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미적거림과 차이가르니크 효과

부산갈매기88 2009. 11. 7. 14:29

<미적거림과 차이가르니크 효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 중 약 24%는 자신에게 미적거리는 습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수치는 설문지를 제 시간에 작성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결과이므로, 아마 실제보다 낮게 나왔을 것이다. 실제 비율이야 어떻든 간에, 미적거리는 습관은 제때 대금 결제를 못 하게 한다거나, 마감 시한까지 일을 끝마치지 못하게 하거나,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에 철저한 대비를 못 하게 하므로 큰 문제임은 분명하다. 미적거림은 놀랍게도 아주 복잡한 현상이며, 그 원인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완벽주의, 자기 관리 부족, 계획을 작은 부분들로 쪼개 생각하기보다는 통째로 보는 경향, 금방 지겨움을 느끼는 성격, 사소한 일처럼 보이는 것들을 고민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사고방식, 일 처리에 걸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가늠하는 능력 부족 등 아주 다양하다.

 

그렇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한 한 가지 있는데, 이것은 정말 우연히 발견되었다. 1920년대에 러시아의 블루마 차이가르니크라는 심리학과 대학원생이 빈의 한 카페에서 지도 교수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평소에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는 게 일이었던 그들은 웨이터와 손님의 행동 방식을 관찰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손님이 계산서를 요구할 때마다 웨이터는 손님이 주문한 음식들이 무엇이었는지 아주 잘 기억했다. 그런데 손님이 계산을 끝내고 나서 잠시 후에 다시 물으면 웨이터는 손님이 무엇을 주문했는지 떠올리는 데 애를 먹었다. 계산 행위가 웨이터의 머릿속에서 종료 신호처럼 작용해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차이가르니크는 이 현상에 큰 흥미를 느끼고 연구실로 돌아와 머릿속에 떠오른 개념을 실험해보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간단한 과제(산가지를 쌓는다거나 상자 안에 장난감을 넣는다거나)를 여러 가지 주었는데, 일부과제는 끝나기 전에 중단시켰다. 그리고 실험 참여자들에게 각자가 수행한 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게 했다. 그러자 웨이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끝내지 않은 과제일수록 세부적인 내용을 더 쉽게 기억해냈다. 차이가르니크는 어떤 활동을 시작하면 마음속에 일종의 심리적 불안감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그 활동을 끝마쳐서 털어내고 나면, 마음은 무의식적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 일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그 일을 끝내지 못하게 되면, 그 일이 끝날 때까지 마음속에 불안감이 계속 남아 있게 된다.

 

이것이 미적거림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미적거리는 사람들은 앞에 닥친 일의 규모에 압도되어 그 일의 시작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다짐이든 타인의 설득에 의해서든 ‘그저 몇 분 동안’ 그 일을 시작하기만 한다면, 끝까지 해내려는 충동이 생길 때가 많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처럼 ‘그저 몇 분 동안’의 규칙이 미적거림을 퇴치하고 아주 힘든 일을 해내는 데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이것은 차이가르니크의 연구를 응용한 사례이기도 한다. 그저 몇 분 동안의 시작 활동만으로도 우리 뇌는 그것을 끝낼 때까지 불안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차이가르니크는 끝내지 않은 일의 심리학에 대한 연구 말고도 흥미로운 연구를 많이 했다. 한번은 히스테리로 인해 마비가 일어난 환자를 회복시키려고 군복을 입은 연기자가 갑자기 방 안으로 들어와 환자에게 일어서라고 명령하는 방법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불행하게도 이 연구 결과는 그 후 실종되고 말았다. 최근 러시아의 한 전기 작가는 이제 러시아에선 이전처럼 군인이나 정치인에 대해 큰 존경심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 연구를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리처드 와이즈먼 <59초>

'삶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만 2천명이 넘었네요  (0) 2009.11.18
그대는 왕따인지?  (0) 2009.11.10
잃어버린 지갑을 되돌려 받을 수 없을까?  (0) 2009.11.04
고양이와 호랑이  (0) 2009.11.02
술만 먹으면 개판(?)인 이유  (0) 2009.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