차 소리에 깜짝 놀라는 건 이 길을 걷는 재미다. 트레킹 코스는 분천역까지 이어지지만,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만 걸어도 오지 트레킹의 즐거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트레킹 코스를 걷는다면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이용하는 게 편하지만, 코로나19로 협곡열차가 다니지 않고 있어 승용차를 이용해야 하는데, 차로 승부역까지 갔다면 양원역까지 왕복구간을 걸어야 하니 더 걷는 건 무리다.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 걷는 길은, 사실 트레킹 코스가 놓이기 전부터 걷는 이들이 있었다. 양원역이 있는 양원마을에는 본래 역이 없었다. 양원마을까지는 승부역이나 분천역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했다. 마을에 역이 없으니 기차로 제집 앞을 그냥 지나쳐 다음 역에서 내린 뒤에 고스란히 그 길을 되돌아와야 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봉화에서 장을 본 뒤 기차를 타고 양원마을에 간다면 마을을 지나쳐 승부까지 가서 내린 뒤에 기차가 지나온 길을 고스란히 되짚어 돌아가야 하는 셈이었다. 그러니 기차가 양원마을을 지날 때쯤 무거운 짐을 휙 차 밖으로 던져놓고는, 승부역에서 내려 맨몸으로 걸어 돌아오면서 짐을 찾아갔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다가 1988년 양원역이 기차가 정차하는 임시 승강장으로 결정됐을 때 마을 사람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마다 벽돌을 들고나와서 지금의 대합실을 지었다고 했다. 대합실이라 해봐야 손바닥만 하고 초라한 간이 건물 수준이지만, 이래 봬도 양원역은 민간인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역사인 셈이다. ■ 백천마을 현불사 이야기 족집게 같던 스님의 예언… 선거 앞둔 정치인 장사진 백천계곡의 들머리에 백천마을이 있고, 백천마을의 초입에 절집 현불사가 있다. 현불사는 ‘불승종’이라는 생소한 종파의 본찰인데, 분위기가 좀 독특하다. 유교식 제사를 지내는가 하면 불법과 선도를 가르치기도 한다. 다른 불교 종파와는 달리 육식을 금하지 않아 공양간 밥상에 고깃국이며 생선조림이 오르는 것도 특이하다. 현불사는 뜻밖에 정치인 사이에서는 이름난 절집이다. 현불사를 창건한 설승 스님은 생전에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에게 예언을 해주는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예언이 족집게처럼 맞았던지,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현불사에 줄을 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회창, 박태준, 이한동, 한화갑, 권정달, 김중권 씨 등이 현불사를 자주 찾았단다. 절집 곳곳에 이렇듯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지만, 현불사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감염 우려 때문에 대문을 닫고 신도 외에는 출입을 막고 있다.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으니 꼭 가보고 싶다면 방문 전에 미리 청해보는 게 좋겠다. ■ 백천마을 전망대와 열목어 백천계곡의 백천마을에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라고는 하지만 말이 그렇고, 벽체가 없는 움막에 더 가깝다. 전망대라고 하면 ‘높이’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여기 백천계곡 전망대는 길에서 고작 계단 4개를 올라간다. 거기서 ‘전망’하는 대상은 차가운 계곡 물에서 헤엄치는 열목어다. 유연하게 헤엄치는 열목어는 그곳의 자연이 살아있음을 감격적으로 보여준다. 문화일보 202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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