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식히기

부하의 처신

부산갈매기88 2009. 12. 24. 12:36

술을 좋아하는 제나라 왕 경공은 술에 너무 취해 사흘이 지나도록 못 깨어나는 때도 종종 있었다. 하루는 조정의 업무도 산더미 같고 외국 손님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왕은 일곱 낮밤을 계속 술만 마시고 있자 현장이라는 충신이 참다못해 목숨을 걸고 경공에게 간하였다.

 

“왕께서는 나랏일을 돌보시지 않고 일곱 낮밤을 계속 술만 드시고 계신데, 이제는 제발 술을 끊으십시오. 만일 정히 술을 끊지 못하신다면 차라리 저의 목을 베어주시옵소서.”

 

이렇게 말하자 경공은

“그대 목을 나의 술잔으로 바치겠다고? 그거 참 좋지. 어서 이리 가까이 와, 경의 머리를 술잔으로 해서 마실 테니, 끄윽~”

그리고는 현장의 머리에다가 술을 부어버렸다. 현장이 눈물을 삼키며 그 자리에서 물러나온 뒤에 재상인 안자가 왕을 뵈러 들어가보니 왕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안자는 말없이 한숨만 쉬고 물러나오려는 참에 경공이 먼저 말을 걸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겠소? 재상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조금 전에 현장이라는 신하가 나보고 술을 끊지 않으면 자기 목을 치라고 하였소. 만일 내가 술을 끊으면 신하에게 굴복하는 것이 되고, 술을 끊지 않으면 현장의 목을 쳐야 하니 너무 아깝지 않소?”

 

이 말을 들은 안자는 왕이 취중에도 이렇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나 신기하게 여기면서 한동안 경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다행입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아니, 뭐가 다행이라는 거요?”

 

왕은 술잔을 상 위에 내려놓으면서 안자를 쳐다보았다.

“현장이 상감의 신하로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만약 현장이 걸왕이나 주왕 앞에서 그렇게 간했다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인데, 임금님 앞이었으니까 살아서 물러나갈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는 말씀입니다.”

 

 

김진배 <유쾌한 대화로 이끄는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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