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돈도 명예도 바라지 않는 의술

부산갈매기88 2009. 11. 20. 11:01

의학박사의 위대한 발견 한 가지는 약 50년 전 토네이도가 미네소타 주의 한 마을을 초토화시키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토네이도가 분노의 신이 날뛰듯이 미네소타 주의 초원지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길에는 모든 것을 날려버렸고 파괴했으며 산산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로체스터도 강타를 당해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다쳤고 스물세 명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여러 날 동안 마요 형제는 아버지와 폐허 속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부러진 팔다리를 맞추어주고 수술도 해주었다.

 

성 프란체스코 수녀원의 시스터 알프레드 원장은 이 소식을 듣고 너무나 감명을 받아 마요 형제가 맡아주기만 한다면 병원을 세워주겠다고 제안했다. 형제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1889년에 마요 병원이 문을 열었다. 당시 아버지 마요 박사는 70세였고 두 아들은 병원의 인턴 경험도 없던 상태였다. “우린 둘 다 신출내기 중의 신출내기였습니다.”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하지만 형인 윌리암 마요는 암에 관한 한 전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었다.

 

둘 다 서로가 훌륭한 의사라고 믿었으며, 둘 다 외과의사 중 가장 청결하게 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매사에 확실하고 신속하여 대부분의 외과의사들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아침 일곱 시에 병원에 도착해서 한결같이 매일 네 시간 네 시간씩 수술을 했다. 수년 동안 매일 13차례에서 15차례 수술을 했다. 그리고 둘 다 계속 공부하면서 의술을 향상시키려 노력했으며 언제나 배울 것이 많다고 여겼다. 지금 로체스터 시 전체는 마요 병원이 분위기를 주도한다. 인도에는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버스는 조용히 달리고 길가를 다니는 사람들은 대화도 조용히 나눈다.

 

가난한 사람이 은행장이나 농사꾼이나 영화 스타나 모두 대기실에서 순서대로 기다려야 했고 똑같은 대접을 받았다. 부자들은 수입에 맞게 치료비를 냈으며 누구도 돈이 없다고 해서 발길을 돌린 적은 없었다.

 

마요 형제가 하는 활동의 1/3은 자선이었다. 형제는 결코 병원비로 소송을 건 적이 없었고 장부에 적어놓지도 않았으며 병원비를 지불하기 위해 집을 저당 잡히도록 하지 않았다. 치료 당시에 환자가 가지고 있는 현금만을 받고 돌려보냈으며, 결코 수술을 하기 전에 얼마만큼 수술비를 낼 수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마요 형제가 치료해준 어떤 사람이 목숨을 구해주어 고맙다며 자기 농장을 담보로 병원비를 낸 적이 있었다. 마요 형제는 그 사실을 알고서 받았던 수표를 되돌려준 것도 모라자 수백 달러치의 수표까지 끊어주었다.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일을 못해서 입은 손해까지도 대신 갚아주려는 마음에서였다.

 

마요 형제는 돈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두 동네 꼬마의 훌륭한 성공 사례다. 하지만 돈은 한정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둘은 명예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외과의사가 되었다.

 

유일한 바램이 있다면 그저 아픈 사람들을 돕는 것뿐이었다. 병원 대기실의 책상 위에는 두 사람의 성공이 담고 있는 영원한 진리를 설명해주는 유명한 문구가 걸려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행하라. 그러면 설령 길은 숲 속에서 살아도 세상으로 통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데일 카네기 <데일 카네기 1% 성공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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